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 회계사] 676. 과잉생산과 사치 6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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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목 회계사] 676. 과잉생산과 사치 6 -시애틀한인 회계사칼럼

지난 주 칼럼(675호)에서, 소비자 쪽에서 사치품 소비를 증가시켜 사치품의 발명을 유도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사치품이 발명되지 않을 때 이미 있는 사치품을 여유 있는 사람들이 열심히 소비해주면 어떻게 되는가? 찾아보니, 케인즈의 일반이론 제23장에서 다음과 같은 말이 발견된다. 


인용문 1. Though complaints of under-consumption were a very subsidiary aspect of mercantilist thought, Professor Heckscher quotes a number of examples of what he calls 'the deep-rooted belief in the utility of luxury and the evil of thrift’. Thrift, in fact, was regarded as the cause of unemployment, and for two reasons: in the first place, because real income was believed to diminish by the amount of money which did not enter into exchange, and secondly, because saving was believed to withdraw money from circulation. 소비 부족에 대한 불평은 중상주의 사상에서는 아주 지엽적인 면에 불과하지만, (중상주의 경제학을 연구한 스웨덴의 경제사학자) Eli Heckscher 교수는 소위 “사치의 효용과 절약의 죄악에 대한 뿌리 깊은 믿음”의 예를 많이 들고 나왔다. 중상주의 경제학자들이 절약을 실업의 원인으로 인식한 것은 사실이며,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교환에 사용되지 않고 있는 돈의 금액만큼 실질 소득이 감소된다고 그들은 믿었다. 둘째, 저축은 돈을 순환과정으로부터 걷어내게 된다고 그들은 믿었다. 

인용문은 케인즈보다 시대적으로 앞선 중상주의 경제학자들의 소견이지만, 케인즈가 저것을 저렇게 말한 것은 자신의 유효수요론과 맥을 맞추기 위함이었다. 생산성의 증대에 따라 늘어나는 공급량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수요가 충분해야 하고, 그 수요는 소비 아니면 투자다. 소비도 투자도 하지 않고 저축으로 남아 있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이 케인즈의 유효수요론 속에 들어 있다. 그러한 생각이 사치냐 절약이냐의 선택에 이르면, 사치는 유용하고 절약은 죄악이라는 결론을 얻는다. 케인즈는 그와 같은 결론을 중상주의 경제학에서 발견한 것이다. 

사치하지 않고 절약하는 것이 죄악이라면, 그것은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 그 중에서도 여유 있는 소비자의 선택에 관한 이야기다. 케인즈는 여유 있는 소비자의 절약을 죄악으로 몰고 갔다. 여기서, 칼럼 674호(과잉생산과 사치 4)의 인용문 1, 데이비드 흄의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인용문 2. (칼럼 674호의 인용문 1, 영문은 생략) 감각적 욕구충족, 즉 육류나 음료나 의복의 고급스러움에 탐닉하는 것을 두고 그 자체를 죄악이라 하는 상상은 열정의 광란에 의하여 고장 난 두뇌에만 들어갈 수 있다.

사치 그 자체를 죄악이라 하는 것이 열정의 광란이라면, 절약 그 자체를 죄악이라 하는 것도 열정의 광란이라 할 수밖에 없다. 돈을 가진 사람이 절약하는 대신 사치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다. 사치하지 않는 것이 죄악이라 하는 것은 “자유를 누릴 의무가 있다” 하는 듯한 뒤틀린 논리다. 

충분한 저축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그 돈을 쓰고 싶을 만한 그 무엇이 나타났을 때만 그것을 구매한다. 그들이 돈을 쓰고 싶을 만한 그 무엇을 만드는 것은 생산자의 몫이며, 그것을 팔아낸다는 것은 여유 있는 사람들의 투표를 받았다는 뜻이며, 많은 투표를 받으면 “이익”이라는 보상을 얻는다. 보상을 잘 받은 생산자는 그 자신이 여유 있는 소비자가 되어 남이 만든 것에 구매라는 형태의 투표를 던지게 된다. 

절약이 죄악이라 하는 말은, 여유 있는 소비자는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도 어디론가 구매라는 형태의 표를 던져야 한다는 뜻이다. 만일 그러한 강요가 어찌해서 막혀든다면, 생산자는 애써서 사치품을 개발하는 대신 이미 생산하고 있는 사치품을 더욱 많이 생산하면 된다. 소비자는 절실하지 않은 곳에 소비하여 나중에 절실한 곳에 소비할 저축을 잃게 되고, 생산자는 새로운 발명을 하지 않고 있던 것만 계속 생산한다. 이렇게 해서, 무분별한 사치품 소비는 새로운 사치품의 발명을 방해한다.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외계인이 지구를 발견했을 때 가장 주목할 것은 텔레비전이라고 했다. 칼라 TV방송은 1953년에 시작되었다. 그것이 발명된 것은 많은 사람이 흑백 TV에 표를 던져 주었기 때문이며, 흑백 TV가 발명된 것은 많은 사람이 라디오에 표를 던져 주었기 때문이다. 만일 라디오 발명 이전에 여유 있는 소비자들이 (절약은 죄악이라는 생각에서) 보석이나 비단 같은 사치품에 돈을 다 써버렸다면, 라디오가 발명되었을 때는 라디오를 사줄 돈을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절약은 여유를 만든다. 여유 있는 소비자가 어떤 사치품을 대했을 때는 “나의 몸과 정신과 재산을 위해 이것은 좋은 것인가” 하는 의문에 비교적 절실한 답을 쓸 수 있다. 절약은 죄악이 아니다. 


다음 주에는 위 인용문 1 속의 다른 부분을 들여다보기로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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