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 문학칼럼] 마음의 포옹 - 시애틀한인 문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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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영 문학칼럼] 마음의 포옹 - 시애틀한인 문학칼럼

달력 한 장이 버티고 있는 12월이다. 


사람들과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진정 가까운 부모님, 형제, 이웃, 자녀들을 얼마나 안아 주고 살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혹시 ‘Hug 문화’에 익숙지 않아 그동안 사랑의 표시를 너무 감추고 살고 있지 않았나.

우선 가족에 하루에 따뜻한 사랑의 표시를 얼마나 하고 있는지, 전달은 잘 되고 있는지, 마음으로만 가득한 걸로 사랑을 자만하고 있는 건 아닌 저 자신에게도 한 해의 성적표를 제출해야 한다.


행동으로 하는 습관도 생각만 가득한 마음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이는 “스킨쉽 하는 게 왠지 어색하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서로에게 사랑하고 있다는 말과 가벼운 포옹을 일상화하고 있다고 한다.


한 엄마는 ‘내가 널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 마음을 이렇게 몰라주나.......’라며 자녀로부터 속상해하면서 하루에 한 번도 사랑한다는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미 훌쩍 커버린 장성한 자식을 보며 후회하지만 사랑의 표현은 시기가 없다.


한 노인이 백발이 되어버린 어머니를 끊임없이 안아 주며 사랑한다고 말한다. 이런 풍경들이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남편, 아내, 형제, 자매, 가까운 이웃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대단한 행동과 이벤트를 꿈꾸지 말고, 평상시 꾸준히 상대방에게 따뜻한 사랑을 인식해 주는 끊임없는 사랑의 세뇌가 필요하다.


여지껏 사랑의 표현 안 하고 평생 살았는데 하는 게 더 어색하고 이상할 수 있겠지만 행동을 시작해야 한다.


어릴 적 부모 품에 따뜻이 안긴 기억은 많지만, 성인이 되었다는 이유로 멈춰진 ‘안아 주기 사랑’에 그리운 이들이 있다.


또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부모에게 좀 더 많이 안아드릴 걸 많이 후회한다.”라고 어떤 이는 눈물 흘린다.


떠나간 이들에게 사랑한다는 말과 자주 포옹해 주지 못해 가장 후회스럽다고 말한다.


자녀들에게도 좋은 선물을 사주기 이전에 사랑이 가득한 체온으로 한 해 고생했다고 안아 준다면 강한 사랑이 전달될 것이다.


그래야 자녀들이 어른이 되어도 노인이 된 부모를 안아 줄 것이다. 등을 다독여 주고 쓰다듬어 주는 스킨쉽들은 놀라운 힘이 전달되는 상상 이상의 사랑이다.


하지만, 코로나 사태로 인해 가족 간의 모임과 지인들과의 스킨쉽은 아쉽게도 위험한 행위로 자제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비록 비대면 접촉의 시대이지만 고마운 이들에게 진심 어린 '마음의 포옹'을 전달하며 따뜻하게 마지막 달을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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