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와 보니 3년 전에는 조그맣던 뽕나무가 많이 자라 있었다. 잎이 넓고 수세가 강한 노상이란 품종과 가세 뽕이란 뽕나무를 보니 어릴 때 뽕나무 열매인 오디를 따먹던 기억이 새록새록 났다.

오디를 충청도 사투리로 '오디게'라고 부른다. 나의 어린 시절은 뽕나무가 아주 흔했었다. 일제강점기 때 명주(silk)를 생산하기 위해 뽕나무를 많이 심어 집집마다 강제로 누에를 치게 하였다. 우리 마을이 도내에서 뽕나무가 잘 자라는 사질양토 토양이라 양잠 시범단지로 선정되어 누에를 많이 쳤다.   

현존하는 중국의 가장 오래된 농서(農書) '제민요술'에 새까맣게 익은 뽕나무의 열매인 오디를 먹으면 소갈(당뇨병)이 멈추게 될 뿐 아니라 혈기를 돋워 주고 노화를 방지해 준다고 쓰여 있다.

예부터 오디와 같은 먹을 것을, 비단과 같은 입을 것을, 소갈이(당뇨)와 같은 병을 고치는 데 뽕나무만큼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나무도 없다. 

뽕나무는 잎, 가지, 열매, 뿌리뿐 아니라 누에란 곤충을 통해 뽕잎을 먹고 생산한 비단 원료 등을 아낌없이 인간에게 준다. 심지어 누에나방이 변태하기 전의 상태인 번데기를 사람들은 간식으로 먹는다. 번데기는 고단백원이다. 

그뿐 아니라 뽕나무에 기생하는 곤충, 이끼, 뽕나무에서 나는 상황버섯, 또 나무를 태운 재(灰)까지 약제로 쓰인다니 실로 신(神)이 내린 나무이다. 그래서 뽕나무 꽃말이 지혜와 봉사(奉仕)인가 보다.

녹차나 커피 같은 차는 카페인이 들어 있지만 뽕잎차는 카페인이 하나도 들어 있지 않아 안전하며 부작용이 없다. 엽록소 성분이 많이 들어 있어 혈액순환을 도와주고 당뇨환자가 차로 마시면 당을 조절하는 작용이 있고 오래 마시면 정상이 된다고 한다. 뽕잎은 서리가 내린 후에 채취하여 그늘에서 바삭바삭하게 말린 잎을 차로 끓여 매일 마신다.

누에가 뽕잎을 먹고 생산한 비단(silk)이야말로 아무리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현대 첨단과학으로도 복제(複製)할 수 없는 지구상에서 가장 촉감이 좋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신비한 고급 천이 아닌가!

뽕나무는 잎으로 누에를 쳐 값비싼 비단을 생산한다. 그런데 오디가 몸에 좋다고 뽕나무 잎은 작게 자라게 하고 오디만 크고 다닥다닥 많이 열리는 뽕나무로 개량하였다. 즉 뽕나무 잎을 따서 누에를 쳐 비단을 생산하는 것보다 오디를 많이 열리게 하여 우리 인간의 건강증진에 도움을 주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임도 보고 뽕도 딴다"라는 속담이 있다. 옛날에는 남녀유별이 철칙으로 되어있어 처녀가 문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남녀가 만날 수 있는 절호의 유일한 기회는 뽕나무밭에서 몰래 만나 사랑을 속삭이는 일이었다. 혹 들켜도 뽕을 딴다는 명분이 있어 어른들로부터 꾸중을 듣지 않고 또 뽕나무가 지켜주었다. 

이렇게 뽕나무밭에서 남몰래 열렬히 사랑을 속삭일 때 뽕나무 상(桑)자를 써 상중(桑中)에 있다고 한다.  

뽕나무라면 누에 치는 일이 떠오르나 나는 오디를 따 먹던 생각만 났다. 

나는 한창 살기 어려운 어린 시절에 간식거리가 없었다. 그때 오디를 한 움큼 따서 입에 넣으면 그 달고 시고, 시면서 달달한 맛이 점점 더해지는 오묘한 풍미(風味)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절로 난다. 

여러 나무에 열리는 열매를 따 먹어봤지만 오디처럼 새콤하고 단맛이 나는 과일을 먹어보지 못했다. 오디는 아무리 먹어도 결코 물리는 일이 없고 먹으면 먹을수록 맛이 있어 더 먹고 싶어졌다.

오디는 한 나무에 3가지의 열매가 열린다. 즉 연녹색과 흰색을 띤 맛이 없는 어린 열매와 빨간색의 신맛만 나는 익지 않은 오디, 그리고 검붉고 보라색이 나는 완전히 익은 단맛과 신맛의 오디이다. 

진한 초록색 뽕나무 잎과 새빨간 색의 덜 익은 오디와 진주같이 다 익은 영롱한 검붉은 보라색 오디의 색의 조화(造化)는 참으로 환상적이고 아름답다. 그리고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다.

오디는 신맛이 나기 때문에 산성식품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알칼리성 식품이라 피로 회복에 도움을 준다.

싸움 잘하는 개 주둥이 성할 날이 없다고 오디를 즐겨 먹던 나의 입 주변과 손은  온통 새까맣게 오디 열매 흔적이 남아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나를 보고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 오디 물은 진해서 물로 잘 지워지지 않았다. 

옛날에는 오디가 좋은 줄을 몰랐다. 만일 지금 오디를 마음대로 남의 집 뽕나무에 올라가 따 먹는다면 주인으로부터 호되게 야단맞을 것이다.  

큰 뽕나무에서 맛있는 열매를 따 먹다가 뽕잎을 다 딴 나무에 먹음직스러운 오디가 열려있어 한 주먹 따 먹었다. 맛이 좋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의외로 너무나 맛이 없었다. 아니 이건 맛이라기보다 정말 무미건조(無味乾燥)한 맹탕이었다. 그냥 땅에 뱉고 싶었다. 잎이 햇빛을 받아 탄소동화작용을 하여 열매에게 영양을 공급해야 맛이 있는데 그런 일을 하는 잎이 없어졌으니 맛이 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6월이면 오디가 익어간다. 그 옛날 춘궁기에 먹을 것이 없던 때 오디는 신이 내린 간식거리였다. 같은 시기에 익는 우물가의 앵두도 따 먹고, 매실, 살구, 버찌, 복분자도 먹어봤지만 오디의 맛은 유별나게 두고두고 여운(餘韻)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