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칼럼] “삼성의 위력(2)” - 시애틀 한인 커뮤니티 칼럼
오늘은 고 이건희 회장이 남긴 편지를 소개하면서 내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이미 많은 독자들이 그분의 이 편지를 읽고 감동을 받았을 것으로 믿는다. 그분은 비즈니스만 잘한 것이 아니고 글도 아주 잘 쓰는 분임을 이번에 비로소 알았다. 숨김없이 사실을 명기하고 자신의 소견을 곁들인 그분의 글은 명문이기도 하다. 큰 사업가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많은 회의도 했으며 많은 연설도 했다. 이 편지는 그분이 거의 세상을 하직할 무렵에 쓴 글인듯하다.
“아프지 않아도 해마다 건강 검진을 받아보고, 목마르지 않아도 물을 많이 마시며, 괴로운 일이 있어도 훌훌 털어버리는 법을 배우며, 양보하고 베푸는 삶도 나쁘지 않으니 그리 한 번 살아보세요. 돈과 권력이 있다 해도 교만하지 말고, 부유하지는 못해도 사소한 것에 만족을 알며, 피로하지 않아도 휴식할 줄 알며, 아무리 바빠도 움직이고 또 운동하세요. 3천 원짜리 옷 가치는 영수증이 증명해 주고, 3천만 원짜리 자가용은 수표가 증명해 주고, 5억짜리 집은 집문서가 증명해 주는데 사람의 가치는 무엇이 증명해 주는지 알고 계시는지요? 바로 건강한 몸이요. 건강에 들인 돈은 계산기로 두드리지 말고요. 건강할 때 있는 돈은 자산이라고 부르지만 아픈 뒤 그대가 쥐고 있는 돈은 그저 유산일 뿐입니다.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차를 몰아줄 기사는 얼마든지 있고, 세상에서 당신을 위해 돈을 벌어줄 사람도 역시 있을 것이요. 하지만 당신의 몸을 대신해 아파줄 사람은 결코 없을 터이니 물건을 잃어버리면 다시 찾거나 사면 되지만 영원히 되찾을 수 없는 것은 한 번뿐인 생명이라오. 내가 여기까지 와보니 돈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요?
무한한 재물의 추구는 나를 그저 탐욕스러운 늙은이로 만들어 버렸어요. 내가 죽으면 나의 호화로운 별장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살게 되겠지요. 내가 죽으면 나의 고급차 열쇠는 누군가의 손에 넘어가겠지요. 내가 한때 당연한 것으로 알고 누렸던 많은 것들.... 돈, 권력, 직위가 이제는 그저 쓰레기에 불과할 뿐.... 그러니 전반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어! 너무 총망히 살지들 말고 후반전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아!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으니 행복한 만년을 위해 지금부터라도 자신을 사랑해 보세요. 전반전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두었던 나는 후반전은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로 마무리 짓지만 그래도 이 편지를 그대들에게 전할 수 있음에 따뜻한 기쁨을 느낍니다. 바쁘게 세상을 살아가는 분들... 자신을 사랑하고 돌보며 살아가기를 힘없는 나는 이제 마음으로 그대들의 행운을 빌어줄 뿐이요!”
길지 않은 글이지만 그분의 글 속에는 그분의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 그분의 생활철학과 비즈니스 마인드, 그리고 그분의 처세술과 인사관리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건강에 대한 강조가 눈에 확 들어온다. 그분이 후반을 신병으로 보내면서 자신이 느낀 것들을 간단하게 요약한 내용인 듯하다. 결과적으로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도 다 소용없는 것들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본인의 건강임을 강조한 글이다. 자신은 전반전에서 너무 일을 많이 하였고 사업과 돈 버는 일에만 급급하다가 몸이 망가지는 것도 몰랐다는 이야기이다. 역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건희 회장의 부친되시는 분도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학창시절에 장충동에서 가정교사를 했는데 그때 저녁에 한 시간씩 걷기를 할 때 이병철 회장님을 가끔 만났다. 내가 그분을 길에서 우연히 만날 때 고개 숙여 인사를 하면 그분도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받으셨다. 하여간 이재용 부회장을 빼고는 그 분네 3대를 내가 알고 지낸 셈이다. 물론 통성명을 하거나 악수를 하지는 않았지만....
그러고 보니 내 나이도 어느새 찬란하게 황금색 노을이 깃드는 노년이 된 셈이다. 예전엔 “인생70고래희”라 해서 사람이 70을 살기는 드문 일이라 했지만 요즘엔 70살은 노인으로 취급도 하지 않는다. 그만큼 평균수명이 길어졌고 100세 시대가 되었다. 그러고 보면 이건희 회장은 너무 일찍 이 세상을 하직했다. 아직 노인도 되지 않은 나인데... 평생 동안 너무나 일을 많이 해서 고단한 몸을 좀 편히 쉬기 위해 일찍 간듯... 이제 그분은 무거운 짐 다 내려놓고 아프고 고단한 몸 편히 쉴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러나 삼성그룹이나 한국과 전 세계의 정치, 경제, 사회에서는 큰 별이 떨어진 셈이다. 그분의 편지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큰 산 같은 그분에게 고개가 숙여진다. 한국에서 언제 그렇게 큰 산 같은 인재가 다시 나와서 세상을 놀라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