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어디에 서 계십니까

전문가 칼럼

[리사운드교회] 어디에 서 계십니까


오늘도 뒷마당에서 넋 놓고 불멍을 즐기며 무언가의 생각을 태워봅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내가 이렇게 한가해도 되는가 하는 의심이 마음속에 채워짐을 느낍니다.


모세가 호렙산 높은 곳 높은 곳, 그 불타는 딸기나무 앞에서 어떤 생각에 사로잡혔을까를 돌아봅니다.


그가 단순히 불명예 갇혀 있었다고는 여겨지지 않습니다.


음성대로 신을 벗고 그 영광 앞에 섰을 때, 처음 느낌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의 영광은 금세 그에게 평안을 허락하십니다.


그는 심지어 왜 나를 보내려 하시느냐는 투정까지 부리게 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에는 실수가 없음을 스스로 증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온유한 자라 칭하실 때 그는 분노조절장애자, 살인자, 도망자에서 온유한 자로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대로 됨이라는 능력이 있음입니다.


우리가 온유해서 온유한 자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온유하길 원하셔서 그렇게 부르신 것입니다.


아담에게 만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신 것이 연상됩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이름을 지을 때 어떤 심정이 됩니까.


그러나 세상에는 좋은 뜻의 이름을 가진 영악한 자들이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그러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은 어떠하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름과 함께 능력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야곱 이 이스라엘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방목하시지만, 언제나 그 손에 지팡이와 막대기를 들고 우리를 살피 십니다.


우리의 병듦, 빈곤, 갈등, 흐트러짐, 잘못 꿰어진 단추 같음을 아시고 시마다 때마다 바르게 고쳐주심에 쉬심이 없으십니다.


아니 우리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쉬지 못하게 하는 탁월함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지팡이는 무엇이고 막대기는 무엇을 위함인가 하고 의문스러워할 때도 있었습니다.


왜 두 가지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제멋대로 사는 자인가를 알고 나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목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양 같은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나를 야수로부터 구해내고, 구덩이로부터 건져내기 위하심이었습니다.


그 목자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말씀과 성령의 금이라고 느껴지지 않으십니까.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의 임재 없이, 말씀을 떠나서 있을 수 없음을 이미 알아버린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저 유대인처럼 거리낄 것이 많은 자들이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불가항력적 은혜가 부단히도 우리를 새롭게 하심을 부인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발람의 길을 나귀의 입술로 막게 하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또한 우리 앞에 널마다 말씀을 허락하시며 성령으로 깨닫게 하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특권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성도의 특권입니다.


그것은 말씀을 청종합입니다.

 내 삶에서 적용되어짐입니다.

 어떻게 성도가 그렇게 사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무엇이 우르로 성도의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합니까.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귀를, 마음을, 눈을, 입술을 열어주셨기 열어 주시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손과 발에 힘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히틀러의 명저 <나의 투쟁>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인간 역사상 최대의 야수적인 사나이의 적나라한 행동 강령이라고 합니다.


야수에게 철학과 행동 원칙이 있다는 것이 어불성설이라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이것도 역시 인간의 연약성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집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으로서 무언가에 기대지 않으면 살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샤머니즘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검이 없는 자에게는 붙들 것이 이것 외에는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투쟁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란 생각이 듭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투쟁사를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내어버려 둠을 우리의 역사가 증명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가장 큰 특권은 코람데오입니다.

말씀이신 주님 앞에 서 있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와 찬양, 경외, 존귀와 영광을 드립니다.

오늘도 우리처럼 어리석은 자기에게도 은혜와 평강을 허락하시며

우리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시고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에게 감동하시며, 일하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보내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이 땅에서 믿음의 향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주바라기의 날 되게 하실 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0 Comments
제목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