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마 제일침레교회] ‘주안에서의 자유8’

전문가 칼럼

[타코마 제일침레교회] ‘주안에서의 자유8’

7.3.2022 송경원 담임목사

갈라디아서 5:13-15


오늘은 “주안에서의 자유”시리즈 설교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그리고 내일은 (7월4일)독립기념일이기에, 오늘 나누는 ‘주안에서의 자유’에 관한 의미가 더 새롭게 마음에 새겨집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잊지 말고, ‘종’이 되어 서로를 섬길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동안 함께 나눴던 내용을 잠시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유’(ἐλευθερία 엘류쎄리아)의 성경적 의미는 노예로부터의 자유를 뜻 합니다.

2. 율법은 선하지만, 죄인인 인간의 힘으로는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에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서 가능합니다.

3.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워지려는 노력이므로 은혜가 아닌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4. 율법주의에 빠지면 나과 나를 정죄하며 이로 인해서 자존감이 낮아집니다.

5. 자존감의 회복은 우선 ‘자존감의 결여’를 인정하고, 주안에서의 정체성을 인식하며, 소명과 사명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5: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갈라디아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 대헌장’으로서 불릴 만큼 율법적 제약으로부터의 자유를 교훈 해 주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율법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까지 한시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음을 설명하고, 율법의 역할은 마치 청지기와 후견인과 같다고 강조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생명을 얻는 목적으로 부여된 것이 아니라 초등교사처럼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윤리적 삶을 제시함과 동시에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함으로써 그리스도에게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믿음 지상주의자로서 모든 율법과 규범 자체를 부정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진 자유’ 곧, 주의 이름으로 스스로 종노릇하게 하는 역설적인 자유를 본문에서 강조합니다. 즉, 바울이 언급한 종의 특징은 다른 사람앞에 스스로를 낮추고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종이 되어서 섬기는 사역을 감당하더라도 나의 정체성은 여전히 변함없는 자유인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기의 개인적 바람에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를 400년 동안 했던 이스라엘이 마침내 자유를 얻고 자유인이 되었지만, 그들은 광야의 삶이 힘들고 어렵다며 애굽에서 보냈던 시절이 좋았다고 그리워하며 불평했던 그들의 연약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자유를 받아들이거나 노예 살이에 복종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니라.”


여러분, 종의 멍에를 다시 메지 않도록 깨어서 싸워야 합니다. 오직 성령에 이끌려 살아갈 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변화되고 성숙되어 주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하며 이웃을 섬길 수 있습니다. 

성령안에서 육체의 욕심을 이기고 ‘주안에서의 자유함’을 누리며, 서로 종노릇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그동안 주안에서의 자유를 나의 개인적인 유익으로만 누렸던 경험이 있습니까?

2. 주안에서의 자유함으로 누군가를 종처럼 섬겼던 적이 있었는지요?

3. 오늘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내게 주시는 은혜와 도전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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