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회계사] 팽창주의와 자유 5 (크리미아)

전문가 칼럼

[안상목회계사] 팽창주의와 자유 5 (크리미아)

2022년 8월, 젤렌스키는 “이 전쟁은 크리미아로써 시작되었고, 크리미아로써 끝날 것이다 (It began with Crimea, it will end with Crimea.)” 했다. 젤렌스키가 이렇게 말한 것은 2014년 푸틴의 크리미아 침탈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팽창주의의 역사를 생각하면 크리미아 반도의 역할은 1853년부터 시작되었다는 느낌을 준다. 


1853년에 러시아 황제가 일으킨 크리미아 전쟁은 적어도 세 사람을 세계적인 명사로 만들어주었다. 제1은 최초의 간호학교를 창설한 나이팅게일(1820-1910)이다. 제2는 작가 톨스토이(1828-1910)다. 세바스토폴 포위(1854-1855) 동안 톨스토이는 러시아군 장교로 그 포위망 속에서 근무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쓴 3개의 단편소설을 Sebastopol Sketches 라는 책으로 발표하여 그의 이름을 세계에 알렸다. 제3은 칼 마르크스(1818-1883)다. 


전쟁이 터지기 6개월 전부터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미국의 뉴욕매일호민(New York Daily Tribune) 신문에 칼럼 자리를 얻고, 그 후 2년동안 총 26개의 크리미아 전쟁 관계 칼럼을 기고했다. 마르크스의 눈에는 유럽의 5대 강국(오스트리아, 프러시아, 영국, 프랑스, 러시아)은 하나하나가 죄악의 덩어리였고 그 중 최악은 러시아였다. 그 당시 러시아 황제가 지속적으로 팽창주의를 실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리미아 전쟁(1853-1856)은 러시아 황제 니콜라스 1세가 종교적 이유를 내세워 시작한 전쟁이다. 이슬람 제국 오토만 터키는 팔레스타인 거주 기독교인들을 이슬람교인들보다 하급 백성으로 대우하는 것을 문제 삼아, 러시아 황제는 루마니아, 불가리아 지역의 오토만 터키 영토를 침범해 들어갔다. 니콜라스 1세는 같은 기독교 세력이 자기 편을 들 것으로 예상했으나, 프러시아와 오트르리아는 구경만 하고 영국과 프랑스은 오히려 오토만 터키 편을 들었다.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팽창주의였기 때문이다. 연합군은 러시아 군대의 근거지 크리미아 반도로 진격했고, 그 곳의 제1도시 세바스토폴의 포위전이 오래 계속되었기 때문에 그 전쟁 전체를 크리미아 전쟁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니콜라스 1세는 1855년에 죽었고, 패전의 마무리는 그의 아들 알렉산더 2세가 맡게 되었다. 크리미아 전쟁의 결과, 러시아군은 더이상 흑해 연안에서 활동하지 못하도록 결정되었다. 이후 러시아의 팽창주의 압력은 극동으로 밀려갔다. 그 압력은 알렉산더 2세의 손자 니콜라스 2세의 시대에 가서 러일전쟁을 만들고, 패전했다. 그 일을 계기로 러시아 혁명이 시작되었다. 니콜라스 2세는 그래도 반성하지 않고 1차대전에 끼어들고, 패전했다. 그 일로 러시아 혁명이 완성되고 왕조는 멸망했다. 


혁명 이후 5년 동안 주교 28명과 신부 1,200명이 처형되었다 한다. 1918년의 러시아 헌법 2개 조를 보면 그렇게 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인다. 우선, 제13조(신앙의 자유)는 다음과 같다.


“For the purpose of securing to the toilers real freedom of conscience, the church is to be separated from the state and the school from the church, and the right of religious and anti-religious propaganda is accorded to every citizen. 


노동자들에게 진정한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교회는 국가로부터 분리되고 학교는 교회로부터 분리되고 종교적 선전의 권리와 반종교적 선전의 권리는 모든 시민에게 허용된다.”


인용문에서 주목해둘 곳은 줄친 부분이다. 다음, 제14조(언론의자유)를 본다. 


“For the purpose of securing the freedom of expression to the toiling masses, the Russian Socialist Federated Soviet Republic abolishes all dependence of the press upon capital, and turns over to the working people and the poorest peasantry all technical and

material means of publication of newspapers, pamphlets, books, etc., and guarantees

their free circulation throughout the country. 


노동 대중에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러시아 사회주의 연방 소비에트 공화국은 언론기관이 자본에 의존하는 것을 모두 폐지하는 한편, 신문, 팜플렛, 서적 기타의 출판을 위한 모든 기술적, 물질적 수단을 노동자들과 최빈 농민들에게 돌려주고 그것들의 자유로운 전국적 배급을 보증한다.”


언론의 자유를 노동자와 농민에게만 부여했으므로, 종교적 선전과 반종교적 선전 중 현실적으로 가능한 쪽은 위에 밑줄친 반종교적 선전 뿐이었다. “공평한 결투”를 보장한 다음 한 쪽은 손발을 묶어버린 것과 같다. 그러나, 1993년의 새 헌법에 의하여 저 헌법은 소멸되었다. 그에 따라, 러시아 정교가 소생하여 크리미아 전쟁 직전의 종교적 이념이 다시 고개를 들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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