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그 아버지에 그 딸" - 시애틀한인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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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혜칼럼] "그 아버지에 그 딸" - 시애틀한인종교칼럼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하는 것을 성경의 지식으로는 알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주는 것보다 대접받는 것을 더 좋아한다. 


사방에서 “다고, 주세요”라고 외치고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괴로운데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것은 결코 부자들이 아니다. 


남편은 날마다 “부자는 천국 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러면 가난한 자는 천국 가기가 쉬우냐? 아니다 가난한 자는 더 어렵다.”라고 물질을 다 구제하고 선한 일에 써야 한다고 설교하는 것을 우리 교회 성도들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성도들은 모두 십일조뿐 아니라 많은 구제와 선교 헌금을 넘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그 솔선수범을 남편이 실천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믿고 따른다고 생각한다. 


나는 65세가 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의료보험이 없기 때문이고 남편은 천국 보험을 들었다고 그 돈으로 건축헌금과 선교비로 썼다. 


우리 집은 좋은 가구는 하나도 없고 일평생 가난하게 살아왔다. 세 아이들이 다 대학원까지 공부했지만 남편은 교육비를 거의 한 푼도 대주지 않았고 저들이 이 좋은 미국에서 공부하고 자립해서 지금 모두 잘살고 있다. 


그런데 내가 곁에서 보는 남편은 악착같이 자녀들과 성도들의 돈을 빼앗아서 선교비로 남들을 돕는 일을 한다.

 

러시아 교회에서 새로 성전 건축을 하지 않으면 정부가 문을 닫게 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마침 남편이 한국에 나가게 되었고 기적적으로 한국 큰 교회들과 사람들이 많은 사례비와 선교비를 주어 그 교회를 도우라는 뜻이라고 그 돈을 전부 그 교회에 드렸고 모자라는 금액은 우리 교회 성도님들과 한국에서 영어 교사로 일하고 있는 막내딸이 은행에 예금해 놓은 돈까지 모두 거액을 보냈다. 


그 목사님이 너무 감사하시고 교회를 잘 수리하고 남편을 초청해서 14주년 창립예배를 잘 드렸고 그 교회가 우리 교회보다도 더 아름답게 단장을 했고 크게 부흥하고 있어서 보람을 느꼈다.

 

  어느 주일에 40일 금식을 많이 하셨다는 기도원에서 만난 젊은 목사님이 우리 교회에 나오셔서 아름다운 찬양을 본인이 피아노를 치시면서 간절히 부르는데 눈물이 나고 너무나 은혜로웠다. 


피아노도 잘 치고 고치기도 하고 달란트가 많은 목사님이신데 남편에게 형님이라고 긴 통화를 하고 남편은 기도를 많이 하는 신령한 아우 목사님이 생겼으니 너무 좋은 것 같고 그 말을 경청한다. 


서로 반말까지 하며 너무 다정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더니 그 아우님 차가 너무 고물이라고 남편이 새 차를 한 대 사주겠다고 사방으로 보러 다니고 나중에는 큰딸과 사위까지 인터넷으로 차를 알아보느라고 소동이 났다. 


남편은 항상 은행에 돈이 있는 사람이 아니니 론을 해서 사야 하니 돈 있는 딸이 꾸어줄 수밖에 없다. 


딸에게 꾸어서 새 차를 사드리고 딸에게 다달이 돈을 내기로 했는데 우리 차가 또 길에서 서게 되어 우리 차를 사게 되었다. 


결국 딸이 그 돈은 다 탕감해주고 사위가 탔던 차를 우리에게 주고 남은 금액을 조금씩 내는데 그것도 이리저리 감해 준다.

 

  그 목사님께 차를 사드린 날이 바로 2010년 내 생일날로 차를 사러 다니느라 밥도 굶었다고 한다. 


결혼 40년 동안에 내 생일 선물 한 번도 사준 적이 없는 야속한 남편이 남에게는 이렇게 빚을 내어 잘해 주니 너무 화가 나지만 신령한 목사님께 귀한 선물을 한 것은 내 생일에 최고로 좋은 선물을 나에게 해준 것이라고 자위하고 평강하지 않으면 결국 나만 손해가 아닌가.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라는 말씀을 암송하면서 인색한 나를 책망하고 회개해야만 했다. 


남편은 차를 사느라고 종일 굶었고 나는 교회 아카데미 학교를 위해 금식을 했고 그날이 수요일이라 저녁 예배에 막내딸이 장미꽃다발을 사 와서 축하해주었고 큰딸은 케잌을 사 와서 전 교인들과 나누었다. 


  2009년에 남편의 일에 반대하다가 세 번씩이나 넘어져서 손이 부러지고 어깨와 무릎에 금이 가고 너무나 수난을 많이 당해서 이제는 남편에게 절대 순종하겠다고 결심하지만 참 어렵다. 


그런데 우리 딸들은 어찌 아버지에게 반대를 한 번도 안 하고 그렇게 순종을 잘하는지 나는 의문이다. 


남편은 그렇게 남에게 퍼준다고 나에게 부족한 것이 있었는가 생각하면 하나도 없었지 않았느냐고 하는데 나는 할 말이 없다.

 

  큰딸은 사위가 의대를 졸업하고 우리 교회에서 일하려고 이곳 병원에 마취과 의사로 왔는데 병원에서 최고로 보수를 많이 받는 사람이 되었고 나이도 어린데 대표로 뽑혔다고 하고 작년에 교회에 거금을 헌금했고 다른 곳에도 많은 헌금을 했다고 한다. 


우리 교회에 선교사님들이 하루 저녁에 선교보고를 하러 오시면 딸이 500불을 헌금하면 1,000불을 드리고 딸이 1,000불을 헌금하면 1,500불을 사례비로 드린다.


  모두가 불경기라고 하는 때에 딸과 아들에게 놀라운 복을 주신 것은 남편이 이렇게 식물을 물 위로 아낌없이 던져 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직 감사만 하면서 남편이 하는 일을 지켜보기만 하면 된다고 기도할 때마다 결심하면서도 계속 실패한다. 


그런데 그 아우 목사님이 가정에 실패하고 어디론가 사라져서 연락이 끊어졌다. 


나는 새벽에 달란트가 많은 신령한 그 아우 목사님이 이 세상을 이기고 많은 사람들을 옳은 길로 인도하는 목사님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린다.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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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1월과 2월에는 아직 팬데믹 전이라 남편이 멕시코와 한국과 대만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4월에도 남편이 한국에 또 가기로 했다가 코로나로 가지 못하고 11월에 한국에 가서는 두 주간 격리까지 하면서 새터민 신학생들을 만나고 오기도 했다.

 

  작년 6월, 코로나19로 선교를 갈 수도 없고 모두가 너무나 어렵고 힘들 때에 먼 곳에 계신 성도가 거금의 헌금을 보내서 Kalos World Mission을 정부에 등록하고 선교사님들께 선교비를 보내고 7월에는 새터민 신학생들을 후원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들과 딸이 그리고 후원자들과 오아시스 교회와 행복한 성결교회가 적극적으로 후원을 해준다. 앞으로 Zoom으로 기도회도 가질 예정이고 남은 생애를 “한국과 미국과 세계를 위한 기도운동”을 더 뜨겁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탄식하고 기도하면서 이 악한 세대에 이마에 인 치심 받기를 사모하면서 살기를 소원하고 동참해 주는 동역자들이 있어서 고난의 시대에 새 힘이 나고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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