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 교육칼럼] 모 아니면 도(A or Incomplete)?
이번 주의 칼럼을 쓰려 책상에 앉아 있노라니, “예년의 이맘때에는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해진다. 벌써 한 달이 넘게 COVID-19의 영향으로 학교가 문을 닫을 정도이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자녀 교육에 미치는 영향, 아니면 그 원액에 코로나 맥주에 관한 이야기라도 조금 섞어야 사회적 책임을 ‘일’이라도 완수하는 것이라는 강박 관념이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작년 이 시기에는 막 스프링 브레이크를 마친 자녀들이 곧 치르게 될 IB/AP 시험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중 올해 IB 시험은 전면 취소되었고, AP 시험은 전례 없이 집에서 혼자 시험을 보도록 결정되었으니 참 1년 만에 강산이 바뀌는 초고속 상전벽해를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듯 전례가 없이 합의나 토론을 거치지 않고 그저 툭툭 던져지는, 하지만 조건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상들은 이제 매일 매일 접하는 것이라 별 감동이나 거부감이 없을 정도로 무뎌져 가는 느낌이다. 확진자의 수나, 사망자의 수, 마스크나 보호 장구의 부족, 거의 대공황 수준으로 늘어 가는 실업률, 언제 열릴지 모르는 비즈니스 등등. 교육의 면에서 또 다른 황당하지만, 최선일지도 모른다며 받아들이는 결정을 오늘 또 접했다. 워싱턴주에서 학생 수가 5만 명을 넘는 가장 큰 규모의 교육구인 시애틀 교육구가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이 가장 궁금해하던 고민에 대해 기발한(?) 해결책을 제공했다. 고등학생들, 특히 올해 가을에 고교 졸업반이 되고 대학에 원서를 제출할 현재의 주니어 학생들에게 학교가 문을 닫은 이번 11학년 2학기 성적은 초미의 관심사인데, 시애틀 교육구가 희대의 결정을 내렸다.
지난 월요일인 4월 20일 시애틀 교육구의 집행위는 드니스 주노 교육감이 상정한 ‘올봄 학기 고교 성적 방침’에 관한 안건을 심의해 5-2로 통과를 시켰다. 이 안건은 올해 코로나 바이러스의 창궐로 학교가 문을 닫아 적절한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고등학생들의 봄 학기 성적을 A이든지 Incomplete(미완결) 두 가지 중의 하나로 나눠 평가하고 성적표에 기재한다는 것이었다. 담당 과목 교사의 방침을 잘 따르고 수업에 충실하며 과제를 완성한 학생들에게는 모두 차등 없이 A를 준다. 이와 반면에, 수업에 참석하지 않거나 과제를 제출하지 않은 소수의 아주 공부에 뜻이 없는 학생은 ‘미완결’ 학점을 준다. 하지만, 이 학생들의 경우에도 여름 학기나 다른 학기에 완성하도록 기회를 준다는 아주 관대한 학점 제도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시애틀 교육감실에 의하면, 여러 가지 방안이 검토되었으나 교육구 내의 모든 학생이 같은 조건하에서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에 있는 것을 고려할 때 이 방안이 최선의 결정이었다고 한다. 학교를 닫기 이전인 3월 초까지의 성적을 기반으로 하는 방안, 대학들이 많이 사용하는 ‘Credit/No Credit(A나 B와 같은 구체적인 성적을 주는 대신 학점을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는 방식)’ 등등의 방안들이 검토되었으나 결정된 안에 비해 결함이 있어 채택되지 않았다고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도’ 아니면 ‘모’격의 이 방안보다, 3월 초까지의 봄 학기가 한 달간 진행되었기에, 그때까지의 성적에다가 문을 닫은 이후 온라인에서 받은 평가를 합해 점수를 차등으로 주는 방식이 가장 공평 정대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온라인 환경이 균등하지 않은 상태를 고려하면 이번 시애틀 교육구의 결정이 불합리하지만은 않고, 다른 교육구들도 따를 만한 차선의 방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미국 교육 정책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특별한 소수의 엘리트를 위주로 교육 방침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 기회의 균등을 먼저 생각하는 자세가 바로 미국을 미국답게 만드는 정신이 아닌가 한다. 예를 들어, 워싱턴 주의 학교들이 문을 닫을 때, 이를 주저하게 만든 이유들 중의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학교가 문을 닫으면 학교에 와야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아이들이 식사를 거르게 된다는 것에 대한 걱정이었다. 우리네 한인 동포 사회에도 이런 가정들이 있기는 하지만, 얼마나 우리는 이런 가정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던가 후회와 자성을 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또한 학교들이 문을 닫은 후에도, 워싱턴주 교육감실이나 대부분의 교육구는 온라인 수업에 회의적이고 부정적이었다. 그 주된 이유는 모든 학생이 컴퓨터를 갖고 있지도 않고, 각 가정에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지도 않다는 이유였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누리고 있는 현대 문명의 이기를 그저 당연한 것으로, 모두가 가진 것으로, 아니면 내가 더 많이 갖고 있음을 자랑하는 경우가 많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다준 수다한 불행과 불편함도 있지만,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유익함도 있기는 하지 않은가? (www.ewaybellev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