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칼럼] “김동길 선생님”
얼마 전에 한국에 다녀왔다. 이번 한국 방문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몰라서 감개가 무량했다. 한국에 도착해서는 시차를 별로 느끼지 않았는데 시애틀로 돌아와서는 엄청 심했다. 나이가 든 탓일까? 전에는 별로 피곤한 줄을 몰랐는데 이번엔 좀 심한 편이다. 8년 만에 본 한국은 한마디로 민주주의의 후퇴현상을 보이고 있었고 온 국민이 나라의 현재 상황에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개인적인 삶의 질은 많이 향상되었는데 나라의 정치현실은 많이 후퇴를 했다. 매일 시청 앞과 서초동 법원 앞에서 수백만의 인파가 물결처럼 몰려들어 데모를 했다. 교통이 완전 마비가 되었고 근처 상점들은 문을 닫아야 했다. 어디서 그렇게 많은 군중들이 모여드는지? 그렇게 많은 촛불은 또 어디서 왔으며 그 돈은 누가 대는 것인지? 나는 주로 서초동 남부터미널에서 친구와 제자들을 만났다. 지난 10월 2일은 김동길 교수님의 92회 생신이어서 참석했다. 200여 명이 모였는데 대부분이 나보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었고 우리 동기로는 김동건 아나운서가 김 교수님을 보필하고 있었다. 동치미 국물에 냉면을 먹고 빈대떡도 한 조각 먹었다. 사람들이 모두 김 교수님과 사진을 찍으려고 장사진을 이뤘다. 어느 왕이나 대통령보다도 더 극진한 예우를 갖추며 김 교수님께 인사를 했다. 나는 며칠 전에 미리 찾아뵈었는데 우리 내외에게 큰 절을 하라고 하셨다. 절값으로 1백만 원을 주셨고 사진도 함께 찍었다. 어쩌면 선생님을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만난다는 생각에 내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목소리와 기억력은 여전한데 몸은 많이 불편하여 시중을 들어야만 움직일 수가 있었다. 그런 몸으로 매일 칼럼을 쓰시고 김동길 TV(유튜브)에도 거의 매일 나와서 이야기를 하신다. 이런 분은 늙지도 말고 오래 살면서 우리에게 유익한 말씀을 계속하셔야 하는데…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는지는 자신도 모른다고 하신다. 나는 매일 아침 “석양에 홀로 서서”를 읽는다. 아직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글을 쓰신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선생님의 모습을 화면을 통해서라도 뵙기를 기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