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주칼럼] "짜증 대신에 경청하기" -시애틀한인문학칼럼
지난 주말 매주 규칙적으로 돌리는 세탁기에 빨래를 넣고 돌리려는데, 모터가 돌지를 않는다.
유튜브의 이곳저곳을 돌아보아도 그리 뾰족한 해결책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아내와 빨래를 바구니에 넣어 마침 가까운 곳에 있는 동전을 넣어 돌리는 세탁소를 찾기로 했다 (물론 요즘은 크레딧 카드로도 결제할 수 있음). 속으로는 좀 짜증이 났지만, 별수 없이 아내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가기 전에 기다리는 동안 뭘 해야 하나를 고민하다가 물을 데워 컵라면을 채웠다. 이삼 분이면 가는 곳이니 가는 동안 라면은 맛있게 익을 것이고, 빨래를 넣은 뒤 라면을 맛있게 먹을 요량이었다. 아내는 간단한 후식으로 블루제이 귤도 잊지 않는다.
“이런, 세탁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계획에도 없는 소풍을 가네”하며 정말 피크닉을 위해 준비하는 들뜬 마음으로 콧노래가 절로 나오는 아내의 즐거움에 나도 몰래 하모니를 넣는다.
마침 세탁기가 돌아가는 것이 창문을 통해 보이는 곳에 파킹을 하고 워셔가 힘차게 돌아가는 광경을 보며 먹는 컵라면은 지금까지 먹은 어떤 특등 요리보다 더 즐거운 맛이었다.
그에 더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그것을 매개로 한 대화는 대학 시절에 캠퍼스커플로 학교 앞 다방에서 마시던 커피처럼 달콤했다. 세탁기가 돌아가지 않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던 당혹감과 짜증은 어디로 가고, 이런 호사를 누리다니! 아내가 닥친 상황이니 받아들이고 즐겁게 대처하자는 권유를 믿고 따른 결과였다.
이 일을 계기로, 대화와 받아들임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조던 피터슨 교수의 '인생의 12가지 법칙' 중의 아홉 번째 챕터인 “당신이 대화하는 사람에게서 무언가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하세요(Assume that the person you are listening to might know something you don’t)”가 떠올랐다.
이 책이 2018년에 출판될 때, 뉴욕 타임즈가 “현재 서방 세계에서 가장 대중에게 영향력이 큰 지성”이라고 극찬한 피터슨 교수의 아홉 번째 챕터는 앞선 챕터들과는 달리, 신화나 성서의 영향이라기보다는 그의 임상 심리학자로서의 경험이 전반적인 논점을 이끌고 있다.
그가 자신의 환자들과 나눈 대화의 방식과 내용, 그 결과들을 기반으로 해서 얻은 결론에 의하면 대화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다.
즉, 대화 속에서 상대의 말, 제스처나 얼굴표정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경청하는 것은 당신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의 개인적 경험을 존중하는 것이다. 당신은 대화의 상대방이 하는 말들이 그의 인생 속에서 겪은 경험을 토대로 조심스럽고 사려 깊으며 진실된 결론에 다다른 말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당신은 말하는 사람이 겪은 것과 같은 수고를 겪음이 없이 공짜로 그 경험을 체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사실 다른 사람의 경험으로부터 간접적으로 배우는 것은 훨씬 빠르고 위험이 덜하지 않은가?
이렇게 남의 이야기를 경청한다는 것은 또한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생각을 깊이 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당신 자신이 마음 속에 만든 당신의 아바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즉, 또 다른 자신과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결정하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당신이 대화를 할 때, 말하는 이의 말을 듣고 나서 그 말에 자신의 마음이 어떻게 반응하게 되는지, 그 새로운 사실이 어떻게 당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을 변화시키는지, 어떤 새로운 의문을 갖게 되는지는 자신(의 아바타)에게 귀 기울이는 것과 같다.
이렇게 생긴 변화와 의문을 말하는 상대에게 직접 말하고 의견을 나누게 되면, 두 대화자는 화제에 대한 새롭고 더 넓은 이해의 수준에 이르게 된다.
이러한 듣기와 대화를 통해 당신의 지혜는 당신이 이미 갖고 있었던 지식이 아니라, 최상의 지혜라 할 수 있는 지식을 위한 지속적인 탐구에 이르게 된다.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어구 ‘너 자신을 알라’처럼, 당신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며 자신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아니므로 계속해서 진리를 찾으려 노력해야 함을 고백하는 마음으로, 당신이 듣고 말하는 대화자로부터 새로운 것을 배우는 자세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해, ‘대화에서 당신의 상대방, 즉 당신에게 말하는 사람에게서 무언가 배울 점이 있다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화에 임하라’고 권고하는 것이다.
당신의 대화 상대가 아내처럼 가까운 사람이든, 공부에 소홀한 자녀이든, 길거리에서 마주친 타인이든 그들과의 대화를 진지하게 생각하시라. 불가에서 부부의 연은 7천 겁이며 (1겁, 4억3천2백만 년), 하루를 동행하는 것도 2천 겁의 인연이라 하니 말이다. (www.ewaybellevu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