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치 울음소리 - 이성수수필가

전문가 칼럼

여치 울음소리 - 이성수수필가

이성수(수필가) 

 

한국 방문을 가서 고향집에서 여름을 지낸 일이 있다. 나는 들로 나와 전원을 구경했다. 농경지 정리가 잘 되어있고 트랙터와 자동차가 달리는 넓은 농로를 걸어 앞 시냇가에 도착했다. 어릴 때 넓은 하상(河床)에 경쾌한 소리를 내며 흘러가는 깨끗한 시냇물에서 미역 감고, 강변 둑에서 소 풀을 뜯어 먹이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오늘 와 보니 하천의 아름다운 모습은 간곳이 없고 그 넓던 내 폭은 좁아졌고 흐르던 시냇물은 말라 잡초만 무성하였다.  

상류를 막아 저수지를 만들고 물을 논으로 흘려보내어 농사를 짓기 때문에 시냇물이 말라버린 것이다. 참으로 세월의 무상함을 실감케 하였다. 

들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가 막 자라고 있고 모 포기 사이로 오리 새끼가 먹이를 찾는 모습이 보였다. 오리 새끼를 논에 풀어 놓아 기르면 오리 새끼는 벼에 있는 벌레를 잡어 먹고 주둥이로 논바닥을 헤집어 잡초를 쪼아 먹고 오리 배설물은 비료가 된다고 한다. 

벼 수확기가 되면 어미오리가 다 된 오리는 오리대로 팔리고 벼는 벼대로 수확을 하는데 이를 오리농법이라고 한다.

밭에는 은색 비닐하우스가 햇빛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동생네 하우스 안에 들어가 보았다. 후끈할 정도로 열기를 느꼈다. 1월부터 공들인 수박이 잘 자라고 있었다. 한 여름 같이 더운 비닐하우스에서 나와 초록빛 풀밭을 지나는데 여치울음소리가 들렸다.

반갑고 정든 소리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여치를 잡았다. 귀뚜라미와 메뚜기 비슷하게 생겼는데 선명한 초록색으로 체구가 아주 작았다.

오래간만에 여치를 잡고 보니 어릴 때 생각이 났다. 나는 여치소리를 좋아했다. 삼베 밭에서 우는 여치를 잡아 집을 만들어 기르면서 울음소리를 즐겼다.

여치 집은 밀짚이나 보리짚으로 만들었다. 헌집을 놓고 보면서 만들었지만 손재주가 없어 그걸 만드느라 낑낑거리면 아버지는 나선형의 멋진 여치 집을 만들어 주셨다. 노란 밀짚으로 만든 3층의 여치 집은 기름을 바른 것처럼 반들반들 윤이 났다. 이 여치 집에 갓 잡아온 여치를 넣고 대청마루 처마 밑에 매달아 놓았다. 낮이면  시도 때도 없이 울어 온 집안이 여치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쯔르르 쓰이잇! 쩍! 쓰이잇!쩍!"집안 어디선가 어머니가 베를 짜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잡은 여치를 집에 가져와 실로 발을 묶어서 대청마루에 매어 놓았다. 여치는 대청마루 문 근처에서 울었다. 몸집에 비해 소리가 컸다. 

낮이면 여치울음 소리를 듣고 밤이면 퍼런 반딧불이가 춤을 추는 밤하늘의 쇼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반딧불이는 그 수가 옛날 보다 현저히 줄어들었다. 공해물질, 미세먼지가 주원인이라고 한다. 칠흑 같은 어두운 밤하늘을 비상(飛翔)하며 짝짓기의 절정에 불빛이 가장 밝다고 하니 반딧불이는 곤충계 최고의 로맨티스트인가 보다. 앞 논에서 개구리우는 소리가 들렸다. 개굴! 개굴! 여러 마리가 떼 지어 울었다. 자연이 연주하는 거대한 합주곡이었다.

그 소리를 듣고 보니 어린 시절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자연시간에 선생님은 이렇게 물었다. 

"너희들! 왜 개구리가 혼자 울지 않고 여럿이 떼 지어 우는지 아는 사람?"

아무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자 선생님은

"혼자 울면 천적(天敵)한테 잡아먹히니까 천적을 헷갈리게 하려고 여럿이 우는 거다" 

나는 "천적이 무어유?"라고 물었다.

"천적은 쥐가 고양이한테 잡아먹힐 때 쥐의 천적이 곧 고양이다. 개구리의 천적은 뱀, 두꺼비이지" 라고 했다.

고요한 농촌의 밤에 와글와글 시끄럽게 우는 개구리의 울음소리가 잠을 방해할 줄 알았는데 그냥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 버렸다. 그것은 치아가 빠져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응얼거리듯 자장가노래를 불러주는 할머니의 등에서 잠든 아기처럼 편안하게 잠이 들었다.

