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 칼럼] 더 많이 사랑을 하자!(1) - 시애틀한인 소셜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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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나 칼럼] 더 많이 사랑을 하자!(1) - 시애틀한인 소셜칼럼

누구나에게 마찬가지일 테지만 사람의 죽음을 마주 대하면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몸과 마음을 아프게 한다.

나 역시 홈리스 가족들과 정신문제인 환자분들을 돕는 일을 하다 보니 보통사람들보다는 죽음이라는 상황을 좀 더 자주 마주치게 된다.

거의 인생의 절반 이상을 홈리스로 살던 부르스. 

체격은 어찌나 큰지 보통 키인 내가 부르스를 보려면 고개를 올려다 보아야할 정도로 큰 키에 체격의 부르스.

어릴 적 부모 두 분이 일찍 돌아가시면서 쌍둥이 동생과 함께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결국 16살 때부터 길거리로 나와야 했던 부르스.

16세 소년들이 집을 나와 길거리로 전전한다면 그들에게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역시 몸도 마음도 고생을 하고 학대를 당하고 얻어맞고 구걸을 하고 훔치고…

그러나 워낙에 밝은 성격으로 어찌나 유머스럽고 재미있는 성격인지 무슨 말만하면 주위사람들을 까르르 웃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부르스.

나하고도 얘기를 하다보면 번뜩이는 지혜로움에 나도 깜짝 놀라며 가끔씩은 저 친구 너무 아깝다 좋은 부모 만나서 제대로 살았다면 무엇인가 큰일을 할 수 있었던 사람인데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였다.

내 고객이었던 46살 홈리스였던 브루스를 말기 암으로 보내고 나서 나 역시 너무 힘들어했던 기억이 있다.

부르스는 발병하고 나서 딱 3달을 더 살았다.

길거리를 전전하면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살아왔던 몸이었기에 암이 발병이 되자마자 급속도로 병이 진전되어 3달 살고는 세상을 하직했다.

병실에 누워있는 부르스를 바라보는데 그렇게 버려진 삶만 살다가는 부르스가 너무 가여워서 나는 부르스에게 무엇이든지 해주고 싶어서 부르스가 죽기 3달 전 나는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부르스 내가 너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소원이 있으면 말해볼래? 

부르스는 몸이 너무 아파서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지쳐있는 눈으로 겨우 나를 쳐다보며 입가엔 가느다란 미소를 띄우며 자기가 못해본 일 소원 4가지를 나에게 얘기해주며 적어보란다.

그래 말해봐? 내가 묻자 부르스는 레지나가 나에게 이 일들을 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첫 번째 스페이스니들에 올라가서 점심 먹어보는 것.

두 번째 시애틀 다운타운에 놀이장소에 있는 그레트 윌 타보는 것.

세 번째 캐나다 밴쿠버에 살고 계시는 자기의 유일한 친척인 96세 이모를 만나보는 것.

네 번째 샌디에이고에서 홈리스 생활하는 자기 쌍둥이 동생을 만나보는 것.

나는 부르스가 죽기 3달 전부터 부르스의 소원을 이루어지게 하기위해 샌디에이고의 비영리단체와 소셜 사무실을 세상말로 이잡듯 뒤져가며(매일 이일에만 매달릴 수가 없어서 일을 해가며 틈만 나는 대로 캘리포니아 소셜 서비스를 다 찾아보았었다.

결국 샌디에이고의 비영리 단체의 도움을 받아 부르스의 쌍둥이 동생을 찾아내었고 부르스 동생과 부르스에 관하여 얘기를 나누며 곧 시애틀로 형을 만나러오기로 했는데, 

캐나다 밴쿠버에 계신다는 96세의 부르스의 이모의 연락처도 겨우 찾아내었고,

시애틀 항구에 있는 그레이트 윌은 내가 다니는 교회의 친구인 미스터 핫지의 친구가 그레이트 윌 사장이라고 해서 무료로 탈 수 있는 표 몇 장도 구해놓았었다.

부르스의 몸이 조금 회복되어지면 스페이스니들에 가서 맛있는 점심도 먹을 수 있게 준비하려고 있는 어느날, 새벽 병원에서 부르스가 위험한 상황이라는 전화를 받고 급하게 달려가니 이미 몸이 더욱 쇠약해진 부르스는 그냥 떠나가 버렸다.

부르스는 죽기 며칠 전 내 사무실 보이스 메일에다가 겨우 나올 수 있는 목소리로 나에게 메시지를 남겨 놓았었다. 

레지나, 그동안 아무도 없는 나에게 가족이 되어주어서 너무 고마웠어!

레지나 하고 만나는 매주 한 시간이 나에게는 얼마나 좋은 시간이었는지 정말 고마워!

내가 힘들다고 짜증을 내고 못되게 해도 화내지 않고 잘 들어주어서 진심으로 고마웠어!

레지나 넌 참 좋은 사람이야!

감사해!

나는 부르스가 갑자기 떠나고 나서 나는 지독히 아팠었다.

보통사람들인 우리들은 아무 때고 해볼 수 있는 일들을 부르스는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들이라고 했는데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떠나가 버려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죽음은 우리에게 떠날 수 없는 것이었다.

얼마 전 인터넷기사를 보면서 한참 눈물을 흘렸었다. 

어느 젊은 청년이 정신과치료를 마치고 고속도로를 따라서 운전을 하고 가는 중인데 저만치 뒤에서 고속도로 순찰차가 따라오더니 이 청년의 차를 세운 것이다. 

청년은 자기는 과속으로 운전한 것 같지는 않은데 순찰차가 따라오니 길가로 멈추어서 잠시 순찰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니 순찰차에서는 나이가 지긋한 순찰경관이 이 청년에게 가까이 오더니 혹시 군대 다녀왔느냐고? 물었고 청년은 아 제가 군대를 제대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군대를 다녀온 지는 어떻게 아셨는지요? 라고 청년이 경관에게 묻자 경관은 별안간 잠시 말을 못하더니 아! 내가 청년의 차를 세운 것은 청년이 과속을 해서가 아니고 청년의 차 뒤에 있는 파병군인들의 마크가 붙어있어서 그것을 보고 차를 세운 것이라네!

그런데 청년, 청년은 군대를 어디로 갔었는가?

청년은 자기는 아프가니스탄 000지역에서 2년 6개월간 근무를 하고 제대를 했는데 지금도 전쟁 통에서 얻은 충격으로 정신과 치료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중이라고 설명을 했더니 청년의 차를 세웠던 경관은 별안간 청년에게 거수경례를 하더니 아하 그랬군요! 나라를 위해서 싸워준 청년을 존경합니다 라고 말하더니 우리 아들도 같은 부대에 있었겠네요.

그리고는 청년에게 질문을 하나 더 했습니다.

청년이 괜찮다면 내가 청년을 안아보아도 되겠는가? 

청년은 의아했지만 그 경관의 눈빛이 너무나 간절하여서 차에서 내려서 그 경관의 품에 안기니 그 순찰 경관은 청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젊은 청년을 보니 내 아들이 생각이 나서...

내 아들도 아프가니스탄에 갔었는데 돌아오지를 못했구려!

청년과 순찰경관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진이었다.

죽음은 피해갈수 없는 것이다.

부자도, 가난한 이도,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도, 고운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도 꼭 오는 일이다.

나는 아직도 힘들어 하는 죽음들이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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