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내가 겪은 코로나 바이러스 19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내가 겪은 코로나 바이러스 19

이성수(수필가. 서북미문협회원)

 

내가 어렸을 적에 겨울에 기침하고 열이 나는 전염병을 앓으면 ‘고뿔’에 걸렸다고 했다. ‘고뿔’은 순 우리말이고 감기, 독감, 인플루엔자란 말은 그때는 아예 없었다. 


2019년 12월 중국 후베이성 우한시에서 박쥐로부터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는 눈부시게 발달한 교통수단을 통해 전 세계 구석구석에 삽시간에 번져 작년 9월 기준 2281억 명이 확진되고 4681만 명이 사망하였다.


바이러스 병원체 겉모양이 가시같이 생겼다하여 코로나라고 부른다. 이 병이 미국에도 파죽지세로 전염되자 모든 집회가 중단되고 식당도 폐쇄되었다. 나는 여러 모임에도 참석을 못하고 답답하게 집안에만 갇혀 지내게 되었다.


“밖에 나가지 말라. 무서운 코로나 19에 감염된다. 감염되면 치료가 어렵고 죽을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사회적 거리 6피트(183cm)를 지켜라. 마스크를 필히 착용하라. 비누로 거품을 내어 손을 씻는 시간은 “해피 버스 데이 투유(Happy Birthday to You)”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손도 씻고 노래도 부르면서 코로나 바이러스를 퇴치하자.” 

이상은 워싱턴 주지사의 행정명령이다.


이제 꼼짝없이 집이 창살 없는 감옥이 되어 버렸다. 코로나 19 소식이 겁을 주고 있다. 워싱턴주 하루 확진자와 사망자가 몇 명이다. 근처에 있는 B 아파트에서 몇 명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였다. 페더럴웨이 H마트에서 확진자가 나와 문을 닫았다. 그러다가 얼마 후 아니다. 잘못된 보도다. 또 B 타코마 한인 마트에도 확진자가 발생하였다. 이런 소식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돌았다.


오래간만에 아내와 함께 한인마트에 갔다. 입구에서 종업원이 카트를 소독하고 있다가 카트를 끌고 가는 나의 손에 손세정제를 뿌려 주었다. 쇼핑객으로 붐비던 마트는 텅 비어 한산했다. 싱싱하던 야채는 시들어 있고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팔던 과일도 조금만 진열되어 있었다. 항상 만원을 이루던 마트 내 식당은 문을 닫아 어두컴컴하였다.


10곳도 넘는 계산대는 모두 쉬고 단 한 곳만 마스크는 물론 완전무장까지 하고 투명 플라스틱으로 얼굴을 가린 캐셔(cashier)가 계산하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마트 안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골라 카트에 싣고 계산대에 왔다. 중년 여자 손님이 차례를 우리에게 양보해 주며

“노인 분들은 코로나 병균이 우글대는 마트에 오래 계시면 감염되기 쉬우니 빨리 가셔야 해요”라고 말했다. 코로나 병 때문에 다들 쇼핑을 마치고 서둘러 집에 가기 바쁜데도 어르신을 먼저 생각하는 그녀의 깊은 배려심에 아내는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어쩌면 우리를 부모처럼 생각했는지 모른다.


 쫓기듯 서둘러 마트를 나왔다. 정말 코로나 병균이 우글대는 것 같아 두려웠다. 몇 명 안 되는 쇼핑객이지만 모두 다 말이 없고 마스크를 써서 그런지 화난 사람처럼 무표정하다. 코로나 병은 사람들로 붐비던 마트에까지 침투하여 소위 코로나 블루(blue, 우울, 불안)를 확산기키고 있다. 


긴 여름 해는 지루했다. 집 근처에 고등학교 운동장이 있다. 그곳에서 아내와 같이 매일 걸었다. 드넓은 학교캠퍼스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이 조용하다. 심호흡을 했다. 주위에 있는 키 큰 나무에서 나오는 산소를 폐 속 깊숙이 들이키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햇빛은 연두색 잔디밭 위에 소리 없이 소나기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또 한 가지 소일거리는 아파트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는 일이다. 정부에서 노인들의 치매예방을 위해 아파트의 정원을 텃밭으로 만들어 분양해 주었다. 나는 이 텃밭에 각종 채소를 가꾸며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고 풀을 뽑으며 시간을 보냈다.  


팬데믹 기간 동안 우리 협회 문우(文友)들, 상록회원들, 교회 교인들, 친지들, 지인들 모두 10여 명이 유명을 달리했다. 장례식에도 참석을 못했다. 인원이 초과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마지막 가는 길 곁에서 명복도 빌지 못해 몹시 안타까웠다.


