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가난한 부자

전문가 칼럼

[리사운드교회] 가난한 부자

고든 맥도널드(GORDON MacDONALD)의 <베푸는 삶의 비결>에 나오는 한 문구입니다.


물론 성전 연보궤에 자신의 전 재산인 두렙돈을 넣은 그 여인이 떠오를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신 예수님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전부를 드림입니다.


그렇습니다.

헌신입니다.

헌신함에 있어 key Point는 남겨 둠이 없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버는 것이 많은 어떤 사람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십일조 생활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꽤 신실한 성도였습니다만, 

그는 십일조를 말씀대로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작정 헌금으로 십일조를 대신한다고 하며 

자신을 위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객관적으로 볼 때 그가 십일조를 제대로 하면 

그 교회의 재정은 늘 넘쳐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헌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는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드리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드리는 것이 혹시 실제하지 않는 가상 화폐가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듭니다.

이제 시대가 변하여 가상 화폐와 실존 화폐를 혼용할 때가 곧 임할 것 같기도 합니다만 

현재로서는 그에 대해 무지한 자로서, 무언가 믿음직스럽지가 못한 면이 있습니다.


물론 그 과부가 드린 두랩돈으로 성전을 견고하게 할 만한 가치는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이 실제로 하나님의 일이라는 그 큰일에 

어떤 기여도 할 수 없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치 우리의 헌신이 무언가를 할 수 있음 같이 여겨 주심입니다.

그러므로 드릴 수 있음이 우리에게 복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천국에 입장하는데 어떤 물리적 엑수가 정해져 있다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수정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크기를 계산하시는 방식이 세상과는 다름이 분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물쩍 하게 살다가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편한 길의 성도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수영로 교회 원로 목사님이셨던 고 정필도 목사님의 유언 기도가 떠오릅니다.

적당히 살지 말고, 믿음대로, 말씀대로 살라는 것이었다고 전해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차피 적당히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우리를 지배함을 고백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말씀대로 살아도 어차피 그것은 우리 믿음의 분량 밖을 벗어 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이 아무리 아름답고 웅장한 성전을 지어도 그곳에만 하나님께서 머물기는 불가하기 때문입니다.


은혜가 한량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되어주시어서 우리를 그저 감싸 안아 주실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최선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미 아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가장 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우리의 최선과 그럴싸함을 구별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눈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날 되길 기원합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서 가난한 부자의 향기로움으로 

거룩 거룩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날마다 찬송하는 삶을 다짐해 봅니다.

홍 신덕 장로


베드로전서 4:10-11 (개역한글)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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