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칼럼] TOKYO 올림픽에서 느낀 SEOUL 올림픽 

전문가 칼럼

[동열모칼럼] TOKYO 올림픽에서 느낀 SEOUL 올림픽 

이번 일본에서 열린 2020 TOKYO 올림픽은 훌륭한 현대적 시설에서 열렸으나 코로나 파동 때문에 관중이 없는 선수들만의 쓸쓸한 분위기에서 열렸다. 그 경기의 중계방송을 지켜보는 과정에서 지난 1988년에 열린 SEOUL 올림픽이 생각나 그 감격스러운 현장을 여기에 묘사해 보고자 한다,


1988년의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16일 동안 열린 SEOUL 올림픽은 지구촌의 축제였기 때문에 우리 민족에게는 크나큰 자부심을 느끼게 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6.25전쟁 잿더미에서 힘겹게 일어나 70년대에 산업화에 성공하고, 80년대에 민주화의 기틀을 다지고서 이렇게 세계적인 행사까지 치르게 되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경탄했다.  


SEOUL 올림픽에는 당시 우리나라와 수교도 없는 무서운 나라였던 소련과 중공까지 참가해 모두 159개국에서 8291명의 선수가 참가해 올림픽의 기록을 갱신했다.  우리나라는 477명의 선수가 출전해 당초의 예상을 뛰어넘어 금메달 12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11개를 따서 종합순위에서 4위를 차지한 놀라운 전적을 올렸다. 

 

SEOUL 올림픽의 개최계획은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1979년 9월 21일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올림픽 유치를 의결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당시 대한체육회 회장으로 있던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올림픽 유치 위원회”를 구성하고 유치 활동을 전개했다. 


그 결과 1982년 독일의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국제 올림픽 위원회) 총회에서 <사마란치> 위원장이 “제24회 올림픽 개최지는 SEOUL KOREA”라고 선언했다. 이 선언하는 자리에서 이제까지 힘겨운 유치 활동하던 정주영 회장을 위시한 유치 위원들이 서로 얼싸안고 감격의 환호를 외치며 기뻐하던 장면을 실황 중계하던 TV 화면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SEOUL 올림픽 개최지는 이렇게 결정되었으나 당시 서울은 세계가 우려할 정도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올림픽이 열리는 서울이 38선에서 불과 50Km의 거리인 데다가 북한이 이 올림픽을 방해하고자 바로 그 전해인 1987년 11월 29일에 우리의 KAL 여객기를 인도양 상공에서 폭파했으니 공포 분위기가 감돌았던 것이다. 이와같이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열린 SEOUL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했으니 진실로 기적 같은 일이다 


SEOUL 올림픽이 열린 16일 동안에는 쾌청한 가을 날씨가 계속되었고, 시민들은 교통의 혼잡을 피하기위해 정부가 결정한 차량 2부제를 솔선해서 지켰으니 모든 행사의 운영이 순조로웠다. 심지어 서울과 인천을 왕래하는 대중교통에서 설치던 소매치기까지도 외국 손님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대회 기간에는 영업(소매치기)를 일시 중단했다는 뒷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시민들의 협조도 적극적이었다. 


SEOUL 올림픽의 하이라이트는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문화를 세계 민방에 유감없이 발표한 개막행사와 폐막행사였다. 개막행사는 9월 17일의 맑게 갠 아침에 관람객이 입추의 여지 없이 좌석을 메운 잠실 종합경기장에 손기정 주자(1936년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가 하얀 연기를 뒤로 길게 드리운 성화(聖火)를 높이 치켜들고 입장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이 성화를 물려받은 2번 주자 임춘애가 경기장 트랙을 한 바퀴 달리고서 성화대에 점화하는 순간 기적 같은 장면이 연출되었다. 바로 그 시각에 경기장 상공에 올림픽을 상징하는 5색 연막을 뒤로 길게 벋은 5대의 제트기 편대가 갑자기 나타나 관중들의 박수갈채가 터졌다. 연이어 운동장 중앙에 설치된 회전무대에서 <코리아나 합창단>이 SEOUL 올림픽 주제가(主題歌)인 “손에 손 잡고”를 경쾌한 율동에 맞추어 합창하고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이어졌다. 


궁중의상으로 치장한 수백 명의 고적대가 입장해 장엄한 행진을 선보이고, 연이어 도전과 화합을 상징하는 <고놀이>가 끝나자 도복 입은 1000여 명의 태권도 전사가 입장했다. 이 태권도팀은 고막을 찌르는 듯한 구령에 맞추어 기본동작을 선보이고서 송판 조각기 공중으로 튕겨 오르는 격파 동작으로 장내를 압도했다. 

 

개막행사는 이렇게 역동적이며 박력이 넘치는 남성적 면모를 나타낸 반면에 10월 2일 저녁에 열린 폐막행사는 신비스러운 야간 조명을 받으면서 진행된 우아하고도 섬세한 여성적인 작품이었다. 특히 끝마무리 무대에서 <떠나가는 배>라는 주제로 지구촌의 선수들과 작별하는 아쉬움을 달래는 뜻으로 구수한 우리 가락 <뱃노래>에 맞추어 넘실거리는 깃발 행렬이 푸른색 조명을 받으면서 물결치는 장면은 진정 환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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