절친한 친구 손자 결혼식이 있어 새 인생을 출발하는 한 쌍의 원앙을 축복해 주고 싶었는데 코로나 19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실로 이런 불편함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러한 거리두기 조치가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85세대에 100여명이 입주해 살고 있는데 절반이 한국 사람이다. 우리 아파트에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였다. 4층에 사는 나의 친구 장로 내외의 간병인이 코로나 병에 감염되어 친구 내외도 검사 결과 양성이 나와 우리 아파트에 총 3명의 확진자가 발생하여 전 아파트에 비상이 걸렸다. 당국은 친구 내외와 간병인만 입원시키고 그 집은 소독한 후 주민들은 자가 격리 조치를 시켰다.


 난 꺼림칙하여 병원으로 코로나 검사를 받으러 갔다. 주차장에서 간호사가 가검물을 채취하였다. 6층 아파트를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감염될 수도 있고, 출입문 문고리에서도 전염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양성이 나올까 봐 걱정을 하였다.


천사 같던 간호사들이 완전무장을 하고 목숨 걸고 땀을 흘리며 비장한  각오로 일하고 있는 모습이 대견스러웠다. 다행히 나는 다음 날 음성반응이 나왔다.


한편 코로나 수용병원에 입원한 친구내외가 고생하는 것이 너무 안쓰러웠다. 면회도 사절이고 전화로 겨우 소식을 듣지만 갑갑하기만 했다.


병원에 입원한지 2주 후에 검사결과 친구 부인은 다행히 음성판정을 받고 곧 퇴원했지만 친구는 양성이라 계속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나중에 안 일인데 사진을 찍어 보니 코로나 바이러스가 폐(肺)에 침투하여 하얗게 색이 변하고 구멍이 두 개나 뚫려져 있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듣고 친구가 고령이라 살 가망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친구는 중증 환자실로 옮기기 이틀 전 밤에 똑같은 꿈을 되풀이하여 꾸었다고 했다. 꿈인 즉 “너의 병이 완치되었으니 빨리 검사를 받아라.” 이런 음성이 계속 들렸다고 했다. 꿈이 하도 이상하여 병원 측에 검사를 요청했으나 검사한 지 며칠밖에 안 됐다며 거절당했다. 그러나 통역을 통해 자신의 병이 완치되었다며 끈질기게 검사를 요구했다고 했다. 


의사는 폐 사진까지 보여 주며 거듭 거절했다. 그래도 다시 해 달라고 울며불며 애원하였다고 한다. 자신의 병이 완치된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의사가 그의 정성에 감동했는지 검사를 했는데 음성이 나왔다. 이때 놀란 것은 의사였다. 양성이 나올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다시 폐 사진을 찍었다. 폐의 하얗던 부분이 모두 사라지고 구멍 2개도 어느 사이 모두 없어져 정상이었다.


의사는 중증환자가 며칠 만에 이렇게 깨끗이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 영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원더플!을 몇 번이나 연발하였다고 한다.


이 소식은 삽시간에 병원전체에 퍼져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하마터면 중증 환자실로 갈 뻔했던 친구는 곧 퇴원하고 요양원으로 옮겨 가료하다 한 달 후에 집으로 왔다. 나는 집에서 친구를 만났다. 죽은 사람이 살아온 것처럼 너무 기쁘고 반가웠다. 꼭 꿈만 같아 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친구도 너무 반가워 울면서 “하나님이 꿈을 통해 나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셨어.”라고 말했다. 나의 생각에도 정말 신비스러운 기적이었다. 그 친구가 간증을 통해 널리 이 사실을 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친구는 그 후 몰라보게 빨리 회복이 되어 지금은 하루 만보걷기를 할 정도로 건강해졌고 한 달에 한 번씩 성경을 완독하고 있다.


나는 지난 2년 남짓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많은 불편을 겪고 고생을 했다.


하지만 간병인에 의해 코로나에 감염되어 죽음의 수용병원에서 고생한 나의 친구에 비하면 내가 한 걱정은 아무것도 아니다.


또 코로나로 인해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슬픔에 잠긴 수많은 유가족의 애통함과, 직장을 잃어 살길이 막막해진 수많은 실업자들, 그리고 손님이 끊겨 문 닫을 위기로 미래가 불확실해져 불안해하는 많은 자영업자들에 비하면 나의 불편과 고생은 실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가 처음 찾아 왔을 때만 해도 얼마 가지 않아 지금의 첨단의술로 퇴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가고, 한 달이 가고, 어느덧 2년이 다 되어 가는데 언제쯤 마스크를 완전히 벗을 날이 올지 그 끝을 아무도 모르고 있다.


다행히 10년도 더 걸릴 백신이 1년 남짓하여 개발되어 접종을 하고 있지만 새로운 변종 바이러스가 생겨나 백신을 무력케 하여 주춤하던 코로나 19가 다시 창궐하고 있다.


우리 모두 면역력을 높이면서 일상으로 복귀하는 그날이 오기까지 코로나 19와 코로나 블루(blue)와의 전쟁에서 반드시 승리할 것을 고대하면서 수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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