나는 언제인가 옆집에서 늦게 굿을 하는데 수면에 방해될 줄 알고 걱정을 하였었다. 신들린 무당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게 우물우물 말하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 잠이 금방 들었다. 국어시간 보다 영어시간이 더 졸리다. 무슨 뜻인지 모르게 영어로 빨리 빨리 말하니까 금방 눈이 감겼다.

국민소득(GNP)이 $68! 세계에서 꼴찌로 두 번째 가난했던 나의 어린 시절은 목화(木花)를 심어 길쌈을 해 무명옷을, 삼을 심어 삼베옷을 짜 입었다. 자급자족을 한 셈이었다. 그 때는 베를 잘 짜고 길쌈을 잘하는 처녀일수록 시집을 잘 갔고 시집에서 대우를 받았다. 

워낙 어려운 때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는 남자 애들은 아주 드물었다. 하물며 여자 아이들은 너나없이 중학교에 진학을 못하고 집에서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길쌈하는 일과 베 짜는 법을 배웠다. 말하자면 신식 말로 신부수업을 받았다. 

내 위로 누나가 있었다. 누나는 동네에 사는 네 댓 또래의 아이들과 학교가 파하면 같이 집에 왔다. 와서는 보리 찬밥을 고추장에 쓱쓱 비벼 허기진 배를 채우고는 밖에 나가 함께 놀았다. 나는 남자 동갑내기가 없어 누나들이 노는 곳에 끼어 각시 놀음, 공기놀음, 고무줄놀이를 구경하였다.

나는 자치기, 제기차기, 팽이치기 등 남자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못하고 누나들이 노는 것을 흥미 있게 구경하곤 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의 성격도 여자 아이처럼 온순한 편이다.

여자아이 놀이 중에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것은 각시놀음이다, 봄에 새로 난 풀잎이 어느 정도 자랐을 때, 길이가 길고 잘 끊어지지 않는 풀잎을 뜯어 대나무 조각으로 각시 인형을 만들었다. 달걀처럼 갸름하게 생긴 얼굴, 소복한 가슴. 헌칠한 키, 긴 치마, 치렁치렁한 긴 머리가 유달리 예뻐 보였다.

어느 날 누나들은 풀이 우거진 곳에서 우는 여치를 잡았다. 여치는 떠들거나 가까이 접근하면 재빨리 도망쳐 다음 풀밭으로 날아가 몸을 숨겼다. 고무줄넘기로 단련한 날쌘 몸으로 달음박질하여 필사적으로 여치를 생포하였다. 포충망(捕蟲網)이 없었던 그 시절 맨손으로 눈치 빠르고 촉감이 예민하여 잘 도망가는 여치를 잡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여치를 놓쳐 버린 누나는 울상이었다. 그럴 때면 내가 잡아주었다.   

여치 한 마리씩을 잡은 누나들은 우리 집 대청에 모였다. 어른들은 모두 밭에서 일을 하고 계셨다. 누나들은 여치의 발과 날개를 떼어내고 불에 구어 호박잎에 싸서 억지로 목으로 삼켰다. 덜 구어 진 여치가 꼬물거렸다. 어느 누나는 징그러워 토하기도 했다. 그토록 역겨운 여치를 먹기 싫어도 참고 먹었다. 

왜 먹었을까? 여자가 여치를 평생 한 번만 먹으면 베를 잘 짠다고 하는 속담 때문이었다. 즉 여치가 "쯔르르 쯔잇!쩍! 쯔잇!쩍!!" 하고 연속으로 우는 소리가 마치 베 짜는 소리처럼 들려 여치를 구어 먹으면 베를 잘 짠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먹기 싫다고 먹지 않으면 먹은 애들은 모두 베를 선수처럼 잘 짜는데 자기만 베를 못 짜 낙오자가 된다고 믿어 악착같이 여치를 먹었다,

하지만 이런 세월은 길지 않아 새마을 사업으로 가난이 퇴치되고 목화와 삼베를  심었던 밭은 비닐하우스로 변하고 어머니의 베 짜는 소리는 사라졌다. 검정 고무신을 신고 검은 치마와 흰 무명 저고리를 입었던 누나들은 하얀 운동화를 신고 더 좋은 옷을 입고 다녔다.

세월은 흘러 누나들은 한 둘 세상을 떠나갔고 그 옛날 누나들이 모여 놀던 대청마루에서 여치는 베 짜는 소리를 내며 외롭게 울고 있다. 이 소리는 옛날 누나들과 같이 듣던 울음소리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데 누나들과 정들었던 추억들이 하나하나 오버랩(overlap)되어 눈에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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