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명기학원] 중국의 ‘백지혁명’, ‘백지수표’가 되길

전문가 칼럼

[민명기학원] 중국의 ‘백지혁명’, ‘백지수표’가 되길

매일 아침 일어나 비몽사몽간에 하는 첫번째 행동 중의 하나가 이메일을 확인하는 것이 된 것은 그리 달갑지 않지만 거의 굳어진 일상의 습관이 되었다. 


뭐 그리 내세울 만큼 독실하지는 않지만 크리스천인 필자가 그것을 그리 마땅치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잠에서 깨어나 (또는 거창하게 표현하자면, 죽음과도 같은 잠에서 깨어나 부활한 후에) 하는 첫 행위가 다시 살아나 삶을 계속하게 해 주신 이에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거나 묵상하는 일이 아니라, 아무 생각없이 다시 세상사의 얄팍한 정보/지식 획득에 나 자신을 바친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칼럼의 애독자 여러분께서도 한 번 되새기실만한 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메일 중에 매일 규칙적으로 받는 것들이 있는데, 몇가지만 들자면, ‘word of the day (dictionary.com),’ ‘The Morning (New York Times),’ 그리고 ‘Richard Rohr Daily Meditation (Center for Action and Contemplation)’ 등등이 있다. 


대부분 무료로 받아 보는 일일 정보들인데, 요긴한 것들이 많으니 한 번 확인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글을 쓰는 11월의 마지막 날, 위의 뉴욕 타임즈 인터넷 기사는 세계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인 중국의 전역에서 아주 드문 공개적 시위 사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지난 22일 중국 신장의 우루무치에서 제로 코로나 봉쇄로 인해 10여명이 화재로 사망하면서 촉발된 이 소요 사태는 전국적으로 번지며, 코로나 정책에 대한 항거에서 중국의 전제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분노로 키워지고 있다고 한다. 이 기사에서 관심을 끄는 것들 중의 하나는 이 공개적인 항의에 참가한 젊은이들이 아무런 내용이 적혀 있지 않은 백지를 들고 자신들의 주장을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웍에서는 “A4Revolution”과 같은 해시태그를 붙이는데, 여기에서 A4는 우리가 A4 용지라고 부르는 백지를 의미한다. ‘백지 혁명,’ 탄압과 검열 때문에 공개적으로 이유를 쓰고 말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당신들의 처사에 항거한다는 의미로 읽힌다.


이 ‘백지’라는 표현은 필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우리네 일상에서 여러 가지 다른 의미로 사용된 흔한 예들을 불러낸다. 이 칼럼이 교육 칼럼이니만큼 먼저 교육과 관련된 표현들을 살펴 본다. 교육 현장에서 가끔 복장 터지게 듣게 되는 “이번 시험에서 ‘백지’를 냈어요”라고 할 때는 시험이 너무 어려워한 문제도 답을 못하고 백지를 냈다는 의미이다. 


어린아이들이 가끔은 자랑스럽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펴며 하는 이 말은 부모님들의 억장을 무너지게 한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면, 하기 싫은 공부를 강요하는 부모님에 대한 항거로 자신이 공부에 맞지 않음을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백지를 내 시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자신은 공부보다 노래가 좋은데 부모님이 허락을 안 하시자 중요한 시험에서 백지를 내며 자신의 의사를 표했다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또 다른 교육 현장의 ‘백지’라는 표현은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나며, 교육과 경험으로 자신의 인생 그림을 그려 나가는 것”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존 로크와 같은 경험주의 철학자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이것의 라틴어 어구가 더 익숙하신 분들이 있으실 것이다. 


바로 ‘tabula rasa (blank slate, 빈 칠판, 잘 닦여진 서판)’이다. 즉 인생은 이렇듯 새롭게 잘 닦여 있는 칠판 위에 인간의 오감을 통해 받아들이고 이해한 내용들을 써 내려가는 것과 같다는 의미이다. 


장 자크 루소가 말한 “noble savage, 고상한 야만인’이라는 표현도 위의 관점과 상통하여 문명이나 교육 이전의 인간의 상태는 때 묻지 않은 야만인/자연인과 같다는 의미이다.


예술에서도 ‘백지’라는 표현이 사용된 경우들이 있는데, 1951년에 로버트 로샌버그라는 추상 표현주의 계열의 화가가 전 캔버스를 흰색으로 칠해 전시하며 이것을 “white paintings’라고 불렀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현대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이 그림들의 이면에 표현된 화가의 목적은 “전적으로 순진무구하며 완성된 형태로 세상에 나온 것처럼,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은 그림을 그리려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그림 위에 다른 그림을 그리도록 의도되었다고 하니, 위의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난다’는 표현과도 통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 아이들이 백지상태로 태어났다면, 그들이 자신만의 아름다운 그림들을 그려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네 부모들의 역할이리라. 마치 아이들에게 ‘백지수표’를 주고 그들의 삶의 액수를 그 수표 위에 적어 가라는 것과도 일맥상통하지 않겠는가? 중국 정부도 그 젊은이들이 들고 있는 백지들 위에 그들 자신의 소망과 인생을 써 내려가도록 허락하기를 소망해 본다.  (www.ewyabellev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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