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 칼럼] Hungry 정신으로 일하던 시절 - 시애틀한인로컬칼럼
오늘의 한국 사회는 좌파 정부가 부추기는 이념분쟁 때문에 국론이 갈기갈기 찢어져 나라의 장래가 너무도 암담해 지난날 ‘조국 근대화’라는 국정지표를 앞세우고 온 국민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 일하던 시절이 모질게도 그리워진다.
그 당시에도 좌파세력이 있었으나 오늘날처럼 저질적 행동은 하지 않고 다만 확고한 철학과 신념으로 일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개발 독재>로 매도했고, 그 “개발독재”를 따라 Hungry 정신으로 구슬땀을 흘리던 기성세대를 <수구 골통>이라고 조롱했던 것이다.
당시 좌파세력으로부터 “수구 골통”이라고 모욕당한 세대는 배고프던 시절에 허리띠를 졸라매고 5000년 내려오던 가난을 물리친 세대다. 이들 “수구 골통”은 인류역사에서 일찍이 유례없던 20세기의 험난한 역사의 소용돌이와 6.25전쟁의 폐허를 헤치고 일어나 악착같이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과정에서 “Hungry 정신”이 생겼다.
이들 “수구 골통”은 Hungry 정신으로 미군부대에서 불하 받은 드럼통과 지프차 엔진으로 시발택시를 조립해 요긴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고, 엿장수가 수집한 아낙네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수출해 국가 경제개발에 다소나마 이바지했다.
수구 골통은 또한 서독(西獨)에 일자리가 생겨 광부는 지하 1000미터나 되는 지하 갱도에서 땀을 흘렸고, 간호사는 영안실에서 굳은 시체를 알코올로 닦는 무서운 일을 해서 막대한 외화를 벌어 고국으로 송금했다. 서독 정부는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광부와 간호사를 담보로 막대한 차관까지 제공해 가난에 허덕이던 나라 경제개발에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수구 골통은 이와 같이 개발독재와 찰떡궁합을 이루어 월남전에도 참전해 막대한 국익을 챙겼을 뿐만 아니라 한미동맹도 더욱 굳게 다져졌다. 마침 중동에서도 건설 붐이 일어나 수구 공통은 여기에도 대거 뛰어들어 뙤약볕에서 막대한 오일 달러까지 벌어들였다. 이렇게 벌어들인 외화로 당시 자동차도 별로 없던 시절에 고속도로를 건설했고, 철광석도 나지 않는 나라에 제철소부터 건설해 일찍이 산업화의 기틀을 다졌던 것이다. 이리하여 울산에 석유 화학단지를, 구미에 전자 공업단지를, 창원에 기계 공업단지를, 거제도에 조선(造船) 공업단지를 건설했다. “개발독재”는 첨단 과학기술의 미래에 대비하고자 서울 홍릉에 과학기술원(KIST)를 설치하고, 충청남도 대덕에 대규모 연구 단지를 조성하고서는 외국에서 명성을 떨치던 우리 과학두뇌를 파격적 대우로 유치해 오늘의 과학 선진국 기틀을 다졌다.
“개발독재는 산업화가 이렇게 순조롭게 진첩되자 정신무화도 함께 병행시키고자 경기도 성남시에 ‘정신문화원”을 설립했다. 그리고 황폐된 역사적 유적지를 복원하기 위해 충청남도 온양에 위치한 이순신 장군의 현충사를 대대적으로 보수해 성역화 하는 동시, 수원성(水原城)도 옛 모습으로 복원해 역사 유적의 명소로 만들었다.
“개발독재”와 “수구 골통”은 70년대 초에 새마을 운동을 전개해 “근면과 자조, 협동”이라는 역동적인 행동지표를 내걸고 부락 공동으로 개발사업에 착수했다. 새마을 운동은 초가집을 개량하고 마을 안 길을 넓히는 사소한 일로 시작해 전국으로 확산되면서 거대한 “민족의 의식 개혁운동”으로 승화시켜 오늘날에는 UN(국제연합)이 저개발 국가의 농촌개발 모델로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수구 골통”은 개발독재의 적극적 뒷받침으로 새로운 다수확 벼 품종 “통일벼”를 개발함으로써 녹색혁명에도 성공해 한(恨) 많은 보릿고개를 허물고 비로소 쌀밥을 배불리 먹게 된 것이다. 이리하여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 에티오피아 원조가지 받던 대한민국을 오늘날에는 원조하는 나라로 만든 것이다.
이렇게 Hungry 정신으로 가난한 나라를 선진국 대열에 세운 주역들을 “수구 골통”이라 매도하던 지난날의 386 운동권 세대도 세월이 흘러 오늘날에는 사회 구성원의 중심축이 되었으니 세상을 바라보는 혜안도 생겼을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 좌파정부는 아직도 옛 관념을 버리지 않고 이념분쟁을 일으키고 있으니 이들이 바로 현대판 수구 골통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