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사운드교회] 세상 헛된 부귀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내 생각

전문가 칼럼

[리사운드교회] 세상 헛된 부귀영화에 대한 변함없는 내 생각

오늘 예배 중 <구원으로 인도하는>(통 253정)이라는 찬송을 일어서서 불렀습니다.

그런데 <세상 헛된 부귀영화>라는 가사가 유독 묵상하게 하였습니다.


영어로는 Earthly Treasures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왜 헛된 것을 표현하면서  궂이 Earthly라는 표현을 사용하는지 의아하게 생각이 되었습니다.

Earthly의 반의어는 Godly라고 여겨집니다.


우리는 진정 그 세상의 보화를 헛된 것, 신기루 같은 것이라고 여깁니까.

우리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헛된 것이라고 하는 종교를 누가 선뜻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공산국가에서 종교를 특히 기독교를 아편이라고 하는데 일면 긍정이 되는 말이라고 여겨집니다.


우리가 이 땅에 발을 대고 살면서 이 땅의 부귀영화를 배설물로 여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러면서 왜 헛된 것이라고 하는지를 생각하는데 솔로몬의 그 유명한 고백이 연상되었습니다.

전도서 1장 2절(KRV)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솔로몬은 언제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까.

그의 인생이 드디어 막바지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을 때일 것입니다.

누가 무엇이라고 말하여도 자기가 살아보지 아니하면,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독특성입니다.


또한 자신이 경험한 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편화하려는 열심이 있는 것도 인간만의 독특성일 것입니다.


솔로몬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이 땅에서 최고의 것을 누리면서도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음을 드디어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지혜를 지혜롭게 사용하지 못한 자의 대표 같음이 느껴집니다.


뜬금없습니다만

솔로몬과 바울 중 누가 이 땅에서 더 성공한 사람, 즉 지혜롭게 산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도 한 때, 세상의 기준으로는 성공한 자였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인 가말리엘 학파였고, 로마 시민권을 가진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자였지만 그가 핍박하던 자를 <참으로> 만나고 나서는 그 전의 것을 <모두>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그의 삶에는 마흔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쫓겨남과 멸시, 보상받지 못하는 삶 등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좁은 길이라는 것을 바로 알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소위 서신을 쓰기 위해 옥에 갇히기까지 하였습니다.


솔로몬의 장례식은 화려하였지만, 바울은 장례식을 형장의 순교로 대신하였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생애는 세상을 다스리는 자 같았지만, 그 나라를 둘로 나뉘게 하는데 초석이 되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추구하던 세상은 이제까지도 왕성함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추구하던 것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내 속에 있는 염려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됩니다.

바울은 성령께 감동되어 고린도 후서 7장 10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회개에 이르게 하고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지성은 우리의 염려와 근심이 우리의 몸을 망가뜨리는 것임을 알면서도 그 일을 멈추지 못하는 한계성 속의 인간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성이라는 것은 우리 스스로 벗어날 수 없기에 또한 인간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최고의 지성을 누구라고 여기십니까.

제 소견에는 바울입니다.

그에게는 전투자의 모습이 느껴집니다.

자신과 끊임없이 싸우는 모습입니다.

그가 가장 잘 아는 것이 <육신의 한계>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계를 잘 알기에 다른 이의 한계를 알아주며 인정함에 인색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갇힌 감옥 속에서도 그 감옥이 자신의 사명을 가둘 수 없음을 세상에 알리는 데 열심이었음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부귀영화를 누리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하며 생을 마쳤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핍박자에서 전도자로 바뀌어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기쁨을 말하며 복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도 세상의 부귀영화가 헛되도다고 말한 솔로몬이 도무지 이해되지 아니하는 우리임을 부인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솔로몬이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고 말한 그 나이가 되어도 솔로몬처럼 말할 수 있는 지혜가 없는 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와 찬양, 경외, 존귀와 영광을 드립니다.

저희는 솔로몬처럼 지혜도, 저 바울처럼 세상 보화를 배설물로 여길 수도 없는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그러하지만

오늘도 저희를 포기하지 아니하시고 구원으로 인도하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허락하시어 우리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성도 되게 하시오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도 우리가 사는 이 하루가 아버지 하나님 나라에 더 가까이 가는 날 되길 간구하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0 Comments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