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마 제일침레교회]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라(전우일 목사)
□ 본문: 요한복음 17:21-23
오늘 본문 요한복음 17장에 예수님의 중보 기도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 마지막 밤에도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하시면서 특별히 모두가 하나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기도하신 하나됨은 세상에서 말하는 연합과 동맹의 개념이 아니라,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 가 되기를 원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 온전함을 이루라
주님이 말씀하신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함께 생각해야 할 전제가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완전하시지만 사람은 완전할 수 없고 완벽할 수도 없다는 이 전제를 깨달아야 온전함이 시작되어 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완벽함을 이루지 못하는 저와 여러분을 정죄하고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온전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님이 기도하시면서 말씀하신 ‘온전하다’는 단어의 뜻은 ‘완벽하다’라는 의미 보다는,‘흠이 없다’, ‘정결하다’라는 뜻이 더 강합니다. 즉,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하여 희생 제물을 드릴 때에는 상한 데가 없고 흠이 없는 동물 즉, 완벽한 동물이 아니라 온전한 상태의 동물을 드리듯이, 앞으로 제자들이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도록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욥1:1]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대로 욥은 당시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하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훌륭한 자 이었습니다. 또한 욥은 언제나 예배에도 최선을 다하며 정결하게 살아왔습니다. 즉, 오늘 우리가 말하고 있는 ‘온전한 자’, ‘흠이 없는 자’의 모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탄은 욥의 온전함을 의심하며 무너뜨리기 위하여 고난을 가져옵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하나님이 인정하시는(주님이 기도하신) 온전함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극심한 고난으로 욥의 가진 모든 소유와 가족과 욥의 몸을 치게 되면서, 욥의 온전함을 무너뜨릴 수 있는가에 대한 긴 여정의 이야기가 42장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욥기서를 읽다 보면, 욥이 당하는 고난을 통해서 오히려 주님이 기도하시고 계시는 온전함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됩니다. 욥이 자기의 능력으로 끝까지 온전함을 지킬 수 있어서, 그 보상의 결과로서 욥이 ‘의인’ 으로서 인정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욥의 온전함을 지켜 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로 하나님은 이미 욥기 [1장] 에서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욥을 주의 깊게 바라보셨다’ 는 이 말씀이 그 증거입니다. 즉, 우리 하나님은 처음부터 욥의 중심을 보고 계셨으며 그의 온전함과 정직함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과 순종까지도 다 알고 계셨습니다.
…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욥42:9]
욥을 주의 깊게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거대한 고난의 시간 동안에 함께 아파하시고 함께 인내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욥기서의 결론인 마지막 장에서 욥을 회복시키시면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다’고 선포하십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 이것 보다 더 감사한 회복의 말씀이 어디에 있을까요? 아무리 이전의 소유보다 갑절로 늘어났다고 해도, 더 잘 살게 되어 졌다고 할 지라도 우리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지 않는 인생 이라면’, 이 모든 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즉, 겉으로 보기에는 정직하고 경건하게 보여지고 온전한 자처럼 보여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지 않는 인생이라면 그 인생이 얼마나 비참하고 무의미한 인생 이겠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욥기서를 묵상하면서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옛사람이 바로 이와 같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어떤 신학자는 우리의 옛사람에 관하여 이렇게 까지 이야기합니다. “우리의 존재가 마치 벼룩의 옷깃에 꽂힌 핀 위에 묻는 작은 먼지만도 못한 하찮은 존재였음을 기억하라!”) - 소망도 없던 인생, 옛날 어르신들 말로서 지옥 불의 불쏘시개도로도 못 써 먹을 더러운 죄인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회복’ 하셨습니다. 이 불의한 인생을 구원하시고 ‘온전함을 지켜주시고’, ‘기쁘게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아들에게 십자가의 고난을 허락하시면서 까지(그 고통을 함께 인내하시면서까지) 우리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마치 집으로 돌아오고 있는 탕자를 보자 마자 한 걸음에 급하게 달려가 덥석 안아 주었던 탕자의 아버지처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를 기쁘게 받아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우리는 고난의 신비를 알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에 지나갔던 크고 작은 그 고난들이 왜, 어떤 이유로 나에게 왔는지? 우리는 이해 할 수 없습니다. 이번에는 이길 줄 알았는데, 막상 고난이 찾아오면 한 순간도 견디지를 못합니다… 내 주변에 나의 괴로움을 들어 줄 수 있는 친구도 다 없어집니다. 고난 속에서. 신음하며, 가슴이 저릴 정도의 외로움과 아픔을 곱씹으며, 마치 길가에 버려진 낙엽처럼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다가 없어져 버릴 것 같은 그런 불안함만이 남겨집니다. 내 힘으로 어떻게 그 고난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내가 완벽하지 않은데, 내가 어떻게 나 스스로 그 거대한 폭풍과 같은 고난에 맞서서 싸워 온전함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 고난을 통해서 결국 더 확실해 지는 것이 있습니다. 이런 나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는 이 한 마디가 더 깊게 새겨지는 것입니다. 욥을 지켜 내셨던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나도 지켜보고 계셨고, 끝까지 나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또 다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2.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라
‘하나 될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오직 주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함에 이르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실 여기서부터 어려워집니다. 왜냐하면 지금 주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됨의 기준은, ‘삼위 일체’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즉, 완전하신 예수님과, 완전하신 하나님, 그리고 완전하신 성령께서 완벽한/완전한 삼위 일체로서 ‘하나’이십니다.
[엡4:4]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여러분. 이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기도하신 ‘하나 됨’은 교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은 완전하지도 않고 노력한다고 해서 완전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완전하신 예수 그리스도 즉,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의 머리이시니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서 한 몸을 이룬 우리가 완전함에 속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연합하여 완벽하고 온전한 하나됨의 교회를 통하여, 2000여 년 전에 주님이 하신 중보 기도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세상이 보게 됩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우리와 같이 구원을 받아 온전함에 이르게 되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온전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요17:23)… 할렐루야!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온전함을 이루며 살아가기 위하여서 먼저 기억해야 할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서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매 순간 완전하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서부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적 산 제물로서, 온전함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믿음의 식구 여러분, 혹시라도 고난 가운데 계신 분이 계시는지요? 그렇다면 결국 오늘 우리는 욥의 모습을 보면서, 결국 한 사람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며, 우리가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시지 아니하시고 단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종의 형체안에 자기를 가두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십자가의 그 참혹한 고난과 죽음을 당하셔야 했던 참 의인이신 예수님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욥을 의심하고 시험하였던 사탄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완전한 의인이신 예수님에게도 또 다시 광야에서 시험하였지만 그러나 주님은 완벽하게 승리하심으로 온전함의 본을 보여 주셨음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믿음의 식구 여러분, 우리가 어떤 고난 가운데 있을 지라도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회복시키십니다. “내가 너를 이미 기쁘게 받았다”는 그 음성 하나 만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 될 줄로 믿습니다. 욥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계시던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동자로 저와 여러분을 바라보시며 우리의 온전함을 지키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부터 다시 욥과 같이, 정직하고 악에서 떠난 삶, 경건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인정하고 선포하시는 ‘온전한 삶’으로 하나가 이루어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나눔 묵상 질문]
1. 하나님의 완전함과 우리의 온전함이 다른 점은 무엇입니까?
2. 나와 교회가 온전하여 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3.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당신은 무엇을 먼저 하시겠습니까?
4. 하나님께서 회복하시는 방법을 경험해 본 적이 있습니까?
5. 하나님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