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을'이 '갑'을 선택하는 사회

전문가 칼럼

[민명기학원] '을'이 '갑'을 선택하는 사회

애독자께서 이 칼럼이 실린 신문을 집어 드시는 주말이면, 11일 1일 조기 전형 마감을 겨우 며칠 앞 둔 때이다. 대입 지원서 작성과 제출로 바쁜 고삼 학생들과 부모님들께 이것이 더 좋고, 아니면 되도록 이렇게 하는 것이 명문대 입시에 도움이 된다거나 하는 이미 대입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좀 늦은 도움말로 신경 쓰이는 정보를 드리기 보다는 원론적이고 근본적인 이야기로 대신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다.


     몇 주전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님께서 주일 예배 설교 중에 흥미 있는 말씀을 하셨다. 우리 지역인 페더럴 웨이에 본부를 둔 기독교 단체인 월드 미션이 세계 각국의 경제적으로 고난 받는 아동들을 지원하기 위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데, 후원자와 아동을 연결해 주는 방식이 독특하다는 소개였다. 즉, 후원자가 후원 대상 아동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후원을 받는 아동이 후원자를 선택하게 한다는 신선한 내용이었다. 


필자도 컴패션이라는 단체를 통해 두 아이째 거의 20년을 후원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지만, 후원 아동의 결정에는 구체적으로 말해 재정 지원을 하는 후원자, 즉 필자의 의견이 결정적이었음을 생각할 때, “흠, 이건 좀 색다르고, 피후원자인 아이들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성숙도가 있다면 정말 바람직하겠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주는 자가 아닌, 즉 갑이 아닌 을의 위치에 선택권을 준다는 것은 세상의 이치와는 전혀 다른 원리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예화의 목적은 기독교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신을 믿거나 믿지 않거나의 자유의지를 주셨다는 것으로 이어 진다. 원죄에 더해 매일 매일 실수와 잘못을 범하는 인간에게, 자신을 창조한 절대자가 피조물인 인간에게 그저 맹목적으로 나에게 복종하라가 아닌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는 것이다. 


가끔은 ‘그저 선천적으로, 환경적으로, 또는 맹목적으로 신의 의지를 받아드리도록 창조했으면 더 좋았었겠다’라는 아이같은 유치한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우리 인간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을 가능성이 많다는 회의적 시각에서 인간의 자유를 포기하고 싶은 때가 없지 않은 것이다.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것을 믿는다면, 적어도 인간과 신의 관계를 생각할 때는 그렇다는 말이다.


     이번 주 초에, 중국은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을 확정되었다. 이에 대한 항의로 베이징의 한 육교 위에서 한 시민(다리 위에서 항거해 ‘브릿지 맨’이라고 불림)이 반 시진핑 현수막을 설치하고 불을 피워 사람들의 시선을 끌며 시주석의 연임에 저항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내용은 “영수(시진핑을 개인 숭배하는 극존칭 칭호라고 함)를 원하지 않고 선거를 원한다,” “봉쇄를 원하지 않고 자유를 원한다” 등의 내용이 쓰여 있다고 각 언론은 전한다. 전체주의 국가에서 이러한 항거는 정치적, 경제적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외침과 다르지 않다. 


이를 본 떠, 상하이에서는 몇몇 젊은이들이 “원치 않는다, 원한다”라는 손팻말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는 모습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저항하는 구체적 내용은 빼고 쓴 이 문구는 중국 국민의 선택의 자유를 오히려 더 핵심적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계속적으로 더욱 광의의 의미로 중국민의 염원을 전하는 문구가 되어 중국 대륙의 저변으로 계속 확산될 것으로 기대된다. 


민주주의의 정신에서는 국민이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이 원리이며, 정치 지도자는 국민이 대신 맡긴 권리를 기반해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해 일하도록 위임 받은 자에 불과하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점점 신의 위치에 오르려 하면 어떤 결과에 도달할 지는 역사를 볼 때 분명하다. 진정한 신은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주었음을 망각하면 멸망에 이르는 것은 정한 이치여야 한다.


     이 내용은 엉뚱하게 필자의 직업 의식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이 되었다. 아니 그렇다면, “대학 입학도, 대학이 학생을 선별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하게 한다면 어떨까?’ 어차피 미국의 각 명문대학 사정에서, 지원자의 70% 중에서 누구를 뽑아도 별 문제가 없을 정도라는 것이 정설이다. 


즉 대부분이 학력과 경력에서 큰 차이가 없지만, 대학의 필요나 사정관들의 주관이 작용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이 지원자들이 4년간 고교 시절을 치열하게 보낸 (최선을 다 한 이 노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결과가 주관적인 선택에 의해 합/불합격으로 결정된다면, 모두가 받아들이기에는 그리 합리적인 절차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물론, 현행의 대입 절차에서 학생이 대학을 선택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각 대학의 정원이 정해져 있으니 모든 지원자를 합격시킬 수 없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어떤 해결책이 없을까?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숙제이다 (www.ewaybellev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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