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 칼럼] 떡볶이(2) : 시애틀 한인 로컬 소셜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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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 칼럼] 떡볶이(2) : 시애틀 한인 로컬 소셜 칼럼

000는 약속을 정해놓고도 잘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홈리스 고객들을 상대로 쿠킹테라피교육을 시작한 지가 6개월 되던 어느 쿠킹테라피 시간에 000가 나타났었다. 그리고는 그날 이후 우리 사무실로 찾아와서는 자기도 쿠킹테라피 시간에 오고 싶다고 해서 매주 금요일 낮에 진행하는 쿠킹클래스 시간에 미리 와서 기다렸다. 손톱도 깨끗하게 자르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긴 머리는 뒤로 묶고서는 내가 전해주는 앞치마를 두르고는 뭐를 할까? 기다리는 모습이 도대체 00는 무슨 증상일까? 생각하게 할 정도로 정상으로 보였었다.

매주 진행하는 쿠킹테라피 교육에는 여러 가지 다른 나라 음식들을 이들과 함께 만들어보는 시간인데 만들면서 이들과 함께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세상과의 소통을 배우는 시간들이다.

음식을 만들면서 내가 좋아하는 가수 이탈리아 가수 보티첼리의 노래를 늘 틀어주었는데 이들이 하도 보티첼리의 노래를 많이 듣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도 이들도 좋아하게 되어서 보티첼리의 노래가 나오면 함께 부르곤 하였다. 요리를 이것저것 매주 메뉴를 바꾸어서 준비하고는 한국 떡볶이를 가지고 무엇을 해볼까? 하고 연구를 하다가 떡볶이를 타이식으로 요리방법을 작성한 후 클래스를 시작하면서 요리를 시작하면서 붙은 떡볶이 떡을 하나씩 떼어서 놓고 재료를 씻으라고 말한 뒤 이들을 살펴보는데 말이 없던 000가있던 자리에서 내가 지나가려는데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준비한 야채 재료들을 씻고 있었다.

나는 000의 뒤에 서서 무슨 일인 거지?

왜 우는 거야? 라고 물으니 000는 다른 고객들의 눈치를 살피면서 숨을 죽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나를 돕는 인턴에게 쿠킹클래스를 맡기고 000를 데리고 조용한 상담실 방안으로 데리고 가서 000가 진정되기를 기다려서 말을 시켜보니 000가 말했다. 

레지나 나 떡볶이 먹어보았어!

그래 언제?

나 어릴 적에 우리 엄마가 만들어준 거야!

그래 그게 무슨 소리지? 음 우리 엄마가 한국 사람이었어

그리고 우리 아빠는 아프리칸 아메리칸. 그랬구나!

그러고 000를 살펴보니 아프리칸 아메리칸의 살색보다는 동양적인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두고 떠나셨어!

어디로 가셨는데? 

음 몰라!

내가 8살 때 엄마는 우리 아빠와 나를 두고 그냥 떠나 버렸어!

그래 그럼 너는 누구하고 살아온 거야? 나는 우리 아빠가 내가 13살 때 재혼할 때까지 함께 살다가 아빠가 재혼하는 스텝맘이 내가 싫다고 해서 아버지 친척 집을 이집 저집 전전하다가 포스터 홈에서 18살까지 살았었는데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는 해에 바이폴라가 발병하는 바람에 아마도 내가 포스트 엄마하고 잘 지내지 못하고 미움을 받고 하면서 집을 나온 것이야.

그런데 레지나가 오늘 떡볶이 재료를 가지고 왔을 때 재료들을 보니까 엄마가 너무나 보고 싶어서, 엄마가 너무나 그리워서 눈물이 난 거야!

000는 이야기를 하면서도 흘러내리는 눈물을 옷깃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음 그랬구나!

음 그럤구나!

많이 보고 싶겠구나!

난 000를 꼭 안아주고 싶은데 우리 사무실 룰이 고객을 악수 이상 하면 안 되니까 그냥 눈물 흘리는 00를 지켜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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