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주님 징계의 사랑의 채찍" -시애틀한인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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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은혜칼럼] "주님 징계의 사랑의 채찍" -시애틀한인종교칼럼

한국에서 세 아이를 낳고 10년 동안 교회 안 단칸방에서 살다가 1981년 8월에 남편이 유학길에 올랐고 나는 세 아이를 기르며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남편이 초청장을 보내와서 그해 12월 18일에 유학생 가족으로 7, 6, 1살짜리 세 아이를 데리고 미국 포틀랜드로 오게 되었는데 그것도 놀라운 기적이었다. 


유학 생활 동안 한국 모교 대학에서 봉급의 절반을 생활비로 보내주고 있었는데 학생들 데모가 심해지고 학장이 바뀌면서 학교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되고, 타코마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한국에서는 직장생활을 하고 세 아이를 낳고 너무나 육신적으로 바쁘고 고달프기는 했지만 성도들이 사모가 고생한다고 위해 주고 사랑해 주었는데 이곳에서는 직장에도 안 다니고 방도 네 개나 되는 집에 살지만, 마음은 너무나 슬프고 아프고 추웠다. 


개척교회 성도들이 목사님이 목회가 어려우면 도망갈지도 모른다고 방은 네 개지만 화장실은 하나인 아주 낡은 이층집을 소개해주어 주인에게 직접 샀는데 돈이 부족했고 그때부터 페이먼트와 날마다 길에서 서는 자동차 때문에 고난을 당해야 했고 낡은 집이라 추웠고 파이프가 낡아서 녹슨 물을 마시고 살아야 했다. 


가정예배를 통해서 아이들과 같이 자동차가 길에서 섰을 때에 사고 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고속도로에서도 차가 서서 아슬아슬하게 길에 세워놓았었고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때에 대형 버스가 뒤에서 오는데 차가 서기도 해서 간이 콩알만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낡은 차가 길에서 시도 때도 없이 서기는 했지만 사고가 한 번도 나지 않은 것은 저녁에 우리가 한마음으로 간절히 드린 기도 덕분이었으리라.


  한국에서는 교회 단칸방에 살아도 자비량 목회로 신학생들을 많이 양육하고 성전건축도 하고 주의 종으로 떳떳하게 살았는데 개척교회 이민목회를 하면서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사례비를 받으면서 사람의 종이 된 것같이 한없이 초라하고 괴롭고 마음 아픈 날이 많았다. 


어느 한 곳에 하소연도 할 수 없었던 어느 날, 공연히 남편에게 대들고 심하게 다투었는데 그날 초등학교 3학년이던 아들이 학교에서 쉬는 시간에 웅덩이에 빠져서 오른쪽 어깨가 빠져가지고 아파서 신음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람들이 모두 병원에 데리고 가라고 했지만 돈이 없는 우리는 그냥 집에서 쉬게 하고 나는 회개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다. 한번 어깨가 빠지면 다음에도 또 쉽게 빠진다고도 하는데 아들은 그날 이후로 아프다가 어깨가 깨끗이 나았다. 


또 어느 날은 사모가 죽으면 자기가 사모가 되겠다고 하는 미친 여자와 한 시간씩이나 전화를 끊지 못하는 남편이 너무나 한심해서 심하게 다투고 다른 방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네 살짜리 막내딸이 “엄마야”라고 울부짖으며 이층으로 달려왔는데 잠옷 자락에 불이 붙어 타고 있었다. 


물이 끓고 있었는데 의자에 올라가 불을 끄다가 잠옷에 불이 붙은 것이었다. 


남편이 손으로 마구 불을 꺼서 남편 손에 큰 화상을 입었고 딸의 등도 심하게 화상을 입어서 반쪽이 빨갛게 짓무르고 아파서 신음을 했다. 


그때 마침 LA에서 한의사가 모텔에 머물면서 우리 교회에 나오고 있었는데 그 여의사가 술을 붓고 흰 가루를 발라주고 여러 날 치료를 해 주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한의사는 약을 비싸게 팔아먹으러 온 가짜라고 한다. 


어쨌거나 그 의사가 그때에 딸을 치료비도 받지 않고 고쳐주었는데 신음하는 딸 옆에서 안타깝게 밤을 새우며 회개하고 기도했다. 


막내딸은 배에 수술 자국과 등과 겨드랑이에 화상 흔적이 남아 있어서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느 주일 아침에 남편과 또 다투고 교회 뒷자리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외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돌아왔는데 L,A.에서 친한 권사님 차로 교회에 가시던 80세 어머니께서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하신다고 기도하라고 연락이 왔다. 


월요일이 휴일이라 교회 찬양대가 모두 솔덕 온천에 간다고 떠났는데 나 홀로 교회에서 울며 회개하고 기도했다. 


수술이 잘되어 오른팔을 잘 올리지 못하셨는데 팔도 잘 올리게 되었고 좋게 되셨다고 연락이 왔다. 


남편에게 악쓰고 대들던 바로 그날에 이루어진 일들로 하나님은 나를 조금도 꼼짝못하게 하시고 믿음을 주시고 회개하고 기도하게 하셨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다 바쁘게 지내고 이제는 아이들을 때리지 마시고 차라리 나를 때리시라고 기도했다. 


너무나 못난 남편이 밉고 인생이 허무하여 등을 돌리고 눈물을 흘리던 날 오른쪽 가슴에 통증이 왔고 나으려니 했는데 계속 아프고 낫지 않아 간호사인 성도에게 병원에 가서 X레이를 찍고 진찰을 받으려고 날짜를 잡아달라고 부탁을 하고 월요일에 가려고 했는데 그다음 일주일 후 월요일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동안에 통증이 사라지고 다 나아서 약속을 취소했다. 나는 너무나 강퍅한 사람이었나 보다. 캄캄한 성전에 가서 몸부림치고 뒹굴며 “목회에 방해가 된다면 차라리 나를 죽여주십시오.”라고 기도가 아닌 절규를 했는데 주님은 많은 것을 용서해 주셨지만 남편에게 반항하는 것만은 즉시 무서운 매로 때리고 깨닫게 하셨다.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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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날의 참 아픈 나의 간증이다. 그 후에도 나는 남편에게 대들면 당장에 팔도 다리도 부러지고 몸을 다치게 하셨고 꼼짝 못하게 하셨는데도 나의 그 못된 불평은 고쳐지지가 않는다. 


‘남편은 너무 지독하고 나는 너무 악한 아내인가 보다’라고 회개기도를 많이 하건만 사람은 참 고쳐지지 않는다. 


남편이 너무 무심하고 지독한 면이 많아서 나는 남편의 사랑을 의지하지 않게 되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었다. 남편에게 잔소리한다고 꾸지람을 받게 되자 말문을 닫게 되고 대신 모든 것을 낱낱이 주님께 아뢴다. 


주님께서 그렇게 하라고 그런 남편을 주셨으니 생각하면 감사하다. 


세상 친구도 많이 있지만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부러워하는데 친구들에게 외롭고 슬프다고 하소연할 수가 없고 그렇게 외롭다는 것은 내가 믿음이 부족한 증거일 뿐이다. 그런데 둘러보니 홀로 사는 분들, 외롭고 슬픈 분들이 너무나 많다. 


  주님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라고 왜 하셨을까? 이 세상은 그렇게 살 수가 없기 때문에 오직 믿음으로 그렇게 살라는 말씀이시다. 


남편과 나는 오직 주님의 일을 할 때에만 눈동자가 빛나고 보람이 있고 살맛이 나도록 그렇게 하신 것 같아서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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