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남편 자랑 (2005년/4월호 월간사모 주제)" -시애틀한인종교칼럼
나의 남편은 서울 마포구 공덕초등학교를 일등으로 졸업하고 교육감상으로 국어사전과 시계(그때는 귀했을 것임)를 타고 경기중학교에 들어갔고 서울대학교에 들어가서 부모,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는데 서울대학 1학년 때에 그만 신경통으로 다리를 절며 불편하게 살았다.
1년 전, 초등학교 동창생들이 모처럼 모여서 야유회를 가게 되었는데 군대에 간 친구가 신경통으로 다리를 절어서 남편이 “야, 젊은 놈이 무슨 신경통이냐?”라고 했는데 남편이 그만 신경통에 걸리게 되었다.
침도 맞고 한약, 양약을 다 써도 낫지 않아서 어머니 권유로 동네의 무당을 찾아가니 자기는 고칠 수 없다고 공주에 있는 자기 스승에게 찾아가라고 해서 찾아가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일주일을 불상들에게 정화수를 떠놓고 절까지 하며 기다리다가 무당의 안수를 받게 되었다.
남편이 친구에게 했던 이야기를 다 맞추고 그 병이 너에게 왔다고 하며 남편도 알지 못하는 죽은 조상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소상히 이야기하며 서울로 이사 가고 시골 조상들 무덤을 관리를 안 해서 이런 재앙이 임했다고 이 병을 고치기 전에는 장가갈 생각도 말라며, 큰 굿을 해야 병이 낫는다고 큰돈을 가지고 다시 오라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무당이 한 이야기들을 다 고하니 그렇게 죽은 조상들을 다 있었다고 그 무당이 너무 용하다고 한다.
다행히 그 당시에 집에 돈이 없어서 굿을 못하고 이웃에 사시던 영락교회 한경직 목사님 처제 김찬희 집사님께서 매일 신유 집회하는 곳에 찾아가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고 병이 나았다고 하는 간증을 들으며 믿게 되고 교회에도 나가게 되었다.
교회에 나가면서부터 새벽기도에 열심히 다니기 시작해서 3개월쯤 지났는데 자기도 모르게 절뚝거리던 다리가 나았다고 한다.
강팍한 자기를 주님이 그렇게 부르신 것을 나중에 알았고 그 후로부터 사방에서 많은 핍박을 받으며 목사가 되었고 신학대학 교수도 되었고 미국으로 유학을 와서 미국에서도 신학생들을 가르치다가 목회를 하게 되고 지금은 매년 중국, 멕시코, 모스코바, 모즈독(러시아 체첸부근), 파라과이에 있는 신학교에 가서 학생들과 현지 목사, 러시아 장교들을 가르치고 있다.
성경을 많이 읽다가 맞춤법이 틀린 것을 찾아내게 되어 고치다가 개역성경 교정위원이 되어 개정판을 내는 일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해외의 학자로서는 오직 한 사람으로, 하루에 신약성경은 한번 읽고 구약성경은 사흘에 한 번 읽는다고 한다.
매일 성경 읽고 책을 쓰고 하여 책을 30권이나 출판하였는데 아직도 출판할 것은 많이 있다. 책은 내용이 너무 깊어서 어려운 편이지만 깊이 연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참고서가 되리라고 믿는다.
딸 다섯 중 둘째인 나는 제일 사치하고 허영심이 많아서 한 번도 사모가 되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젊은 과부가 되신 어머니께서 매일 새벽기도 다니시더니 드디어 집에 교회를 개척하시고 신학생 전도사를 사위로 삼으시며 나를 사모 만드시는 기적도 일어나게 되었다.
다섯 딸 중에 제일 믿음이 없는 나를 사모 만드시고 눈물 골짜기를 걷게 하셨지만 지금 생각하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나는 남편의 수(秀)제자, 애(愛)제자, 독(獨)제자로 자처하며 신학교에서 가르침도 받았고 모든 예배의 말씀을 노트하며 특별히 새벽의 주옥같은 말씀에 은혜받고 “금주의 만나”라는 제목의 신앙 수필을 이곳 신문에 연재도 하고 있다.
오늘의 요만큼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하나님의 크신 섭리이겠지만 남편의 사랑과 큰 은혜다. 나는 믿음이 없어서 남편에게 불평을 많이 하였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무섭게 징계를 하셔서 즉시 깨닫게 하셨다.
너무 아파서(마음) 죽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싸매주시고 위로해 주시며 또 놀라운 복도 내려주셨는데 그 징계는 크신 사랑이셨다.
나는 남편을 벽(반석)이라고 부른다. 내가 괴로워서 아무리 때려도(말로) 말 한마디 안 하고 고민도 안 하고 잠도 잘 자고 변함없이 자기 일을 잘한다.
때리는 내 손(마음)만 상처가 날 뿐이고 너무 심하면 하나님께서 참견(징계)하시고 해결해 주시는 것 같다.
세상 재미있는 예화는 하나도 없이 거의 한 시간씩 오직 성경 말씀만 전하며 모든 비유도 성경에서 하는 신학교 강의식 설교로 모든 설교에 빠지지 않는 성도는 신학교를 나온 것 같다고 한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 18년 동안 목회하였는데 조금은 딱딱하고 신학적인 어려운 말씀을 들어왔고 앞으로도 듣고 은혜 받아야 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모든 예배에 같은 성도가 거의 같은 숫자로 나온다. 어려운 말씀에 미국에서 한국 사람 만나 교제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왔다가 그냥 가고 붙잡지도 않는다.
말씀을 사모하는(방송설교 듣고 은혜받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새벽예배부터 열심히 참석하고 있고 이곳에서 교회마다 열심히 전도하느라고 애쓰는데 우리 교회는 그 점에는 좀 약한 것 같다.
그러나 매일 새벽 2시부터 6시까지 열심히 기도하는 보배로운 성도가 있고 한국과 똑같이 금요심야기도회로부터 교회 생활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나는 우리 교회가 빌라델비아, 서머나 교회같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데 정말로 그런 교회라고 자부하고 싶다. 서로 사랑하고 너무나 조용하다. 이 모든 것이 공의와 사랑을 엄격히 전하는 목사님 설교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내가 날마다 은혜받기 때문에 나는 행복한 사모이다. 이달의 주제가 남편 자랑이라 신나게 했고 다음에 흉을 보라고 하면 또 할 말이 많이 있지만 여기는 자랑을 하라고 했으니까 자랑을 한다. (2005년 3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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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05년 3월 12일에 썼고 월간사모 4월호에 “남편 자랑”이란 주제의 글이다. 지금 읽으니 내가 남편에게 사랑의 고백을 다정하게 한 번도 못했지만 참 많이 존경하고 사랑했나보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내가 존경해 주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나?”라는 생각이 들고 그런 나를 언제나 외롭고 슬프게 하는 남편이 너무 밉기도 하다. 남편의 미운 것을 쓰라고, 흉을 보라고 하면 또 태산이다. 아마 모든 아내들이 다 그럴 것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