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마 제일침레교회] ‘주안에서의 자유4’

전문가 칼럼

[타코마 제일침레교회] ‘주안에서의 자유4’

송경원 담임목사

로마서 8:1-2


지난 달 부터 ‘주 안에서의 자유’에 관하여서 시리즈 설교를 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유’의 개념과는 반대로 ‘율법주의’가 가진 위험성과 심각성에 대하여도 여러 차례 강조를 해오고 있음을 잘 아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지만, 누구든지 ‘율법주의’에 빠지면 삶의 행복 지수가 낮아질 수 밖에 없고, ‘은혜’도 메말라지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어떠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행위로서 완벽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율법주의의 겉 모습은 매우 경건하고 신실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는 죄책감, 열등감, 수치심 등으로 인해 자존감이 망가지고 결국 주안에서의 자유를 누리지 못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고로 ‘율법주의’와 ‘완벽주의’는 ‘결’이 비슷합니다. 예를 들어서 율법주의적 완벽주의자들은, ‘사랑’ 대신에 ‘율법’ 으로서, 그리고 ‘관계’ 대신에 ‘규율’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율법주의’는  행위가 완벽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을 꾸짖고 자책감을 심어 주어서, 그리스도인들이 자유를 누리지 못하도록 만든 다는 것입니다.


과거를 후회하게 하며, 현재를 즐기지 못하게 하며, 결국 소망을 잃고 미래를 두려워하게 만들어 버려서, 한 마디로 자존감을 철저하게 무너뜨립니다. 그러므로 ‘율법주의’에 빠지게 되면 은혜가 메마를 수 밖에 없고, 삶이 행복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어서 저와 여러분이 앞으로 자유를 누리기 위하여서 주의하여야 할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마음의 무거운 짐들을 덜어내기 위하여 쉽게 선택해 버리는 ‘율법주의적’인 행동이 있습니다.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나의 상태를 돌아보기 보다, 남을 탓하며 쉽게 정죄해 버리는 습성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즉, 나를 누르고 있는 ‘죄책감’과 ‘수치심’의 무게를 남에게 떠 넘기면 그 즉시 숨통이 트인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잠시 동안의 착각일 뿐 이며, 마치 갈증이 난다고 바닷물을 마시 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자존감이 회복되기는 커녕 성품과 인격이 망가질 뿐 입니다)             

        

[로마서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기 전까지 철저한 율법주의에 빠진, 바리새인중의 바리새인 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바울이 율법주의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부인(self-denial)하는 것은 성경적인 개념이지만, 자신을 비하(self-degradation)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즉, ‘자기-부인’ 이란 내가 기꺼이 죄 된 이기적인 욕구들과 행동들을 벗어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자신을 무시하거나 심리적으로 스스로를 소멸시키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다고 해서 가치가 없는 존재라는 뜻은 아닙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하는 것은 이기심과 구별됩니다.


복음안에서 자유함을 누리고 ‘자존감’이 회복되어야 할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어야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모든 율법도 결국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귀결되듯이 사랑이 목적입니다. 복음은 우리를 자유케 하는데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정죄함으로부터 자유하게 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남이 나를 정죄하는 것에서부터 자유함을 얻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문제는 내가 나를 정죄하는 것에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록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무가치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가장 복 된 존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셨는데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못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번 한 주도 복음안에서 정죄함에서 자유하고, 내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우리 이웃도 내 몸처럼 사랑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현재 나의 자존감을 1에서부터10까지 사이의 점수로 표현한다면 몇 점인가요?

2.      위의 점수를 준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나의 자존감이 무너졌거나 또는 건강해진 사건이나 전환점이 있으면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3.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내게 주시는 은혜와 도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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