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회계칼럼] 628. 국가재정 평가기준의 오류 - 시애틀한인로컬회계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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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목회계칼럼] 628. 국가재정 평가기준의 오류 - 시애틀한인로컬회계칼럼

정부자산을 국채의 담보로 잡히는 방법은 새로운 것이 아니며, 1924년 바이마르 공화국이 사용하여 막대한 효과를 본 바 있다. 그 이야기는 칼럼 492호(바이마르 공화국 1923년 이전과 이후)에 설명되어 있고, 같은 요지를 그리스에 적용하는 방법은 지난 주 칼럼(427호)에 소개되어 있다. 그 쉬운 방법이 궁리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그 어떤 사고방식이 그러한 궁리로 가는 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문단 속에 줄친 부분에 바로 그 사고방식이 들어 있다.  

학자들은 유로화의 약점을 “단일한 화폐정책, 각각의 재정정책”에서 찾고 있지만, 유로화에 관한 규약에 재정정책에 관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리스본 조약에서 수정된, 유럽공동체 제 조약의 합본(Consolidate Texts of the EU Treaties as Amended by the Treaty of Lisbon)”이라는 인터넷 문서를 보면, “정부재정 1년 적자폭이 당해년도 GDP의 3%를 넘지 말게 하고 연평균 정부부채 총액이 당해년도 GDP의 60%를 넘지 말라” 하는 기준이 (예외조항과 함께) 설정되어 있다. 

그런데 그리스의 정부부채는 GDP의 180퍼센트를 넘어 있으니, 그 어떤 예외조항을 적용시킨다 하더라도 위 줄친 기준과는 너무 많이 떨어져 있다. 이처럼 기준에서 멀리 떨어진 국가를 아직 유로화 체제 안에 있도록 허용한다는 것은 기준 자체를 사문화하는 것과 같다. 이를 뒤집어서 보면, 그리스 같은 나라가 있어도 유로화의 가치가 그대로 유지된다는 것은 위 줄친 규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여기에서 위 줄친 부분을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인식된다. 우선, 저러한 사고방식을 경제학의 개념 속에 집어넣어서 파악하면, “정부부채라는 스토크(stock) 개념과 국민소득이라는 플로우(flow) 개념이 직접 비교되었다”고 정리된다. 그러한 연결을 정당화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은 “미래의 세금의 현재가치”다. 한 국가의 경제력이 크면 그 정부의 징세력도 크고, 따라서 많은 정부부채를 짊어지고 갈 수 있다. 그러나, GDP로부터 미래 세금의 현재가치까지 계산해 내기 위해서는 중간에 두 가지 변수를 더 집어넣어야 한다. 

첫째, 세금을 걷을 힘을 보기 위해서는 총소득에서 기초생활비를 뺀 나머지를 계산해 넣어야 한다. 이것은 직관적으로 금방 깨달아지는 일이다. 둘째, 국가마다 이자율이 다름을 감안해야 하다. 이자율이 현재가치 계산에서 하는 역할은 칼럼 362호(현재가치 계산방법)에 해설되어 있고, 구글에서 검색해서도 찾아낼 수 있다. 

줄친 부분의 사고방식이 허술하다는 사실은 주택구입 융자의 경우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다. 주택융자에서, 융자금액과 비교되는 것은 집값이며, 소득과 비교되는 것은 매월의 페이먼트다. 이것을 국가부채에 적용하면, GDP(1)와 비교되어야 할 것은 국채이자비용(2)이며, 정부부채 잔액(3)과 비교되어야 할 것은 정부자산(4)이다. 그런데, 위 줄친 부분을 보면 (1)과 (3)이 비교되는 한편 (2)와 (4)는 빠져 있다. 

앞 문단의 (1)과 (2)를 비교해보면, 일본이 그 많은 정부부채를 문제없이 지고 가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일본의 2년짜리-10년짜리 국채의 이자는 연 0.1%다. 그러므로, 미국에 비해 일본은 훨씬 더 많은 부채를 지고 갈 힘이 있다. 일본 국채를 구입한 사람 내지 법인은 모두 일본인이므로,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국채는 바지 양쪽 두 호주머니 사이의 관계와 같다. 이렇게 쉬운 일을 가지고 앞 문단의 (1)과 (3)만을 비교하여 염려하는 것은 하늘이 무너질까 무서워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반면, 미국의 부채는 점점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증가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앞 문단의 (1)과 (3)만 비교하면서 일본보다 사정이 좋은 줄 착각하고 있다. 

한편, 정부부채 잔액(3)과 정부자산(4)을 비교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장부에 정부자산이 기록되어야 하는데, 아직 그것이 진행되지 않고 있다. 미국 정부는 1995년도부터 기업회계와 비슷한 체계의 대차대조표를 만들기 시작했으나, 2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전국토의 30%에 달하는 정부땅을 그 대차대조표 속에 넣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정부땅을 팔아서 국채를 갚을 의사가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스 정부의 2007-2014 대차대조표를 봐도, 거기에는 정부 소유의 땅도 섬도 표시되어 있지 않다. 만일 약체 국가들이 국채에 담보를 제공하는 관행이 생긴다면, 그 관행은 위 (3)과 (4)를 비교하는 관습으로 이어질 것이다.

여기까지 분석해놓고 보면, 위 줄친 부분의 기준은 나태하고 우매한 사고방식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세계에 퍼져 있으므로, 그것은 유로화의 약점일 뿐만 아니라 모든 화폐의 근본적 약점이다. 다음 주에는, 화폐 운영자들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또 하나 병폐, 화폐수량설 속에서도 거의 동일한 사고방식을 찾아내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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