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한인로컬칼럼] 감명 깊은 주례사 - 이성수(수필가, 서북미문협회원)
같은 교회 다니는 장로님의 아들이 교회에서 결혼식을 거행하였다. 나는 하객으로 참석하게 되었다. 담임목사님이 결혼식 주례를 맡았다.
결혼식에 참석하고 보니 오래되었지만 친한 대학 후배의 결혼식에 참석하였던 생각이 났다. 그 결혼식은 여느 결혼식처럼 잘 어울리는 신랑 신부의 모습에 부러움이 가득한 축하의 장(場)이었다.
시간이 되니 장내는 하객으로 가득 찼다. 그런데 같이 간 친구로부터 믿기지 않는 이야기를 들었다. 후배(신랑)가 결혼하기까지 부모님의 엄청난 반대 때문에 어려움이 참 많았다고 했다. 후배(신랑)는 사랑하는 신부와 결혼하려고 목숨을 걸고 집안의 반대와 싸웠다고 한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결국 아들의 주장에 부모는 손을 들었다고 한다. 그 많은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신부는 미소를 머금은 예쁜 얼굴에 천사처럼 아름답고 단아해 보였다.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어 보였다. 저 정도의 신부라면 어디다 내 놓아도 손색없는 1등 신붓감이었다.
결혼식 주례 선생님은 나의 대학 은사이자 후배(신랑)의 은사이기도 한 분이었다.
대학 선배님의 사회로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신부입장이 있었다. 그런데 미스코리아 보다 더 예쁜 신부는 아버지와 팔짱을 끼고 입장하는데 울고 있었다. 이 기쁜 날 웃으며 입장해야 할 처지인데 울고 있다니 하객들은 의아히 생각하였을 것이다.
어렵게 결혼식을 올리게 되어 너무 기뻐서 우는 걸까? 아님 신랑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감격하여 우는 걸까?
얼마 전 친구의 말을 듣고 그 눈물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
5년 전쯤 일이라고 했다. 신랑은 음악을 좋아해서 합창단에 가입하여 평소에 연습을 많이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암환우회(癌患友會)를 위문하는 음악회에 나가 합창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순서 중 바이올린 연주를 잘하는 여자 분을 보았다. 그녀의 빼어난 연주솜씨에,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미모(美貌)에 신랑은 고만 첫눈에 반해버렸다고 했다.
그날 그녀의 연주곡은 어메이징 그래이스(amazing grace)란 노래였다고 했다. 끊어질듯 이어지는 선율을 타고 울려 퍼지는 노래 소리는 가슴속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이렇게 신랑이 감동을 받았는데 암 환자들은 얼마나 가슴이 찡하였을까?
암환우회 위문공연이 끝나고 그녀를 만나려고 하였으나 만나지를 못하고 그 후에 어렵사리 그녀 친구의 연락처를 수소문 끝에 알아 내 그녀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그녀의 친구를 만난 신랑은 실망을 했다고 한다. 그녀는 말을 못하고 듣지 못하는 장애인(啞者)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아(聾啞)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대학교에 입학하여 특수교육을 받아 음악공부를 열심히 하여 바이올린을 전공했다고 한다.
음악경연대회에서 입상도 하고, 불우이웃을 위해 연주를 하고, 특히 암을 앓고 있는 환우를 위해 열심히 활약을 하고 있다고 했다.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자신이 장애자이므로 회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 친구에게 한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애원을 했지만 허사였다. 얼마 후에 암환우 위문 공연이 있어 그곳에서 그녀를 다시 만날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녀의 친구도 공연장에 같이 왔다. 셋이 같이 만났고 신랑의 말을 그녀 친구가 수화(手話)로 전달하였다. 신랑은 수화(手話)공부를 하여 그녀와 의사소통을 하였고 시간이 지나 사랑을 고백까지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 하루는 신랑 어머니가 좋은 혼처가 나타났으니 맞선을 보라고 권면하였다고 한다. 아들은 사귀는 여자 친구가 있다고 말했고 어머니는 한번 데리고 오라고 했다.
하지만 말도 못하고 듣지를 못하는 장애인을 데리고 오면 어머니가 허락 않을 것을 알고 있는 아들은 차일피일 시간만 끌었고 두 사람의 사랑은 점점 뜨거워갔다.
그러나 어머니의 성화에 더 이상 지체할 수가 없어 하루는 부모님 앞에서 이실직고(以實直告)를 했다고 한다.
청천 벽력같은 아들의 말에 부모님은 아연실색하였고 그 후에 겪는 부모님과의 갈등은 말이 아니었다고 했다. 아버지는 이해해 주었지만 어머니의 반대는 대단하였다고 했다. 어머니는 결코 그런 장애자를 며느리로 맞아드릴 수 없다고 했다. 아들도 그녀 아니면 결혼 안 한다고 단식까지 하였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어머니는 아들의 결혼을 승낙하고 말았다.
입장하는 신부는 계속 울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라 희미한 기억이지만 일기를 통해 은사님의 주례사의 요점을 조명해 본다.
"........제 대머리를 딱 한 자(子)로 표현하면 빛 광, 즉 광(光)이라고 할 수 있지요. 신랑 신부가 백년해로하려면 광(光)나는 말을 아끼지 말고 해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세 치 혀입니다." 하객들은 모두 진지한 눈빛으로 주례사를 경청하고 있었다. 은사님의 주례사는 계속되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부라고 해도 혀(舌) 를 함부로 놀려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여보! 사랑해요. 당신이 최고야!”라는 광(光)나는 말은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계속해도 좋은 겁니다."
이 말을 듣고 웃는 하객들도 있었다.
주례사는 계속되고 있었으며 하객들은 대학교수의 빛(光)나는 명(名) 주례사를 경청하고 있었다.
그 순간, 하얀 장갑을 낀 신랑의 손이 바삐 움직이고 있는 게 주례사를 하고 있는 은사님의 시야(視野)에 들어왔다. 다만 손을 움직이는 동선(動線)이 최소한으로 짧을 뿐 주례사를 하고 있는 은사님만이 아니고 하객인 나도 신랑이 수화(手話)로 말하는 모습을 보고 신부가 장애자라는 것을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일생에 단 한번 있을까 말까하는 결혼식 주례사를 사랑하는 신부에게 알리고 싶어 수화로 말하는 신랑의 자상함에 감동했다. 사실 수화하는 것은 신부가 장애자란 것을 노출시키는 행위이므로 신랑의 용기가 있어야했다.
역시 주례사를 하고 있는 은사님도 감명을 받았는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씀으로 주례사를 마쳤다.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신랑이 가장 아름다운 신부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을 해주고 있습니다. 군자(君子)는 행위(行爲)로써 말하고, 소인(小人)은 혀(舌 )로써 말한다는 성인의 말이 있습니다. 오늘 주례사를 하고 있는 저는 혀로써 말하고 있지만 신랑은 지금 행위로써 말하고 있습니다. 신랑과 신부 모두 군자(君子)의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두 군자님의 인생에 축복이 가득하길 빌면서 이만 소인의 주례사를 마칩니다." 예식장은 하객들의 박수 소리에 떠나갈 듯했다.
보이지 않으면 들리도록 표현하고, 들리지 않으면 보이도록 표현하며 마음으로 표현하면 더 잘 들리고, 더 잘 보이는 것이 사랑이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선물이다." 라고 말한 패디 S. 웰스의 말이 생각났다.
은사님의 주례사는 멋이 있었다. 나는 은사님의 주례사에 감명을 받았다.
신(神)으로부터 축복받은 선물을 받은 그 때의 그 신랑 신부는 지금도 여전히 행복하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