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혜칼럼] (91) (2002/3월) 나균용 목사의 모스크바와 모즈독 방문기

전문가 칼럼

[나은혜칼럼] (91) (2002/3월) 나균용 목사의 모스크바와 모즈독 방문기

  이번이 일곱 번째 여행인데 모스크바에는 일곱 번이 되지만, 체첸과 전쟁하고 있는 인접 도시인 모즈독에는 네 번째가 되었다. 갈 때마다 느끼는 것은 러시아가 무섭게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에는 생활필수품이 없어서 가게 앞에 장사진을 치고 기다리기도 했다지만, 이제는 대형 마켓이 등장하여 없는 물건이 없이 가득가득 진열해 놓았으며, 서울의 남대문 시장이나 동대문 시장보다도 무려 7배나 크다는 대형 시장이 있어서 별별 상품들이 싼값에 팔리고 있었다. 


  휘발유값은 전에는 미국 값의 절반 수준이었는데 IMF 차관을 얻어 쓴 후로는 값이 많이 올라서 미국과 거의 비슷한 값이 되었다. 그러나 모스크바에는 거리에 자동차들이 넘쳐나고 있어서 그 혼잡함은 서울보다도 더한 것 같으며, 여기저기에서 새로운 건축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과거 70년간 공산주의를 하면서 기독교를 탄압하고 교회의 문을 닫아버렸던 이 나라에 이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새롭게 전파되어 우리 개신교회들이 활발하게 자라나고 있는 모습을 볼 때에 참으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새롭게 목격하는 기쁨을 맛볼 수 있었다. 


러시아에서는 회교도들도 많이 있어서 기독교 선교를 방해하고 있지만 큰 위협은 되지 않는다. 오히려 러시아 정교회가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또 새로운 법을 정해서 개신교회 선교사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열어주신 복음의 문을 누가 감히 닫을 수 있겠는가? 


  러시아에 우리 한인 선교사님들이 많이 와서 일하고 계시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은 모스크바의 김바울 목사님과 모즈독의 이소영 목사님이시다. 김바울 목사님은 젊은 여대생들로 천사합창단을 만들어 이미 미국에도 여러 차례 방문하여서 우리에게도 매우 친숙한 분이다. 그 교회의 특징은 찬양단과 함께 주로 영관급 장교들의 성경공부반이 있다는 것이다.


  낮에는 러시아 목사님들을 가르치는 신학교를 운영하고, 저녁에는 현역 장교들이 부인들과 함께 와서 성경과 신학 강의를 받고 있다. 그 중에 장성으로 또 대령으로 제대하여 이미 목사 안수를 받은 분들도 여러 명이 있고, 앞으로 목사가 되겠다는 분들이 많다. 특히 북한에 선교사로 가겠다고 자청한 사람들도 여러 명이 있는 것은 여간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에게 강의하는 것은 러시아의 미래를 심는 기쁨과 보람을 안겨주고 있다. 김바울 목사님은 미국에 계신 목사님들이 많이 오셔서 강의를 맡아주시기를 바라고 있다. 나는 첫 주간을 모스크바의 목사님들과 장교들에게 강의를 하고, 다음 주간에는 모즈독에 갔다. 

  모즈독은 모스크바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쪽으로 2시간 반을 가서 흑해와 카스피해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 날칙이라는 공항에 내려서 또 자동차로 두 시간이나 더 들어가야 한다. 


옛날 스탈린이 통치하던 1936년에 연해주에 살고 있던 우리 한인들을 강제로 카작스탄으로 이주시켜서 농사도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에 버렸는데, 우리 한인들이 끈질기게 땅을 개간하고 물을 끌어들여서 마침내 농사에 성공하여 삶의 터전을 이루었다. 


그러다가 그 옆에 모즈독이라는 도시가 있는 카프카스라는 광활한 지역이 땅도 좋고 기후도 좋아서 농사하기에 아주 적합하다는 말을 듣고 한인들이 대거 이주해 와서 농사를 짓게 되었고, 이곳에 많은 한인들이 정착하게 되었다. 지금도 우리 한인들은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마침 이소영 목사님이 이 구석진 곳에까지 찾아오셔서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우리 한인들을 중심으로 그 지역의 30여 민족이 다 찾아와서 다달이 새로운 지교회를 세우게 되어 지금은 80여 개의 교회가 세워졌다. 


  이소영 목사님은 타코마중앙장로교회에서 은퇴하신 정남식 목사님과 신학교 동기 동창이신 70세의 원로 목사님이신데 노익장으로 이렇게 먼 곳에까지 오셔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계신다. 그분의 선교 지역의 크기도 남한의 절반 정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 되었고 교회들이 엄청나게 부흥되고 있고, 인근 각 지역에서 새로운 교회를 세워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모즈독에 있는 본 교회는 예배당이 약 700석인데 매 주일 보통 500명 정도는 모이고 있다. 이 교회에는 고려인들이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특히 청소년들이 많다고 하는 것이 매우 고무적인 특징이다. 이들의 율동과 찬양은 얼마나 아름답고 은혜로운지 모른다. 이 교회에서는 다섯 곳에 무료 병원을 설립하여 봉사하고 있고, 두 곳에서 신학교를 하여 약 100명의 신학생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서울에 있는 어느 교회에서 이곳의 신학생 두 명씩을 초청하여 3개월간 숙식을 제공하면서 교육을 시켰다가 돌려보내면 또 다른 사람 두 명이 가고, 이렇게 하여 벌써 30여 명이 다녀왔고 그래서 한국말을 제법 잘하는 청년들이 많이 있다. 이 교회는 인근에 있는 남자 교도소와 여자 교도소에도 매 토요일 정기적으로 가서 전도하고 있다. 이곳 선교팀이 가면 교도소의 죄수들을 큰 강당에 다 모으고 전도하도록 편의를 보아 주고 있다. 


  이 지역의 가장 큰 특징은 체첸과 인접해 있는 도시로 큰 군인 부대가 있고, 전쟁 피난민들이 많이 몰려와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선교사님들이 이곳 소문을 듣고 찾아오려고 하다가도 전쟁으로 인해 위험하다는 말을 듣고는 모두 발길을 돌려버려서 선교사가 오지 않는 지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체첸 사람들은 우리 한인들에게는 매우 호의적이어서 절대로 해치지 않는다고 한다. 


  스탈린이 연해주의 한인들을 강제로 카작스탄에 이주시킨 5년 후에 체첸 사람들을 또 강제로 그곳으로 이주시켰는데, 농사도 할 줄 모르고 생계가 막막하던 그들을 우리 한인들이 먹여주고 농사를 가르쳐 주면서 일을 시켜서 그 척박한 땅에서 살아남게 하였기에 이들이 후손들에게도 한인들은 자기들의 은인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에 지금 전쟁 중에도 그들은 한인들에게는 절대로 피해를 입히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체첸 전쟁이 발발했을 때에 미국과 서방의 기자들이 대거 몰려와서 호텔에 들어있다가 체첸 사람들에게 많이 피살되었는데, 이들이 모즈독 교회와 한인들의 가정으로 거처를 옮긴 다음에는 아무런 피해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 한국인들만이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칠 수 있지 않겠는가? (20년 전 이야기/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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