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벤츠(Benz) 세단과 티코(Tico) 경차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벤츠(Benz) 세단과 티코(Tico) 경차

시어머니를 모시고 공무원 남편과 근근이 살고 있는 50대 후반의 가정주부가 있다. 시어머니는 팔순이 넘으셨다. 대개의 노인처럼 귀가 어둡다. 하루는 시어머니를 티코(Tico)차로 모시고 자주 가시는 노인정에 마실을 갔다. 여러 명의 노인과  시어머니가 싫어하는 약국집 할머니도 와 있었다. 왜 싫어하는가 하면 아들, 딸, 남편 심지어 손주 자랑을 시도 때도 없이 하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제 식구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을 팔불출(八不出)이라 하는데 약국 할머니는 팔불출에 속하고도 남을 것이다. 


약국집 할머니는 시어머니보다 나이가 몇 살 위이며 시어머니처럼 귀가 어두웠다. 그녀는 오늘도 자기 아들 자랑을 늘어놓았다. 


"아이고! 우리 아들이 '벤츠 세단'을 샀는디 윤이 자르르 흐르는 게 얼메나 좋은지 몰~러~~손녀도 즈이 에비 벤츠 세단을 타고 다녀!~“


하지만 귀가 어두운 시어머니는 그 말을 듣고 "어휴~! 저 할망구는 별 것도 아닌 걸 가지고 맨날 자랑이여!~ 인제는 허다허다 안 되니껜 '배추 세단' 산 것 가지구 손녀까지 자랑을 하고 야단이어!“


약국집 할머니도 귀가 어두운 관계로 시어머니가 벤츠 세단을 배추 세단으로 잘못 말한 줄을 모르고 

"암~ 만~ 좋은 게니께 자랑을 허지~ 그 벤츠 세단 그게 얼메나 비싼 줄 알어? 값이 자그만치 1억도 넘는데 1억! 1억 말이어?“


"아이고~~1억? 그까짓 배추가 좋아봤자 그게 배추지! 뭐 배추에 다이아 보석이라도 수십 개 박아 놓았단 말이여?" 


이렇게 어머니와 약국집 할머니는 서로 안 지려고 티격태격 떠들고 있었다. 


귀가 어두운 사람들끼리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 외제 고급 벤츠 승용차가 배추로 잘못 들리어 듣기에 갑갑하였다. 


공무원 남편의 박봉으로 대학생과 고교생 셋이나 가르치느라 경제적으로 여간 힘이 드는 게 아니다. 남편은 기름이 많이 드는 현대 쏘나타를 할 수 없이 팔았다. 그리고 기름이 1/3도 안 드는 경차 티코(Tico) 중고차를 단돈 50만 원($550)의 헐값에 샀다. 이 티코 경차는 흔들리고 까부는 것 외 흠잡을 게 하나도 없다. 


오늘도 출근한 남편 직장에 가서 티코를 몰고 볼 일이 있어 시내에 가는 중이었다. 우연히 새까만 윤이 자르르 흐르는 고급 벤츠 세단을 몰고 가는 30대 초반의 아가씨와 나란히 가게 되었다. 수많은 차의 운전기사가 이 고급 벤츠 세단과 장난감과 같은 티코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주위에서 집중되는 시선이 피부로 느껴졌다.


마침 신호가 걸려 두 차가 나란히 섰다. 벤츠를 모는 여인이 껌을 짝짝 씹으며 거만한 태도로 차 윈도우(유리)를 내리고 몸을 숙여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아주머니! 아주머니!”를 부르더니 

“그 티코차 얼마 주고 사셨어요?” 

티코를 모는 아주머니를 깔보는 듯한 새파랗게 젊은 여자가 보기 싫어 대답을 일부러 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이유도 없었다.


이윽고 신호가 바뀌어 차가 전진해 갔다. 두 번째 신호등에서 차가 멈췄다. 


그 젊은 여인은 껌을 계속 씹어대며 윈도우를 내리고 빤히 나를 쳐다보며 멸시하는 태도로 

“아주머니! 아주머니! 그 티코차 얼마 주고 사셨어요?”

아까와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녀는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신호등이 바뀌고 차들은 움직였다. 여전히 옆에서 두 차는 나란히 달려갔다. 또 얼마를 달리다가 세 번째 신호등에서 차가 멈췄다. 이번에도 녹음기처럼 똑같은 질문을 하는 게 아닌가!

“아가씨 무슨 말을 듣고 싶어?” 

참다못해 한마디 했다.


1억짜리 벤츠 세단을 타고 다니는 교만한 여자가 500만 원짜리 티코차를 타고 있는 아주머니를 얕잡아 보는 듯해서 화가 났다. 그래서 이 젊은 아가씨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말이 어떤 것인지 신호등이 세 번씩이나 바뀔 때마다 곰곰이 생각해 두었다. 


“응! 이 티코차 얼마 주고 샀느냐고? 그렇게 궁금해서 몇 번이나 묻는 거야? 아가씨! 독일 벤츠 본사에다 1억2,000만원 최신형차를 오더 해서 고급 벤츠 세단을 1대 뽑았는데 티코차 1대를 덤으로 거저 주더라! 


벤츠는 우리 집 양반이 타고 난 지금 소나타를 몰고 있지! 그런데 이 티코를 공무원 남편 친구에게 공짜로 주려고 지금 몰고 가는 중이다. 야! 인제 됐냐? 됐어?“ 

이렇게 말을 하고 나니 가슴이 후련해졌다. 


그 교만한 젊은 여자는 코가 납작해져서 아무 말도 못했다.  

공무원 박봉으로 아들 교육을 하기가 버거워 남들이 타지 않는 장난감 티코를 타는 것도 서러운데 벤츠 세단을 탔다고 교만해서 남의 인격을 무시하는 처사에 복수를 하니 통쾌했다. 


어떻게 해서 그 젊은 여자가 이런 고급 벤츠 세단을 몰고 다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눈앞에 여간해서 보기 힘든 장난감으로 보이는 티코가 나타나자 그냥 주어도 가져갈 사람이 없는 차를 타고 있는 아주머니를 무시하려고 몇 번씩이나 값을 물어보지 않았을까.


혹시 그 여자가 약국집 할머니의 손녀가 아닌지? 노인정에서 약국집 할머니가 아들 자랑을 할 때 “우리 손녀도 즈이 에비 벤츠 세단을 타고 다녀~”란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극(極)에서 극(極)! 억(億)대의 벤츠(Benz)와 500만 원대의 티코(Tico)! 할 수 없이 티코를 타야 하는 아주머니는 교만해서 우쭐대며 벤츠를 타고 있는 딸 같은 여자에게 자존심이 상하였다. 하지만 벤츠를 사고 덤으로 티코를 거저 얻었다고 하는 말이 어떻게 나왔는지 생각할수록 통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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