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회계사 안상목회계칼럼] 633. 화폐수량설 파괴 다음의 의문 - 시애틀한인로컬회계칼럼
화폐수량설이 성립하는 경우는, 화폐의 양에는 영향을 주고 재화 및 용역의 공급이나 수요에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어떤 충격이 발생했을 때뿐이다. 지난 주 칼럼(632호: 이자율 조정의 효과)에서 언급된, 루즈벨트(32) 행정부의 잉여농산물 정책이 그러한 경우였는지를 다시 들여다본다.
칼럼 426호(연방잉여물공사)에 언급된 두 가지 사건을 들여다본다. 하나는 정부가 과잉생산되는 목화밭을 갈아엎어버린 농민에게 그 대가를 지급한 일. 이것은 면화의 공급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또 하나는 정부가 돼지새끼 6백만 마리를 사들여 도살한 다음 통조림으로 만들어 극빈자들에게 나누어준 일. 이것은 돼지고기 수요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돈의 움직임만을 노려보면, 위 두 가지 행정조치에서 생산물은 줄어들거나 변화하지 않는 반면 돈은 시중으로 흘러갔고, 동시에 해당 품목 가격의 폭락은 방지되었다. 얼른 보면, 이것은 화폐수량설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진실이 보인다.
첫째, 계산방식이 다르다. 화폐수량설에서는 화폐의 증가에 비례하여 물가가 상승한다. 그러나 위 두 가지 조치에서는 그 비례가 깨어졌다. 목화의 생산을 일부 중단하지 않으면 목화 가격은 남아도는 면화만큼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더욱 큰 폭으로 폭락하게 되어 있었다. 돼지고기를 정부에서 사주지 않는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이러한 이치는 칼럼 425호(대공황과 곡물시장)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둘째, 물가를 움직이는 동력의 위치가 다르다. 화폐수량설에 의하면, 물가를 움직이는 동력은 통화량에 붙어 있다. 당시 행정부는 물량을 조절해서 물가를 안정시킨 것이며, 돈의 변화는 그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일어났을 뿐이다. 당시 농가는 돈이 생기는 대로 빚을 갚았고, 빚을 갚는 만큼은 돈이 줄어들었다. 그래서 돈이 늘어나는 것도 잠시였다. 위 첫 문단의 의문에 대한 답은 나왔다. 루즈벨트(32) 행정부의 잉여농산물 정책도 화폐수량설을 뒷받침하지 못한다.
프리드만이 발견한 것은 통화량과 물가가 동행한다는 통계적 사실이었다. 그것을 기초로 “통화량이 물가를 좌우한다”는 결론에 이른 것은, “화폐는 어음이다” 하는 사실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리드만 같은 저명한 학자의 책을 읽어서는 “화폐는 어음이다” 하는 사실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낼 수 없다.
화폐가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주는 문헌은 실무 문서다. 예들 들면, 누구라도 구글에서 “12 USC 411”으로 검색하면 “미국돈은 미국정부가 발행하는 어음이며, 미국의 모든 은행에서 받아들여지며, 세금, 관세 기타 모든 공공 징수금의 지불에 사용된다”고 하는 법조문을 들여다볼 수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 특히 중앙은행에서 일하는 경제학자들이 “달러화의 발행자는 그 달러에 대해 채무를 지고 있지만, 비트코인에게는 그러한 채무자가 없다”고 말하는 것으로 봐서, 이 법문을 아는 경제학자는 많은 듯하다. 문제는 그들이 그 의미를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연준의 장부와 다른 중앙은행들의 장부를 보면, 위 문단의 미국법이 말하는 바와 일치한다. 지난 6개의 칼럼에서 검토한 바, 각 중앙은행들이 세세한 과정을 설명한 문헌에서도 꼭 같은 내용이 발견된다. 이상한 일이지만, 같은 중앙은행들의 실무 문헌에는 정반대의 설명도 발견된다. 예를 들면, “지폐 자체는 아무 가치가 없는 종이조각이다” 같은 표현이다.
지폐가 어음인 줄도 알고 어음은 그냥 종이조각이 아닌 줄도 아는 그들이 “지폐는 그냥 종이조각이다” 하는 것은 비논리적이지만, 그것을 비논리적이라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한 개의 논리적 관문을 넘어야 한다. 어음은 “돈을 갚겠다”는 약속이다. 그러나 돈 그 자체가 어음이라면, 돈은 무엇을 갚겠다는 약속인가? 앞서 소개한 법(12 USC 411)에는 “법화(lawful money)로 갚겠다”고 되어 있고, 그 법이 생겨났을 때의 법화는 금과 연결되어 있었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선언으로 인하여 법화와 금과의 연결이 없어졌으니, 이제 그 법화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의문에 답을 써야만 한다.
앞 문단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다음 주에는 지금까지 없던 전혀 새로운 모험의 영역으로 발을 들여놓고자 한다. 즉, 돈을 해부하여 ‘가치’ 부분과 ‘채권채무관계 표시’ 부분으로 나누어 놓고, 그 각각의 의미를 따로따로 파악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