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석칼럼] 물처럼 바람처럼

전문가 칼럼

[서유석칼럼] 물처럼 바람처럼

<내겐 사랑스런 누이가 있어요>


얼마 전 한국서 조카로부터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카톡을 받았다.


나에겐 누님이시다. 누님은 근 90세가 넘으시면서 거동이 불편하시게 되어 요양원 생활을 하시다 돌아가신 것이다.


정확한 표현으로 하자면 <사랑스런 누이>가 아니라 <존경하는 누님>이시다. 막내인 나와는 엄마와 아들 같은 나이 차이가 있다.


그런 누님이 아들만 6형제를 두시고 남편(나의 매형)이 일찍이 돌아가셨다. 막내아들이 5살 때쯤이었을 것이다. 생활 수입은 잘 되던 사업이 기울어지면서 어렵게 살아가실 때 갑자기 돌아가셨기 때문에 누님께서 그 많은 아이들을 키운다는 것은 앞이 캄캄하셨을 것이다. 어렵게 사는 형편에 예금이 있을리 없었을 것이다.


매형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은 누님이 방으로 오라고 하여 들어갔더니 매형의 양복을 꺼내고 그 양복의 속을 보여주시는 데 양복 속주머니에 손을 넣으니 밑이 뻥 뚫린 주머니였다. 

 

아니 왜 그러냐고 하니 매형이 얼마 전에 돈을 가지고 오다가 버스에서 소매치기를 당하였다는 것이다. 돈이 생겨서 기분이 좋으신 매형이 술 몇 잔 하시고 오시다 속주머니를 쓰리꾼이 칼로 자르고 돈 봉투를 빼간 것이다. 


그걸 아신 순간 얼마나 당황하시고 하늘이 무너지고 눈앞이 캄캄하셨을 것이 아니었을까. 아마 모르긴 해도 버스에서 내려 집까지 터덜터덜 오시며  막걸리 몇 잔의 술이라도 더 취해야 만 그나마 집에 들어오실 수 있는 용기가 나셨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언젠가 술이 많이 취하셔서 마루에 눕자마자 코를 고시고 알 수 없는 말로 중얼중얼 하시며 인사불성이셔서.


누님과 함께 체격이 크신 분이라 끌다시피 하여 방으로 모신 적이 있었다.


바로 그 날이 온 가족의 생명줄인 금쪽같은 돈 봉투를 <쓰리>를 당하신 날이었던 것이다.


누님께선 얼마나 답답하고 앞이 캄캄하셨으면 나 같은 철부지에게 매형의 양복을 보여주셨을까…. 


그래서 그런지 매형은 병을 가지게 되고 결국 입원까지 하시게 되었는데 그 후 병상에서 일어나시지 못하시고 원통하고 한 많은 이 세상을 하직하시었다. 


그러나 돌아가신 매형은 아무것도 모른다 해도 살아계신 누님은 하늘이 무너지는 크나큰 충격을 겪었을 것이다.


마침 내가 병원에서 매형의 마지막 모습을 보았으며 누님의 그 모습도 보았다.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누님의 겉모습은 아주 담대하시었다. 자식들 보는 앞에선 눈물도 보이시지 않으셨다. 온 가족의 생명줄인 돈 봉투를 잃어버렸을 때에도 전혀 미동도 없으셨으며 너무나 담대하신 자세와 모습이셨다.


매형이 돌아가시고 그 많은 대식구를 먹여살려야 할 뿐만 아니라 그 비싼 학비까지 마련하셔야 하는데 길이 있을 리 없었을 것이다. 


잘은 모르지만 마침 큰집이 생활 형편이 좋아서 아이들 학비가 필요 시엔 가끔 가서 도움을 받아 오시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무리 큰집이라도 죽기보다 어려운 돈 이야긴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심정이 아니었을까….


나는 외국 생활을 하여 더 이상의 상세한 소식은 모르고 살다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게 된 것이다.


이씨 조선시대 지금의 북한 땅 개성 지역엔 선죽교라는 돌다리가 있다고 한다. 그 다리엔 지금도 <정몽주>의 한이 수백 년이 지났어도 남아있다고 하는데, 나는 우리 누님께서 모시던 그 교회의 마룻바닥이 보고 싶고 궁금하다.


필경 누님께선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가족 앞에선 보이시지 않으시고 참았던 그 피눈물을 그 마룻바닥에 펑펑 쏟으시며 기도를 하셨을 것이다. 아마 그 마루는 지금도 우리 누님의 눈물을 보관하고 누님의 그 기도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누님의 신앙생활은 철저하셨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시는 신앙인의 참모습이셨다. 그러나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신앙을 얘기하거나 강요하는 모습은 못 보았다. 그러나 꼭 밥상 앞에선 가족 예배를 드리는 삶을 살아가셨다. 


그러나 누님은 본인의 생활 전반에서 참 신앙인의 모습을 손수 보여주시는 모범적인 신앙인의 ROLE MODEL이셨다. 만약 가족들 앞에서 약한 모습이나 눈물을 보이셨다면, 자라나는 아이들이 과연 이렇게 훌륭하고 당당한 사회인들이 되었을까? 


늘 희망적이며 자신감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며 자란 온 가족들은 모두 진실한 신앙인들로 살아가고 훌륭한 사회인들이 되었다.


나는 궁금하다 도대체 어디서 무슨 힘이 나와 <골리앗>같은 이 세상을 외소한 <다윗>의 지혜와 용기로 헤쳐나오셨을까…. 그 해답은 오직 신앙의 힘이었다고 확신한다.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노벨평화상을 타셨다는 <데레사> 수녀님은 수녀원에서 먹고 입고 자는 최소한의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기본은 걱정없이 보호를 받으시며 <신앙과 봉사>에 만 전념하시는 삶을 살아가시지 않았을까…. 


그러나 누님께선 먹고 입고, 자고, 가르치며 신앙까지 본인이 다 해야만 하는 철인 같은 삶을 역동적으로 사신 분이시다. 만약 묘비를 세운다면 묘비에 여기 위대하신 참신앙인 <데레사 전도사>가 누워있다 라고…   


다행인 것은 요즘 딸이 있는 집안이 부럽다고들 하는데 누님께선 며느리들이 딸 같다고 하신 적이 있으시다. 몇 번 손편지를 나에게 보내셨는데 워낙에 남자 같은 달필의 멋진 글씨체라 지금도 보관을 하고 있다. 


누님께선 아들 여섯에 딸 같은 며느리가 여섯 명이라 그들의 지극한 효도를 받으시다 돌아가실 때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행복한 삶을 살다 가신 분이시다..

천국에 계신 누님께 드린다.


시애틀 거주 부동산인 서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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