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칼럼] 자선냄비의 가냘픈 종소리

전문가 칼럼

[동열모칼럼] 자선냄비의 가냘픈 종소리

해마다 12월에 들어서면 시내의 번화가에서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가 들려 세모의 분위기를 숙연하게 합니다. 저 종소리는 여느 종소리처럼 웅장하지 않고 가냘프기만 하기에 오히려 절실한 메시지를 전해줍니다.    


거룩한 성탄절을 앞두고 들려오는 저 가냘픈 종소리는 우리들에게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이웃에는 건강을 잃고 고통받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영원히 먼저 보내고 슬픔에 잠기거나, 혼자 외롭게 여생을 보내는 독거노인들이 적지 않다고 저 종소리는 알려줍니다. 


저 불우한 이웃을 위해 우리 모두가 이 세모에 자그마한 온정을 모인다면 저 어려운 분들에게는 크나큰 위로가 되어 용기를 준다고 저 자선냄비 종소리가 암시해 줍니다.   


가냘픈 저 종소리는 또한 저의 부족한 믿음을 스스로 성찰하게 하며, 아득한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손을 잡고 주일학교에 다니던 추억을 더듬게 합니다. 저의 어린 시절에는 교회를 예배당이라 불렀고, 성탄절을 구주탄일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구주탄일이라고 하던 그 시절의 분위기는 성탄절이라고 부르는 오늘날과는 현격한 차이를 느낍니다. 구주탄일 시절은 가난했기 때문인지 화려한 장식은 못하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에서 성스러운 그날(12월 25일)을 조용히 기다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탄절은 거룩한 성탄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고, 오직 사치스럽고 들뜬 분위기만 느끼게 합니다. 어른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고르기에 바쁘고, 가족끼리의 파티 준비에 여념이 없는데 꼬마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꾸러미에 눈독을 들이고, 젊은이들은 연인끼리 환락가에 몰려서 밤새워 먹고 마시며 춤추는 것이 관례가 된 듯싶습니다.  

   

저 자선냄비 종소리는 또한 한 해를 영원히 보내는 세모의 쓸쓸한 분위기를 더욱 짙게 하며,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드리는 심정에서 주변을 성찰하게 합니다. 가진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이 부족한 늙은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처신해야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며, 자그마한 보람이라도 느끼면서 여상을 살아갈지 진지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이 간절한 소망에 대해 저 종소리는 주옥같은 교훈을 암시해 줍니다. 

 

우선 욕심부터 버리라고 합니다. 사람은 본시 늙을수록 심신은 쇠약해지기 마련인데 유독 욕심만은 오히려 심해진다고 해서 이를 노욕(老慾)이라 하고, 노욕이 심해지면 추하게 된다고 이를 노추(老醜)라고 하며, 이러한 노욕 때문에 노인들이 자주 사기당한다고 저 종소리가 경고합니다.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면 겸손해지고, 겸손하면 범사에 감사하고, 모는 일이 긍정적으로 보인다고 저 종소리는 속삭입니다.  


긍정적 노인은 항상 즐거운 마음이 생겨 표정도 맑아져서 남에게 호감을 주기 때문에 친구도 많이 생겨 사회활동이 활발하게 되니 건강도 따라오게 된다고 합니다. 긍정적 노인은 젊은 세대와도 잘 어울리게 되어 시대 감각도 예민해져서 아무리 늙어도 생기가 넘친다고 저 종소리가 암시해 줍니다.   

             

저 가냘픈 자선냄비 종소리는 또한 우리 노인들이 살아온 20세기의 험난한 세월도 되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20세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100년이라고 합니다. 20세기에는 전란이 연속적으로 발생했는데, 그 전란은 지정학적 요충지인 우리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났으니 애꿎은 우리 민족이 모진 고초를 겪었던 것입니다.  

 

그 전란 중에서도 6.25전쟁은 우리 국토를 초토화시켰으니 우리는 항상 생사의 기로에서 헤맸던 것입니다. 우리 늙은 세대는 이러한 극한상황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을 창출해 오늘의 경제대국을 만들어낸 자부심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어려웠던 시절을 되돌아보니 그 시절이 부끄럽거나 원망스럽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운 추억으로 그리워지며 짙은 향수를 느끼게 되니 저 가냘픈 자선냄비 종소리가 더욱 가슴을 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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