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하늘로 이사한 김동길 선생님(1)”
하나님의 뜻과 목적이 있어서 우리 인간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 하찮은 나도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내셔서 지금껏 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의 존재가 대단하다. 하나님의 은혜와 빽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내가 연세대에서 처음 본 김동길 선생님은 참으로 멋이 있었다. 키가 크고 뚜렷한 이목구비에 콧수염까지 기른 그분의 인품은 한국인으로는 보기 드문 거인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분과 친해지면서 느낀 점은 그의 우람한 몸집과 외모와는 전혀 다른 정과 사랑이 넘치는 자상한 분이었다.
우리들에게 서양사를 강의했는데 수강 신청한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소강당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 당시 그분은 학생처장을 겸하고 있었는데 1961년 4.19가 터지자 김 교수님은 학생들 앞에서 학생들의 데모를 질서 정연하게 하도록 지시하고 자신이 맨 앞에서 길을 열었다. 데모를 나가기 전에 김 교수님은 백낙준 총장님께 “이 학생들을 제가 책임지고 질서 정연하게 데모하고 무사히 귀교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서대문 경찰서장을 만나 자신이 책임지고 데모 대열을 이끌고 청와대 앞까지 갔다가 무사히 돌아오겠다고 다짐하고 데모를 진두지휘했다. 시청 앞 광장에 이미 군부의 기관총 부대가 우리(데모대)를 겨누고 진입을 저지했다. 앞장서서 인도하던 학생 대표들 중 한 명(의대생 최정규)이 총을 맞고 현장에서 죽었다.
그 여파로 학생들은 구름처럼 모여들고 데모의 열기는 하늘을 찔렀다. 이로 인해 군부대는 총사격을 금하고 철수했다. 그 이후부터 우리는 김 교수님을 더욱 존경하고 따르게 되었다. 정의와 자유를 위해서는 목숨을 아끼지 않는 김 교수님을 우리는 더욱 존경하고 숭배했다.
그 이후에 김 교수님은 민주 자유화 운동의 선구자로 앞에 나섰다. 그 일로 인해 박정희 군부 정권하에서 15년 징역형을 받았으나 일 년 여 만에 풀려났다. 학교 측에서는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고 김 교수님을 1년여간 강의를 중단시켰다. 김 교수님의 미국 유학을 주선해 준 분이백 총장님이었다. 그로 인해 미국 유학길에 올라 에반스 빌 대학과 보스턴 대학에서 철학과 서양사를 연구하여 보스턴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한 후에 다시 연세대 교수로 강의를 하면서 그분은 인간은 하나님의 후예이므로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존재라고 설파했다. 기독교의 참뜻과 그 뜻을 따르는 김 교수님을 전교 학생이 흠모하였고 한국 전체 학생들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사상계에 글을 연재하면서 그 분의 입지는 더욱 높아졌고 만인의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김 교수님은 평소에 조만식 선생과 함석헌 옹을 존경하였고 그분들의 철학과 애국사상을 강조하였다. 김 교수님에게는 수 많은 제자들이 있다. 어쩌다 김 교수님 댁을 방문하면 동문(제자)들이 몇 명씩 와 있었다. 물론 내가 잘 아는 동문들이지만 아주 대선배들도 와 있었다. 그 많은 제자들 중에 나를 유독 사랑하시고 좋아하셨다. 나의 졸저인 “삶의 찬가”-정병국의 세상이야기-에 머리글을 써주셨다. 그 일부를 옮겨 적는다.
<나는 80 평생을 살면서 줄곧 학교 선생을 했기 때문에 학생들도 많이 가르쳤고 동료 친구들도 많이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동서를 누비고 다니면서 만난 사람들이 몇이나 되는지 잘 알 수가 없지만 무척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오늘까지 살아왔다. 그런데 내가 만나고 사귈 기회가 있었던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데 여기 소개하는 정병국이라는 사람은 내가 잊을 수 없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와는 매우 깊은 인연이 있다. 그는 나의 제자이고 동지이며 또한 친구이기도 하다.
정병국을 생각하면 왜 그런지 인생은 살 만한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는 우선 잘생긴 사람이다. 그도 이제는 나이가 많아서 좀 쪼그라지기는 했겠지만 젊었을 적에는 많은 여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 미남자였다. 게다가 머리가 좋아서 별로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성적도 우수했다. 글도 잘 쓰고 글씨도 잘 쓰고 말도 잘하는 몇 가지 재능을 한 몸에 지닌 특이한 인물이기도 하다. 대개 얼굴이 잘 생기고 머리가 좋은 사람들은 매사에 까다롭고 여유가 없어서 남을 포섭하지 못하는데 나는 정병국을 싫어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중약>
사실은 내가 그렇게 칭찬받을 만한 인물이 못 된다. 김 선생님이 못난 나를 너무나 사랑하시고 좋아하셨기 때문에 이렇게 쓰신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못난 나를 사랑하시고 좋아하시던 분을 이제는 이 세상에서 만날 길이 없다. 이미 하늘나라로 이사를 하셨다. 이제 훗날 나도 하늘에 계신 김 선생님을 만날 날이 올 것이다. 하늘나라에서 만나면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함께 살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