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오칸토 리버(오칸토 강물) 1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오칸토 리버(오칸토 강물) 1

회소 본능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세월이 가면서 옛것에 대한 그리움일까?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우리 가족은 남편의 새로운 부임지를 따라 미국의 2,000명 정도 살고 있는 소도시로 이사를 갔었다. 이곳은 전형적인 백인 마을이었는데 주로 스칸디나비아반도 쪽에 사는 이민자들과 독일 계통의 이민자들이 마을을 이루며 살고 있는 우리가 처음인 지역으로 이사 간 날, 동양인 모습들이 신기한 데다가 마을의 지도자 입장으로 그곳으로 갔으니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서 마치 퍼레이드 구경하러 나온 사람들처럼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움직일 때마다 무슨 신기한 일들이 있는 것처럼 우리 가족들을 구경을 하며 속닥속닥 얘기를 하고는 했다. 아이 둘일 때라(그 후로 막내 아들아이가 생기고)

5살, 3살 두 딸내미들을 데리고 마을 안에 있는 작은 마켓을 가면 마켓 안에서 장을 보던 이들이 우리 가족을 구경하느라 장 보는 일은 뒷전이었다.


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장을 보러 갈 때도 아이들에게 한국에서 큰언니가 보내 준 공주풍의 드레스를 입혀서 마켓을 가고는 했다. 이곳 사람들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는 6.25 때 전쟁 이야기로 들은 이야기밖에 없었으니 전쟁통에 살아남은 대한민국의 그때의 정체를 잘 모르고 있었다. 한국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고 싶어서였다.


물론 그때가 아직 80년대 초라 지금의 대한민국처럼 발전이 된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일본 제품이 미국 사람들의 눈을 끌고 있었다.

도시바 티비, 쏘니 라디오, 미쯔비시 자동차, 핼로우 키티 장난감 등…

우리가 이곳으로 파견되어 오기까지

나와 남편은 둘 다 학생 신분으로 생활을 해 가면서 공부를 했었기에


나는 그때 시카고 다운타운에 있는 엄청 유명하고 고급스런 리차이니스라는 미국식 중국 레스토랑에 겁도 없이 찾아가서(영어를 제대로 할 줄 몰랐을 때인지라) 그래도 용기를 가지고 건강하고 민첩한 몸으로 얼마나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 주려는 생각으로 무작정 찾아가 하루 4시간씩 일을 해 보겠다며 나를 뽑아 달라고 했었다.


웬일인지 연세가 한참이신 여자 사장님(중국계 미국인)이 “그럼 오늘 저녁부터 일을 해 보라”며 시작한 게 일이 웨츄레스 일이었다. 그때 그 레스토랑에서는 두꺼운 사기 접시를 따뜻한 곳에 덥혀 두었다가 음식을 내가기 전 음식을 담고 서빙을 하고는 했는데 접시 무게가 어찌나 무거운지 두세 개 음식 접시를 쟁반에 담고 어깨에 메고 가면 어깨가 아팠으나 이것도 며칠 지나자 어깨가 아픈 것도 없이 익숙해져 갔다.


정말 열심히 일을 했다.

일주일이 되자 레스토랑에 자주 오던 사람들의 어려운 이름들을 다 외워서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서면 “웰컴 로렌, 웰컴 폴”이라고 이름을 불러 주니 이들이 환하게 웃으며 반겨 주는 나에게 많은 팁을 주고 가고는 해서 리차이니스에 취직한 지 몇 주 만에 팁이 두둑해졌었다.

이때에 9명의 웨츄레스가 있었는데 대부분이 유학생 부인들이었다.


어쩔 수 없이 나와서 일을 해야 하는 유학생 부인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적극적으로 일을 하지 못하다 보니 늘 수동적으로 일하다 보니 일을 마치고 마지막 정산을 하면 이들의 수입은 아주 적었었다. 이곳에서 일한 지 몇 달이 되었다.

아침엔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바쁘고 저녁에는 무거운 접시를 나르느라 어깨가 아프지만 그래도 이곳 미국에 공부하러 와서 먹고사는 일에 어려움이 없어서 감사했던 시간이었다.


남편과 나 둘 다 공부하랴, 일하랴 늘 잠이 부족하고 아이들이 둘이었을 때라 아이들 맡기고 아이들 돌보는 일까지 너무 바쁘게 살았는데, 먼저 공부를 마친 내가 더 많이 일을 하니 늘 잠이 부족해서 늘 마음속으로 “푹 잠을 잘 수 있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생각하면서 매일매일을 보냈었다.


남편이 공부를 마치고 첫 부임지가 미국의 시골 지역인 이곳 오칸토 리버가 있는 곳이었다.

시카고에서 5시간을 달려 수피리어 호수가 가까운 이곳에 도착해 보니 주위는 거의 옥수수밭이고, 낙농을 하는 집들이 많아 소들이 방목되어 있었다.

유학생 신분으로 와서 몇 년간 공부하느라 도시 빌딩 사이만 왔다 갔다 하다가 만나게 된 미국 시골 지역의 자연환경은 우리의 무거운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쉬기에는 너무나 감사한 상황이었다.


여름 7월에 부임해서 보니 이곳은 농사짓는 분들이 많은데 모두들 부농이었던 듯 집마다 배들도 있고, 겨울에는 눈 위를 달리는 4발 미니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사슴 사냥에 곰 사냥을 다니면서 잡은 사슴과 곰을 분리해 이웃집과 서로 나누고 함께 음식을 해 먹고 하는 가족 같은 마을이 형성되었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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