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진정한 우정”

전문가 칼럼

[정병국칼럼] “진정한 우정”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이 있다. 

강남이 어디인지, 어느 정도 먼지 알 수는 없지만 아주 먼 거리임에는 틀림이 없다. 


춘3월에 강남 갔던 제비가 날아와서 앉아 쉬는 모습을 보면 깃털이 망가지고 몹시 지쳐 보이고 초라해 보인다. 


아주 먼 거리를 날아온 것이 틀림 없다. 이런 먼 길을 친구를 따라, 친구와 함께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실지로 그런 먼 길을 친구를 따라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냥 먼 길을 무조건 친구와 함께 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이 한세상을 살면서 진정한 친구가 한 사람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수긍이 가는 말이다. 


과연 우리는 친구를 위해 목숨이라도 내놓을 만한 그런 친구가 있는가? 우리는 유명한 밀레와 루소의 우정을 예로 들 수 있다.(이야기 내용은 생략)  


나에게는 아주 좋은 친구가 하나 있었다. 음악(성악과 기악)을 전공한 P라는 친구였다. 


고등학교 때 밴드부에 들어가서 알게 되어 함께 잘 지내다가 대학 졸업 후에 헤어졌다. 


나는 대학을 마치고 군에 입대했는데 그때 춘천 제3보충대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그(P)를 만났다. 그는 그 부대 군종 하사관으로 군목을 도와 예배를 주관하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 


그곳에서 3일간 머물다가 나는 제1군사령부(원주) 부관부로 발령이 나서 헤어지게 되었다. 제1군사령부에 근무하면서 부관감을 잘 만나서 내가 원하던 제3보충대(춘천)로 파견발령을 받았다. 


나는 육군부관학교 인사 분류반 출신이라서 충원지시를 받아 신병들이 오면 군사령부의 충원 지시대로 신병들을 전출시키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었다. 


신병이 몰려오면 3일 안에 각 부대로 발령을 내야 하므로 밤잠을 설칠 때도 많았다. 


나는 파견 근무자였기에 비교적 자유로웠다. 잠을 교회 숙직실에서 친구와 함께 잘 수 있었다. 내 친구는 사복을 몇 벌 걸어 놓고 주말이나 밤에 몰래 춘천 시내로 나를 데리고 나가서 영화 구경도 하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한 번은 보충대대 인사계에게 발각되어 기합을 받았다. 

내 친구가 나를 데리고 나갔다고 하여 나는 기합을 받지 않고 내 친구만 몽둥이로 궁둥이를 20대나 맞았다. 내 친구는 자지러지게 아파서 눈물을 흘리며 마구 울었다. 


그는 나보다 먼저 제대를 했다. 그와 헤어질 때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서로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그 이후 서로 연락이 끊겨서 만나지 못하였다. 


내가 미국에 와서 시애틀에 살 때에 LA에 한국 찬송가 음반을 사러 갔는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음반 상점에 들렀는데 아! 내 친구가 그 가게주인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우리는 밤새도록 그 친구 집에서 자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 다음부터는 1년에 한 번 정도 만나면서 연락을 계속했다. 


그러던 중 서로 바쁘게 사느라고 연락이 얼마 동안 끊겼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의 아내가 나에게 전화를 했다. 친구가 위암에 걸려 얼마 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다음 날 LA로 내려가 그를 만났는데 이미 그의 몰골은 병색이 짙었고 바짝 말라서 다른 사람 같았다. 음식을 통 먹지 못하고 미음만 먹어도 토한다는 것이다. 


그는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잘 믿어서 자기는 죽어도 천국에서 주님과 만나 영생 복락을 누린다며 슬퍼하지도 않았다. 

그 날 밤 그와 함께 자면서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다음 날 아침에 시애틀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이 그 친구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가 하늘나라로 간지 벌써 50년이 되었다. 


그는 지금 천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끔 그를 꿈 속에서 만난다. 여전히 웃는 얼굴이고 인자한 모습이다. 


그가 내 대신 방망이로 매를 맞을 때 나는 얼마나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 

우리는 고등학교시절부터 꿈이 있었다. 멋있는 영화를 한 편 만들자는 것이었다. 


각본은 글을 쓰는 친구가 맡고 내 친구(P)는 음악을 담당하고 나는 제작과 감독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영화도 못 만들고 셋이 뿔뿔이 헤어졌다. 


음악 담당자는 하늘에 있고 각본을 쓴다는 친구는 치매가 걸렸고, 나만 아직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인생의 한평생이 참으로 허무하고 덧없다. 


살아서 숨을 쉴 때 자주 만나야 한다. 병들어 죽거나 몹쓸 병에 걸리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진정한 우정을 나누는 것도 서로 건강하게 살아 있어야 할 수 있고 작품을 쓰고 영화도 만들 수 있다. 


이제 나만 아직 정신이 멀쩡한데 나 혼자서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중에 우리 세 사람이 천국에서 만나면 거기서 영화를 만들어 볼까! 인생은 일장춘몽이란 말이 맞는 것 같다. 꿈같은 옛이야기로 오늘 내 칼럼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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