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마 제일침레교회] 주 안에서 기뻐하라 (정주영 목사)
□ 본문: 빌립보서 3:1
우리 인간에게 기쁨의 감정은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기쁨을 느끼는 경우는 욕구가 충족되었을 경우인데, 크게 육체적
기쁨과 정서적인 기쁨으로 나눌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기쁨은 말 그대로 내 몸이 만족스러운 상태가 되었을 때 누리는 기쁨입니다.
반면에 정서적인 기쁨은 말그대로 정신적인 만족을 주는 기쁨입니다.
제 지인들 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차려주고, 그들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볼때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것이 바로 정서적인 기쁨이죠. 우리 모두는 이와같이 일상에서 크고 작은 육체적/정서적 기쁨들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대부분의 이러한 기쁨들은 우리의 환경에 의해서 많이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환경과 조건이 만들어져야지만 기쁨을 느낄수 있다는거죠. 쉽게 말해 웃을 일이 있어야지만 웃는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빌립보서에서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강조하는 기쁨은 새로운 차원의 기쁨입니다.
우리의 상황과 환경에 상관없이 누리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우리의 노력과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이며,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고, 사라지지 않는 영원한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만들어 내는 기쁨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오는 기쁨, 즉
영적인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작성한 옥중서신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편지 속에서
그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수차례나 반복적으로 기뻐하라고 강조하고 있고, 자신 역시
기쁨 속에 지내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바울은 지금 죄인의 신분으로 감옥에 갇힌 상태고 빌립보서를 쓸 당시 그는 이미
늙고 병들어 사도직을 감당하기도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게다가 바울의 편지를 받는 빌립보교회 역시 행악자들의 문제, 손할례당의 문제, 리더십들 사이에 분열의 문제 등으로 상당한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기뻐할 그 어떤 조건도 그들 가운데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성경은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명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안에서 기뻐하라”는 성경의 명령은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내려진 명령인데, 여러분은 이 명령이 과연 합리적이고,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이에 대한 사도 바울의 대답, 성경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당신들의
모든 억울하고, 힘들고, 고단한 상황 가운데서도 기뻐해야 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라고 빌립보서 전체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왜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고 더 나아가서 이 땅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명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크게 두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천국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
첫번째, 우리가 천국 시민이 되었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빌 3:20)” 지금 바울은 우리 성도가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얻었기에 어떤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기뻐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기쁨은 우리 성도들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기쁨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성도들의 신앙생활이 바로 예수님을 통한 구원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당시 유대인중에서도 최고의 스펙을 가진 사람이었고, 유대교 안에서는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나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될정도로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베냐민 지파 소속이고 팔일만에 할례를 받았다는 것은 다른 민족들과 피가 섞이지 않은 순수
혈통의 유대인, 즉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과거에는 그 자신에게 최고의 자랑거리였고, 가치였다는 거죠. 하지만 이랬던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사도 바울은 그분으로 인해 구원을 얻고 진정한 기쁨이 무엇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동안 자신이 배워왔고, 믿어왔던것 내용들, 즉 열심히 율법을 지키고 노력하는 것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마침내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했던 그 모든 학문과 지식과 스펙들이 사실은 자신이 구원에 이르는 것을 막는 해로운 것들, 배설물과 같은 것임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와 같은 구원의 은혜가 있음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죽음 가운데 부활하시며 해결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죄 용서를 위한 그
어떤 희생 제사도 필요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친히 희생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얻은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 나라의 시민권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지금 이 순간도 다양한 인생의 풍파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의 본향은 이 땅이 아닌 저 하늘인것을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이 땅에서 그 어떤 고난과 시험을 받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혜 때문에 하늘 본향을 소망하며, 이 땅 가운데서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2. 예수 안에 살기 때문에 기뻐할 수 있다
두번째로 구원받은 성도가 항상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예수 안에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명령할때 중요한 하나 전제가 붙는데, 바로 “주 안에서”라는 전제입니다. 빌립보서 4장 4절에서는 “항상”이라는 말이 추가되어서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사실상 이게 바울의 서신서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문구라고도 할 수 있는데,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 안에서”라는 표현이 바울의 서신서에서만 100번이 이상 인용되고 있습니다.
바울이 한 때 자기가 누렸던 과거의 영광을 배설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지식으로 여겼던 이유는 그가 바로 예수 안에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동행하는 인생, 매일의 일상 가운데서 예수님과 교제하며 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아시는것처럼 바울은 12명의 사도들처럼 실제로 예수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그가 처음 만났던 예수님은 하늘에서 내리는 강력한 빛 가운데 말씀하시는 부활의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모든 만족과 유익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이방인의 사도로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만났던 예수님이 죽은 존재가
아니며,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도 아닌 살아 역사하는 존재, 심지어 자기와 동행하는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상 속에서”가 아니라 “주 안에서” 기뻐할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 안에서 기뻐할때 하나님의 평강이 예수 안에 살아가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 4:7).
비록 저는 여러분이 어떤 환경과 처지 속에서 살아가는지 알지 못하지만 오늘 성경이
우리 모두에게 가르치는 것이 무엇인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면 충분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살아갈 때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발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살아갈 때 그동안 우리를 짓누르던 큰 문제가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살아갈 때 불안해하고, 조급해하고, 두려워하던 우리의 마음이 담대함과 평안을 얻을 줄로 믿습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 나의 삶에 안주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부름의 상을 위해 예수님이라는 푯대를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의 모든 삶을 포기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여러분이 쌓아왔던 경험과 지식과 커리어가 하찮은 배설물이라는 뜻은 더더욱 아닙니다. 이것은 우선순위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이 세상 모든 것보다 귀하고, 기쁜일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현재 여러분의 일상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여러분의 시선을 더욱 예수님께 두시고, 그분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각자의 부르심대로 주님 뜻 가운데 살아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예수 안에서 그분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임을 잊지 마시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묵상질문]
1. 그리스도인들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주 안에서 항상 기쁨을 누리며 사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