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일에 생각하는 미국의 소프트파워
‘포틀랜드 소프트파워 30’ 랭킹에 한국 20위
지난 7월 4일 미국의 독립기념일,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를 향해 또 한 번의 대형 이벤트를 선보였다. 첨단 군사장비를 앞세우고 대국민 연설에 나선 것.
'미국에 대한 경례'(Salute to America)로 명명된 이 행사는 유별난 행사였다. 대통령이 독립기념일 연설을 한 것도 한국전을 치르던 1951년 트루먼 대통령 이후 처음이며, 군사 퍼레이드가 열린 것은 걸프전 승리를 기념했던 1991년 이후 처음이었다.
이날 워싱턴 D.C. 내셔널 몰 행사장에는 탱크와 장갑차 등이 전시됐고 군 의장대가 동원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단에 오르자 전용기 에어포스원과 전략 폭격기 B-2, F-22 등 첨단 전투기 20여 대가 요란한 축하 비행을 했다. 미국의 극강 하드파워가 여실히 전 세계에 보여지는 순간이었다.
연단에 오른 트럼프는 흡족한 표정으로 "오늘 우리는 자유의 기쁨 속에서 건국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을 공유하고 기억하기 위해 모였다"면서 "미국의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정이었고 미국은 현재 사상 최강"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중고등 과정을 군사학교에서 수료한 트럼프는 유별나게 규율과 상명하복의 군사문화를 중시한다는데 2년 전 프랑스 파리를 방문해 '프랑스 혁명 기념일' 열병식을 참관한 뒤 강한 인상을 받고 지난 해에도 국방부에 대규모 열병식을 지시했다가 반대 여론에 밀려 포기한 바 있었는데 올해는 기어이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던 것.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이는 것도 문 대통령이 첫 방미 때 장진호 기념비를 찾아 미 해병대에 대한 고마움을 표한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는 그때 즉각 환영의 트윗을 날린 뒤 백악관 회동 시간을 앞당겼었다.)
야당 민주당은 트럼프가 내년 재선을 위해 독립기념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날선 비판을 날렸다.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독립기념일은 초당적이고 비정치적인 날"이라며 "국가 예산으로 당파적 선거 유세를 하며 갈등의 행사를 추진하는 것은 유감"이라는 항의 서한을 보냈다. 주요 언론들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이를 보도했는데 CNN은 "중국이나 북한처럼 권위주의 열병식을 보는 것 같았다"라고 지적했다.
소프트파워 이론의 창시자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석좌교수는 자신의 신디케이트 칼럼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공공외교와 소프트파워에는 전혀 관심 없는 듯하다고 우려를 적었다. 그는 트럼프와 그 옹호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는 소프트파워는 무의미하며, 군사력과 경제 조치 등 하드파워만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이는 미국의 앞날을 위해서도 재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프트파워는 강제나 강압을 통하지 않고, 매력을 통해 상대방의 동의와 협력을 이끌어내는 힘을 말한다. 특히 한 국가의 소프트파워는 크게 문화, 경제, 정치적 가치 외교정책 범주로 나뉘어 산출되며 구체적인 핵심 요소는 경제력, 교육, 학문, 예술, 외교 등이 꼽힌다. 이밖에도 주관적인 요소로 국가의 국제적 위상 및 역할, 풍습, 인권 및 언론자유, 국민 행복도, 다국적 기업의 유치, 국제공항의 사용 비중까지도 판단의 척도가 되고 있다.
연성권력이라는 말로 번역될 수 있는 이 소프트파워 개념은 1990년, 하버드 케네디 스쿨의 학장이던 나이 교수가 자신의 저서 선도의 방향(Bound to Lead)에서 처음 사용한 뒤 구체화되기 시작해 최근에는 각국의 국력을 나타내는 보편적 척도로 널리 원용되고 있다.
2015년부터는 남가주 대학과 영국의 유수 커뮤니케이션 기업 포틀랜드사가 '소프트파워 30' 이라는 통계로 소프트파워 강국 30개국의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전 세계 각계 권위자들이 평가단으로 참여하고 있단다.
마침 2018년 통계가 6월말 발표됐는데 미국은 4위에 랭크됐다. 통계가 발표된 2015년과 그 이듬해에는 압도적 1위였는데 2017년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3위로 내려앉았고 올해는 한 단계 더 떨어진 것. 지지난해 1위는 마크롱 효과를 톡톡히 봤다는 프랑스였고 올해는 영국이 1위를 차지했다. 올해 랭킹은 프랑스 독일이 2,3위를 차지했고 일본 캐나다가 5,6위에 랭크됐다. 나이 교수는 ‘트윗은 전 세계적인 의제를 제시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정성 있는 감동을 주지 못하면 소프트파워를 만들지 못한다’고 꼬집었다.
참고로 한국은 2017년 21위에서 2018년 20위로 한 계단 상승했다. K-Pop으로 대표되는 한류의 상승이 원동력이었다.
중국은 27위, 러시아는 28위에 턱걸이로 랭크됐다. 이들 강대국은 민주주의를 한다면서도 권위주의와 정치적 경제적 독재가 여전하다는 이유에서다. 하드파워에서는 명실상부하게 2위에 올라 있는 중국이 시진핑 등극 이후 소프트파워 재고를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평가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싸늘하다는 얘기다.
실제로 중국은 아프리카 등지에 경제적, 문화적 지원을 통해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있으며 지난해만 하더라도 전 세계 공자(孔子)학교 개설 등 이 부문에 100억 달러 상당의 예산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 이 부문 공공 예산은 7억 달러 수준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8년 당선 수락 연설에서 “미국의 진정한 힘은 우리가 지닌 무기의 위력이나 부의 규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우리의 이상, 즉 민주주의, 자유, 기회, 불굴의 희망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독립기념일 연휴에 세계의 수도 뉴욕의 심장부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는 한류 열풍이 몰아쳤다. ‘케이콘(KCON) 2019 뉴욕’ 콘서트에 수만 명의 팬이 몰려 공연장을 가득 채우면서 6일과 7일 이틀간 공연 내내 한국어 가사를 따라 부르는 팬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국의 소프트파워가 단지 K-Pop으로만 알려지는 것은 어딘지 미흡하다고 느끼는 것은 섣부른 판단일까.
미국의 소프트파워 중 상당 부분은 헐리우드, 하버드, 마이크로소프트, 마이클 조던이 만들어낸 건 사실이다.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아직 미국의 문화를 청바지와 맥도날드로 인식해 내려다보는 경향이 있다는데 지난해 올해의 포틀랜드 랭킹에 이런 선입견이 작용한 것은 아닌가 싶다. 소프트파워 재고를 위한 미국과 한국의 가일층 분발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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