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한 해의 끝자락에서....”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한 해의 끝자락에서....”

달력의 마지막 장을 벽에 걸어놓고 이 글을 쓴다. 


1년 전에 이와 비슷한 글을 쓴 것이 엊그제 같은데 1년이 흘러갔다. 참으로 세월이 빠름을 새삼 느껴본다. 늘 하는 이야기지만 청소년 시절엔 세월이 지겹게도 더디 가더니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세월이 빨라지고 가속도가 붙는다. 활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그렇게 빠르게 세월이 흘러간다. 


물은 느리게 흐르는 듯하지만 꾸준히 흐르기 때문에 작은 강이 큰 강으로 되고 그것이 다시 흘러 바다로 합쳐진다. 바다로 합쳐진 물은 종적이 없이 사라진다. 그냥 큰물에 안겨 하나가 된 것이다. 물은 흐르다가 돌이나 나뭇등걸에 걸리면 그것을 피해서 아래로, 낮은 곳으로 흐른다. 세월도 물처럼 그렇게 흐른다. 


중간에 멈추거나 그치지 않고 계속 흐른다. 그래서 세월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흐르는 세월 속에서 우리는 한 세상을 살다가 간다. 흐르는 세월은 그냥 계속 내버려 두고 말이다. 세월 속에서 우리의 일생은 한 점에 불과하고 한순간에 불과하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내보냈다가 다시 거둬 간다. 그냥 한없이 내버려 두면 이 세상이 인간으로 꽉 차서 서로 부딪치며 싸운다. 그래서 오래 두지 않고 한순간을 살다가 가게 한다. 우리 인간은 흐르는 세월을 거부하거나 중지시킬 수가 없다. 


하늘의 뜻대로 아무 말 없이 꼼짝 못 하고 순종하며 살다가 가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삶이고 한평생이다. 그렇게 한순간을 살다가 갈 바에는 물처럼 순종하며 살다가 가고 싶다. 어차피 우리 마음대로는 살 수가 없는 세상이니까.... 


물은 만물을 씻어준다. 그리고 물은 만물을 잘 자라게 하고 길러준다. 사람의 한평생은 조용하지 않고 시끄럽다. 사람 대부분은 지위가 올라갈수록 마음도 높아져서 세상이 시끄러워진다. 


산꼭대기에서 한두 방울씩 떨어지는 물은 계곡을 따라 실처럼 가늘게 흐르다가 차츰 작은 내를 이루고 그러다가 큰 물줄기를 이루고 강줄기를 만나면 강에 합해 흐르고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그런 긴 세월을 흐르면서 물은 한 번도 거슬러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만 흘러간다. 


물줄기가 커지면 커질수록 점점 더 낮은 곳으로 흐르면서 나무뿌리를 만나면 물을 대주고 흐른다. 이런 물의 겸양지덕은 자꾸만 높아지려고 발버둥 치다가 떨어지는 우리 인간이 평생 동안 깨우치고 실천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의 덕성은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공덕과 만물을 키워주는 큰 일을 하면서도 겸손하고 조용하다. 우리 인간에게 겸양의 덕을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더 예로 들자면 물은 정성스럽다는 것이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힘이 없는 듯하지만 딱딱한 돌도 뚫는 것을 우리가 알고 있는데 이는 끊임 없는 정성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부드러운 물의 성품은 그 물이 담기는 그릇에 따라 형체를 자유로이 내가 맡긴다. 그런가 하면 서로 합할 줄 알아서 천 갈래 만 갈래로 흩어져 있던 물줄기들이 하나가 되어 바다를 이루게 된다. 그리고 물은 멈춰 있을 줄을 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방죽이나 저수지에 담겨 있다가 필요할 때 쓰게 한다. 우리 인간도 이와 같이 준비하고 저축하는 시간과 장소가 있어야 한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뒤돌아보며 관조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들여다 볼 수 있고 자신이 가야 하고 실천해야 할 목표와 목적지를 찾아갈 수가 있다. 한 해의 끝자락에서 오늘은 물의 교훈을 독자들에게 전하며 또한 내 자신도 그 교훈을 받아들여 지나온 한 해를 반성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새해에는 물처럼 여유 있고 유연하게 살아가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다가 가는 마지막 순간에 …껄, ...껄, ...껄 세 번 정도 하다가 간다고 한다. 지금부터라도.... 한 해를 보내는 이 순간이라도 우리는 너무 많고 크게 후회하지 않도록 자신을 물처럼 양보하며 유유히 살아가야 할 것이다. 


이 한 해를 보내면서 우리 모두 물처럼 사는 삶을 살아보자.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 물태우라는 별명을 가진 분이 있었다. 그분이 시애틀을 방문했을 때 나와 악수를 했는데 그 때 내가 질문을 했다. “왜 별명이 물태우입니까?” 했더니 그분 답변이 “물태우가 아주 좋은 별명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분의 별명이 정말 철학적이고 대통령에 걸맞은 별명임을 알았다. 새해는 우리 모두 물처럼 살아가는 한 해가 되어보자. 흐르다가 돌이나 나무등걸에 걸리면 돌아가고 잠시 머물다가 다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처럼 그렇게 여유 있게 말이다.


0 Comments
제목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