[동열모칼럼] 우리 민족의 자랑 “한글”
오는 10월 9일은 ‘한글날”이다. 세종대왕께서 한글을 훈민정음(訓民正音)으로 반포한 것이 1446년 10월 9일이었으니 이번 ‘한글날’이 576주년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한글은 세계 여러 문자 중에서 유일하게 제정한 사람과 제정한 날짜가 분명한 글자다. 뿐만 아니라 한글은 불과 10개의 모음과 14개의 자음을 조합해 어떠한 발음도 거의 그대로 낼 수 있어 누구나 손쉽게 배울 수 있는 과학적 문자이기 때문에 UNESCO는 우리 한글을 “세계 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것이다.
한글은 또한 컴퓨터에 입력하는 속도가 중국의 한자(漢字)나 일본의 가나보다 7배나 빠르다고 하니, 세종대왕께서는 이미 오늘의 정보화 시대를 예견하시고 이렇게 능률적인 글자를 제정한 것으로 여겨져 신기하기만 하다. 뿐만 아니라 한글은 글자 모양이 기하학적 미술감각까지 풍긴다고 하니 더욱 자랑스럽다.
이렇게 우수한 특성을 지니고 있는 한글을 우리 조상들은 언문(諺文)이라며 천시(賤視)하고, 한자를 진서(眞書)라고 꾸준히 사용했기 때문에 한글은 오랜 세월 빛을 내지 못하고 사장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한글이 구한말(舊韓末)에 이르러 서재필(徐載弼), 이승만(李承晩) 등 개화파 인사들이 독립신문과 매일신보(每日申報)를 한글로 발간하자 한글의 가치가 비로소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일제의 강점기에는 한글을 독립운동의 일환으로 삼고, 이를 널리 보급하고자 야학(夜學)을 개설하고, 호롱불 밑에서 한글을 열심히 배웠으며, 자력갱생(自力更生) 운동을 전개할 때에도 한글을 널리 통용했다. 이렇게 되자 일제는 자기들이 통치하고 있는 식민지에서 한글이 기세를 올리는 것이 두려워 한글을 쓰지 못하도록 탄압하기도 했다.
이렇게 어려운 때에 마침 한글로 쓰여진 장편 소설이 연달아 출간되면서 한글은 더욱 빠르게 보급되었다. 그 대표적 소설이 심훈(沈熏)의 상록수(常綠樹), 이광수(李光洙)의 흙, 박계주(朴啓周)의 순애보(殉愛譜), 이상(李箱)의 탈출기(脫出記) 등이라고 하겠다
오랜 세월 사장되었던 한글이 이렇게 널리 활용된 시기는 겨우 舊韓末부터이고, 그 이전에는 한자(漢字)만 꾸준히 사용했기 때문에 우리의 일상 용어는 고유어가 30%인 반면에 한자어(漢字語)가 70%를 차지하고, 특히 학술용어나 법률용어는 거의 90%가 한자어라고 전문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한자를 모르고서는 정확한 의사전달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현재의 “한글 전용” 정책을 “한자 倂用”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거세게 들린다. 사실 한글은 소리만 나타내는 표음문자(表音文字)이기 때문에 정확한 개념이 전달되지 못하는 반면, 한자는 글자마다 고유의 뜻이 담겨진 표의문자(表意文字)이므로 의사전달이 정확하다.
그 사례를 든다면 <감상>이라는 낱말의 경우 이 말에는 感傷, 感想, 感賞, 鑑賞 등 뜻이 다른 여러 가지 용어가 있어 한글만으로는 정확한 의사전달이 불가능하다. 또 한 가지 예를 든다면 海印寺와 顯忠祠를 영어로 번역할 경우 한자를 모르면 해인사의 寺(temple)자와 현충사의 祠(shrine)을 구분하지 못할 수도 생기게 된다.
따라서 소리를 나타내는 한글과 뜻을 나타내는 한자를 병용한다면 보완효과를 얻어 정확한 의사전달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보완 효과를 가장 먼저 인식한 분이 한글을 제정하신 세종대왕이시다. 세종대왕께서는 한글을 제정하시고 바로 지으신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한글과 한자를 병용하셨던 것이다 일본도 현재 한자를 병용하고 있어 어휘 능력이 우리보다 앞서고 있기 때문인지 노벨 문학상을 여러 번 탔는데 우리는 아직 한 번도 타지 못했다.
한글은 또한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고히 다지는 역할도 하기 때문에 우리 민족은 열강의 침공을 계속 받기도 하고, 심지어 식민지가 되기도 했는데 민족혼(民族魂)을 잃지 않고 번영하였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한글은 이와 같이 소중한 민족의 정체성을 다지는 역할까지 하기 때문에 이곳 한국학교에서는 한글을 중점적으로 가르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