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부모는 당연히 자녀를 사랑한다?

전문가 칼럼

[민명기학원] 부모는 당연히 자녀를 사랑한다?

9월이 오면, 고교 시니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머리가 지끈거려 얼굴을 펴기 힘들다. 각기 다른 이유들이 있겠지만,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가장 현저한 이유는 이제 곧 대학에 원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아직 에세이에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집에 그런 자녀가 있다면, “아니 너는 도대체 방학 내내 에세이 좀 쓰라고 할 때는 걱정 말라더니…도대체 뭐가 되려는지, 쯧쯧” 하지 마시라. 


다음과 같은 에세이 주제를 선택하게 될 지도 모르니 말이다. “Has there been a time when you’ve had a long-cherished or accepted belief challenged? How did you respond? How did the challenge affect your beliefs? (자신이 오랫동안 귀중하게 생각했던 신념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반응을 했고, 그 도전은 당신의 신념에 어떤 영향을 주었습니까?),” 또는 “Reflect on a time when you questioned or challenged a belief or idea. What prompted your thinking? What was the outcome? (당신이 어떤 기존의 신념이나 생각에 의문을 품거나 도전해 본 적이 있다면, 그 때를 한 번 돌아보시지요. 무엇이 그러도록 만들었나요? 그 결과는 어땠나요?)


위의 에세이 제목들 중의 처음 것은 유덥을 비롯한 백여 군데의 명문 대학들이 사용하는 공통 원서인 Coalition application의 5가지 제목에서 뽑은 것임에 반해, 둘째 것은 원조, 대세 공통 원서인 Common application의 7가지 제목 중 하나이다. 보시다시피, 거의 대동소이하다. 농담이지만, 자녀들이 ‘부모님이 당연히 나를 사랑하신다’라는 신념에 회의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말이다.


아이들이 중고등학교를 시애틀에서 다닐 때, 가끔 같이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아이들의 푸념 섞인 불만에 직면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 속에서 공부에 소홀한 자녀를 심하게 혼내는 부모를 보거나 가난한 집 아들과 결혼하려는 딸에게 폭언을 퍼붓는 부모를 보면서, “아니 아무리 화가 나도 어찌 저렇게 무식하게 폭언을 퍼부을 수 있어요?” “정말 한국 드라마 속의 부모들은 왜 이리도 감정을 자제할 줄 몰라요?, 아빠” 쌍심지를 돋우며 드라마 속의 인물들에게 화를 퍼붓는다. 


물론 이 녀석들이 내가 공부 좀 하라고 얼굴을 붉힌 것을 기억하고 이렇게 날 들으라고 한 말은 아니겠지 자위를 하지만, 괜히 마음이 쪼그라든다. 그런데, 드라마 속의 장면들이 자꾸 아이들의 질책과 오버랩 되며, 괜히 신경이 쓰여 마음속의 나에게 묻는다. 


혹시 나도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마음을 할퀴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말들을 무의식적으로 해 온 것은 아닐까? 물론 부모로서 당연히 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며 뱉은 말들이었겠지만, 정말 부모는 아이들에게 이런 말들을 해도 되는 것일까? “공부 좀 해라, 왜 도대체 너는 이렇게 생각이 없니. 아이구, 그저 커서 뭐가 되려고 이래?” 생각이 있는 부모가 아이에게 쉽게 할 수 있는 말들은 아니라는 생각에 정신이 버쩍 든다.


인도의 시크 교도들은 세상에서 만나는 누구에게라도 “놀라운 면(wonder)”이 있고, 이것을 느끼는 것이 “사랑 (love)”의 시작이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우리 아이도 물론이지만, 저 길거리의 초라해 보이는 아이도 그 가정의 부모들에게 내 자녀 만큼이나 귀한 아이들이고, 그들이 하는 작은 일도 우리 아이가 한 착한 일만큼이나 귀한 일임을 깨닫는 것이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는 첫 걸음이라고 한다. 


수긍이 가는 가르침이다. 성경에서도,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 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추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려 주심이라. (마태복음 5:44-45)


     악인과 선인이 다 같이 밝은 빛과 때맞춘 비를 향유할 하나님의 자녀라면,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우리 형제, 자매들이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인종간, 종족간, 하물며 가족간에도 행해지는 온갖 유무형의 폭력 대신 남을 내 몸처럼 여기는 사랑을 실천하면,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줄 미래는 정말 살만한 신세계가 되지 않겠는가? 


     이러한 ‘서로 다름’의 인정과 이해가 옳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오랜 인류 역사 속에서나, 또는 우리네 작금의 현실 속에서, 매일 끈질기게도 계속되는 현상 중의 하나는 자신 나름의 ‘정의’를 고집하고 남에게 억지로라도 받아 들이게 강제하는, 마음에 안 드는 상대방에 대한 물리적, 정신적 통제 행위, 즉 ‘폭력’의 행사이다. 


흔한 것만 보아도, 가정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자녀에 대한 언어와 감정 폭력, 배우자에 대한 유무형의 가정 폭력, 직장내 지위에 기반한 언어및 여타 폭력, 다른 정파간의 이성을 잃은 흠집 내기 등등…. 너나 할 것없이 돌아 보고 고칠 일이다 (www.ewaybellev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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