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마 오아시스교회] 감동의 추억을 그리며 - 시애틀한인 교회칼럼
28일(14일 자가격리) 동안의 꿈같은 긴 한국 방문을 마치고 12월 3일 미국행 비행기를 탔는데 미국에 오니 또 3일이 되어 41시간의 하루를 보냈다.
한국에서 14일은 자가격리로 시간을 보냈는데 그 시간에 남편은 4 종류의 책을 정리해서 냈고 나는 그동안 미디어한국에 연재했던 것을 “내 모습 이대로”라는 제목으로 “주님이시여! 내 모습 이대로,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냈다.
이 책은 “나은혜의 신앙고백”이기도 하다. 12일 동안 한국에서 지내며 동생 부부와 파주에 있는 마장호수의 출렁다리를 거닐며 하루의 관광을 즐겼는데 날씨가 쌀쌀했지만 화창하고 맑은 아름다운 해를 주셔서 너무나 행복했다.
동생 부부는 다섯 시누이와 홀시어머니를 모시고 평생을 살면서 부부가 여행 한 번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힘들게 살았는데 90세의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부부가 작은 텃밭을 가꾸면서 무말랭이도 만들고 해외는 갈 수가 없으니 한국 전 지역을 차로 돌면서 여행을 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참 부러웠다.
남편이 모스크바 목회자 세미나에 가서 알게 된 한국 유학생이 울진에서부터 왕복 10시간이나 걸려서 찾아와서 샤브샤브를 대접하고 돌아갔다.
그 여학생은 20세에 러시아로 유학 가서 7년 동안 공부를 하고 앞으로 외교관의 꿈을 갖고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키가 크고 예쁜 아가씨가 남편의 어려운 설교집과 말씀을 사모하는 것이 너무 귀하고 예뻤다.
러시아어는 완전히 마스터했고 영어도 잘 하는 귀한 크리스천 아가씨가 한국을 빛내는 러시아 외교관이 되기를 기도한다.
이번에 숙박비, 선교비, 새터민 신학생 후원과 책 인쇄비 등으로 많은 돈이 들었는데 우리 “칼로스월드미션” 회원들의 정성의 선교비 후원으로 가능했다.
남편은 부주의로 여름 잠바를 입고 와서 내가 따뜻한 겨울 잠바를 하나 사려고 해도 집에 다 있는데 왜 쓸데없이 옷을 사느냐고 화를 내서 살 수가 없었는데 결국은 큰 형님댁에 가서 좋은 겨울 잠바를 얻어 입었다. 바지도 여름 바지를 입고 와서 나 혼자 동대문 시장에 가서 두꺼운 바지를 하나 사서 급하게 기장을 줄이고 입었다.
남편이 사방에 돈을 쓰는 것이 물 위에 식물을 뿌리는 것(전 11:1)으로 보이고 추운 겨울에 자기는 여름옷을 입고 다니는 것이 청승으로 너무 미웠다. 한국은 옷값이 아주 싼 것 같았고 경기가 안 좋아서 상가도 한산했다.
이번에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의 사랑을 많이 받게 하셔서 큰 감동을 받았다. 밤 11시, 기도회에 남편이 말씀을 전하고 3시까지 기도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학교 교사셨던 연로하신 권사님께서 내 시집 속에 봉투를 넣어 갖고 오셔서 주시면서 너무 적은 돈이지만 식사라도 한 끼 하시라고 사양을 해도 강제로 거금을 주신다.
한국 경제가 어려운데 남편을 만나러 오신 제자분들에게 차비와 식사비로 5만원씩 4분에게 넣어 드렸는데 저들이 30만 원, 10만 원씩 주어서 나를 부끄럽게 했는데 남편의 생일이었기 때문인가 보았다.
내 외사촌 동생은 100불짜리 새 돈 1,000불을 봉투에 넣어주어서 깜짝 놀랐다. 나는 남편에게 책 인쇄비로 그 돈을 주었는데 남편은 본래 1,000불을 러시아에 선교비로 보내려고 했는데 그 돈을 보태어 2,000불을 보냈다고 하니 동생은 러시아에 선교를 한 셈이 되었다.
교회에서 P 권사님은 100불짜리 새 달러를 봉투에 넣어주셨고 최 장로님, 오 선생님께서 거금들을 후원해 주셔서 넉넉한 선교여행을 하게 하셨다.
점심과 식사도 정성으로 대접해 주시고 사랑의 선물들도 주셨다. 이렇게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이고 돈을 따라 사랑도 이렇게 돌고 돌아서 세상이 따뜻하고 살맛이 나는 것이다.
나는 인색한 편이라 돈을 잘 쓸 줄 모르는데 회개하면서 남은 생은 돈을 쓰면서 살리라 일대 결심을 하고 “칼로스월드미션”을 만들고 선교사님들과 새터민 신학생들을 후원하는 일을 하도록 남편과 귀한 동역자와 우리 자녀들과 내 동생들과 믿음의 동지들에게 일대 설파를 해서 후원자들을 만들고 내 남은 생애의 목표로 간절히 기도하면서 사역을 올해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주님은 계속 감동의 역사를 만들어주시고 위로해 주신다. 이번에 또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다. 서울문리대 수학과 동문이고 남편과 연세도 같은 분을 만났다.
오랫동안 수학교사와 학워강사로 계셨고, 예수님을 믿지 않고 허랑방탕하셨고, 그래서 아내도 일찍 잃고 본인은 직장암으로 고생하셨는데 딸이 전도했고 남편의 ‘제사장나라’ 등 책 4권을 읽고 큰 은혜를 받으셔서 남편이 한국에 온다는 소식을 듣고 사모했다가 주일에 “선민의 땅”이라는 설교를 듣고 크게 은혜를 받으셨다고 하신다.
조용히 남편과 신앙 상담을 하고 싶었는데 자기가 준비한 질문의 수준이 너무 낮아서 더 공부하고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기로 하자고 하시면서 일 년에 6개월은 한국에 오셔서 사시면 좋겠다고 하며 말씀을 사모하신다.
남편의 책 출판비는 모두 자신이 대겠다고 하시며 처음 만난 분께서 잊지 못할 감동을 주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늘의 위로와 상을 내려주시는 것이니 감격이다.
“온 세계에 나아가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라!”라는 표어를 청년들이 50년 전, 기도 중에 받고 힘들게 교회를 건축하고 우리는 미국으로 왔는데 3대째 후임자의 세상 욕심으로 교회를 팔아 미국으로 도주했고 지금은 죽었다고 한다.
노 장로님께서 17년 동안 재판을 하고 싸워서 이기고 21억의 교회 재산을 지키고 교회를 다시 건축하려고 하는데 교회를 개척한 과정을 써 주시면 책으로 남기겠다고 하시는데 남편은 별로 흔적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아서 내가 과거의 일기장을 찾아서 써보려고 한다.
간증을 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주님께서 쓰라고 하시면 써야 한다. 내 모습 이대로, 주님 앞에 고하면서 용서하시는 주님께서 내 믿음이 연약하여 고민하면서 울고 통곡하며 살았지만 주님께서 한량없는 은혜를 풍성히 내려주셔서 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들에게 넘치는 사랑을 받게 하신다. 저들의 뜨거운 사랑은 이 악한 불신의 세상에서 주님의 모습을 보여달라는 간청으로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주님의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의 목회자인 우리 부부의 남은 생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