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추수감사절에 감사하기

전문가 칼럼

[민명기학원] 추수감사절에 감사하기

지난주에 아내가 한국을 방문했다. 바쁜 연구소 일정 중에서도 한국의 연로하신 어머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에 만사를 제쳐 놓고 한국행을 감행했다. 아내가 없는 집은 이제 아이들도 다 장성하여 집을 떠나니 참 쓸쓸하다. 교회의 성도님들이 아니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면, “아이구, 편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혼자 있는 것도 가끔 할만한 일이네요”라며 속에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주말에 혼자 있는 집은 을씨년스럽고 휑하니, 오히려 집 안 청소나 정원의 낙엽을 모아 치우는 등 집안일을 만들어 외로움을 달랜다. 일을 하다 보니, 시장기가 느껴진다. 


마침 아내가 만들어 놓고 간 우거짓국도 다 떨어진지라 가끔 들르는 한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혼자 김치찌개를 주문하고 기다리노라니, 아내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진다. 우리네 나이쯤 된 분들이 추수감사절 근처에 오면 모두 느끼는 일이지만, 그동안 이 자리를 채워 준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온다.


혼자 저녁을 먹느라 마침 손님이 별로 없어 4명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통째로 차지하고 앉아 멍하니 텔레비전에 눈길을 주다가 옛 생각이 스친다. 삼십 년쯤 전 시애틀로 이사 오기 전에 주위에 한국 식당이 없던 중부에서 대학원을 다녔던지라, 서북미에 와서 가장 좋았던 것 중의 하나는 가까운 거리에 한국 그로서리와 음식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시애틀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처음으로 방문한 한국 식당에서 출석하던 교회의 장로님 부부를 우연히 뵈었다. 두 분이 여유롭게 식사를 하시며 약속하고 만난 것도 아니고 다른 자리에서 아이와 함께 먹은 우리 가족의 식사대를 눈치채지 못하게 지불해 주신 뒤, 그저 “맛있게 많이 들어요, 저희는 먼저 나갑니다” 하시며 총총히 나가신다. 


그때만 해도 가난한 유학생 부부이던 시절이라 식당에서 마음 편히 비싼 한식을 먹는 것이 그리 자유롭지 않았는데, 공짜밥을 먹고 난 뒤 얼마나 고마웠던지 아직도 기억이 새롭다. 나중에 안 이야기이지만, 그 장로님 부부께서는 자녀들이 다 동부로 공부하러 나간 뒤부터는 일주일에 두, 세 번은 거의 외식을 하신다는 거였다. 얼마나 부러웠던지. 상황의 여유가 부러웠고, 남들을 배려하시는 마음이 얼마나 존경스러웠던지.


이제는 한 주에 밥 한 끼 정도는 외식을 할 수도 있는 나이와 상황이 되었는가 했는데, 식당에서 우연히 만나는 청년이나 후배들 또는 어른들에게 식사대접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깨닫고 이유 있는 자책을 한 적이 많다.


 받은 것을 다른 분에게나마 갚는다는 의미에서라도, 다음에는 꼭 아는 어르신을 만나면 식사를 대접해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그다음이라는 것은 꼭 자연스레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 팬데믹의 말미에 깨닫는다. 


지금은 동부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이 추수감사절이나 크리스마스 명절에 시애틀을 방문할 때면, 그곳에서 잘 못 먹는 한국 음식들을 자주 사 먹이려 노력한다. 그래서인지, 작년엔가 고향을 방문한 아들 녀석이 한 시애틀의 보물 이야기는 의미심장했다.


 이 보물은 삶에 힘을 주는 음식들인데, 다른 어느 도시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귀한 보물과 같은 시애틀 음식이란다. 물론 다른 도시를 방문한 경험이 많지 않은 아이라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재미 있어 여기 나눈다. 먼저 한가지 보물은 필자도 좋아해 가끔 들리는 북쪽의 어느 식당에서 만드는 ‘보쌈’이란다. 자신이 사는 보스턴에서도 친구들과 보쌈을 먹어보았지만, 이곳과는 비교가 안 되는데, 특히 ‘무우 생채 무침’이 일미라는 이야기였다. 


다음의 귀한 음식은 오로라 거리의 어느 ‘베트남 쌀국수’인데, 이 녀석 이곳에서 차로 10분 이내 거리에 있는 사립 고등학교를 다닐 때도, 시니어 때는 수업 사이에 이곳에서 점심을 먹은 적도 몇 번 있을 정도로 즐겼다 한다. 특히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크림 팝은 정말 별미라고 너스레를 떤다. 


또 다른 보물은 우리 식구가 모두 좋아하는 것으로 지금은 연로하신 파티쉐께서 은퇴하셔서 문을 닫은 오로라의 ‘로얄 베이커리’에서 만든 ‘모카롤 케이크’이다. 이 녀석 이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빠 혹시 그분을 아세요, 어디로 가셨는지? 제가 그분을 만나서 꼭 그 케이크의 레시피를 배우고 싶어요.” 존경하는 위인에 대해 이야기할 때의 그 눈빛으로, 다른 많은 한국 음식점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이야기는 음식에 관한 것이지만, 속 내용은 음식을 만들고 서빙하시는 분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으로 가득 채워져 있음을 느낀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모두 힘내시라! 이렇듯 여러분의 수고로 인해 행복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즐기며 살아가는 많은 인생들이 있으니 한인 동포 자녀들의 교육에도 큰일을 하고 계신다는 자부심으로 조금만 더 고생하시면, 이 어려운 시기도 없었던 듯 지나가지 않겠는가? (www.ewaybellev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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