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 문학칼럼] “흥남 철수작전”의 위대한 人道主義 - 시애틀한인 문학칼럼
해마다 12월이 돌아오면 처절했던 “흥남 철수작전”의 다급한 현장이 눈앞에 나타난다. 6·25전쟁이 일어난 1950년의 12월 12일부터 24일까지 13일 동안 전개된 “흥남 철수작전”은 같은 해의 9월 15일에 결행한 “인천 상륙작전”과 함께 세계 전쟁사(戰爭史)에 영원히 기록될 위대한 군사작전이라고 하겠다.
“흥남 철수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감행된 저 유명한 “단켈크 철수작전”과 매우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단켈크 철수작전”은 독일군의 막강한 기계화 부대에 밀린 영국군과 불란서 군대가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철수하느라 뒤따라 오는 민간인을 구출하지 못하고 군인들만 빠져 나왔다. 그런데 “흥남 철수작전”은 10만이나 되는 민간인까지 동시에 구출해냄으로써 위대한 인도주의를 실현한 것이다.
6·25전쟁은 김일성이 1950년의 6월 25일 새벽 4시에 38선 전역에서 소련의 스탈린이 지원한 T-34 탱크를 앞세운 막강한 인민군의 기습공격에 우리 국군과 UN군은 속수무책으로 낙동강까지 밀린 위기에 직면했다. 그러나 9월 15일에 단행한 “인천 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켜 10월 1일에 38선을 동파해 압록강까지 진격해 통일을 눈앞에 두었다.
이때 30만에 이르는 중공군이 압록강을 넘어와 개마고원(蓋馬高原)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잠복해 있다가 11월 27일을 기해 장진호(長津湖) 주변에서 작전 중이던 미 해병 1사단을 인해전술로 포위 공격해 왔다. 엄동설한에 갑자기 당한 이 기습공격에 미군은 7천 명에 이르는 희생자를 내고서 후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전세가 이렇게 다급해지자 장진호 주변을 포함한 동북부 지역을 담당한 미 10군단(군단장 아몬드 장군)과 동해안을 따라 청진(淸津) 방면을 향해 북진하던 우리 수도사단과 제3사단을 포함한 국군 1군단(군단장 김백일 장군)까지도 함께 흥남부두에 집결해 힘겨운 철수작전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이 작전은 중공군의 끈질긴 추격을 받으면서도 군 병력 11만뿐만 아니라 군용 차량 1만 8천 대, 기타 장비 35만 톤을 철수시켜야 하는 힘겨운 전투였다. 이 방대한 철수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중에도 UN군은 흥남부두를 인해전술로 공격해 오는 중공군을 저지하고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바다에서는 함포사격을, 공중에서는 항공모함에서 발진한 함재기의 폭격과 기총소사를 계속해서 퍼부었다.
이 다급한 상황에서 10만이나 되는 우리 피난만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무사히 구출시킨 “흥남 철수작전”은 인도주의를 나타낸 본보기라고 하겠다. 뼈를 깎는 듯한 혹한 속에서 중공군의 끈질긴 추격을 물리치면서 이렇게 양민을 안전하게 구출했다는 사실은 기적이 아닐 수 없다. 생사가 엇갈리는 이 위급한 상황 속에서 10만이나 되는 군중이 서로 아귀다툼하는 패닉 현상을 일으키지 않고 끝까지 질서를 유지했다는 사실도 기적이다.
이들은 영하 20도의 혹한 속에서 수송선(LST)의 차례를 기다리느라 부두 앞 허허벌판에서 굶주림을 견뎌내며 며칠 밤을 지새워야 하는 했다. 그러다가 수송선이 부두에 접안하면 국군의 안내에 따라 승선하는 과정에서도 노약자나 부녀자들을 우선했던 것이다. 취사 시설이 없는 수송선(LST)에서 굶주리는 이들 피난민들에게 UN군은 군함에서 밥을 지어 드럼통에 담아 날라다 배식할 때에도 조용히 차례를 지켰다고 하니 이 진실로 감동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위대한 인도주의를 실현한 “흥남 철수작전”을 이끌어낸 주역은 우리 국군 1군단장 김백일 장군과 당시 미 10군단장 “아몬드” 장군의 보좌관 “테드 포니” 대령, 그리고 “아몬드” 장군의 민사담당 겸 통역을 맡은 현학봉(玄學鳳) 박사의 필사적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흥남부두에서 이렇게 승선한 10만의 피난민은 해군함정의 호위를 받아 경상남도까지 내려와 일부는 부산에 내리고, 대부분 거주도의 장승포 항구에 안전하게 도착해 임시 수용소에서 머물다가 민가에 분산해 정착하게 되었다.
이렇게 위대한 흥남 철수작전을 역사에 길이 보존하기 위해 거제도의 옛 포로수용소 자리에 “흥남 철수작전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철수 작전의 주역들의 동상과 공적비를 세우고 해마다 추모행사까지 거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