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열모칼럼] 세모(歲暮)의 명상

전문가 칼럼

[동열모칼럼] 세모(歲暮)의 명상

2022년을 영원히 보내는 이 세모의 깊은 밤은 세월의 빠른 속도를 실감하며 쓸쓸하고 고독감을 부추겨 명상에 잠기게 합니다. 삼라만상이 깊이 잠든 이 고요한 밤은 늙어가는 우리 8.15세대에게 태고의 신비를 느끼게 하며, 숙연한 마음에서 두 손을 마주 잡고 기도드리는 심정에서 주변을 성찰하게 합니다.  


조용히 묵상하는 과정에서 오늘까지 살아온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품위를 잃지 않고 자그마한 보람이라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을는지 깊이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8.15세대가 태어나 성장한 지난 20세기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100년이었습니다. 두 번이나 일어난 세계대전도 20세기였고 볼쉐비키 혁명이 일어나 소련 공산당이 생긴 시기도 20세기였으며, 그 소련이 피비린내 나는 계급투쟁 하다가 자기모순에 빠져 멸망하고, 러시아로 바뀐 것도 20세기였습니다. 나라를 일본에 빼앗긴 것도 20세기였고, 빼앗긴 나라를 되찾은 것도 20세기였습니다.


20세기에는 크고 작은 전쟁도 잦았는데 그 전쟁의 대부분이 지정학적 요충지인 우리 한반도 주변에서 일어났으니 애꿎은 우리 민족이 모진 고난을 겪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서로 대립한 동서 냉전이 우리 한반도를 38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놓고서는 6.25전쟁이라는 열전으로 번져 우리 8.15세대는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 살아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연유에서 우리 8.15세대가 살아온 길은 탄탄대로가 아닌 험난한 가시밭 길 뿐이었습니다. 이렇게 가시밭길만 걸어왔기 때문에 우리 8.15세대는 노후대책도 마련하지 못해 현재의 생활 형편은 대체로 넉넉하지 못한 실정입니다.  


그러면서도 지난날의 그 험난한 가시밭길을 이 세모에 되돌아보니 웬일인지 그 시절이 원망스럽거나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아름다운 추억이 되어 그리워집니다. 그 험난한 가시밭길에서 소중한 삶의 지혜도 터득했으니 그 세월이 오히려 고맙기만 합니다. 


이러한 삶의 지혜를 터득했기에 우리 8.15세대는 노후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스스로 행복을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도 명상하는 과정에서 새삼 깨닫게 됩니다.  


거룩한 성탄절을 맞이한 이 세모는 구세군의 자선냄비 종소리를 연상하게 합니다. 세모의 자선냄비 종소리는 본시 여느 종소리처럼 웅장하지 않고 가냘프기만 하기에 오히려 절실한 메시지를 전해주며 불우한 이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이웃에는 건강을 잃고 고통받거나,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기도 하고, 사랑하는 가족을 영원히 먼저 보내고 슬픔에 잠기거나 혼자 외롭게 여생을 보내는 독거노인들이 적지 않다고 저 종소리는 알려줍니다. 저 불우한 이웃을 위해서 우리 모두가 이 세모에 자그마한 온정을 모인다면 저 어려운 분들에게는 크나큰 위로가 되어 용기를 준다고 저 자선냄비 종소리가 암시해 줍니다.   


저 가냘픈 종소리는 또한 부족한 저의 믿음을 성찰하게 하며, 아득한 옛날 어머니의 손을 잡고 주일학교에 다니던 어린 시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 시절에는 “교회”를 “예배당”이라 불렀고, “성탄절”을 “구주탄일”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구주탄일”이라고 하던 그 시절의 분위기는 “성탄절”이라고 부르는 오늘날과는 현격한 차이를 느낍니다.   


“구주탄일” 시절에는 가난했기 때문인지 화려한 장식은 보이지 않으면서도 경건한 분위기에서 성스러운 그 날(12월 25일)을 조용히 기다리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탄절”에는 지난날의 “구주탄일” 시절과는 달리 거룩한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고 오직 사치스럽고 들뜬 분위기만 느끼게 합니다. 어른들은 크리스마스 선물과 파티의 준비에 여념이 없고, 어린이들은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쌓인 선물 꾸러미에 눈독을 들이고, 젊은이들은 연인끼리 환락가에 몰려들어 밤새워 먹고 마시며 춤추는 것이 관례가 된 듯싶습니다. 


이제 올해도 저물어 곧 새해를 맞이해 또 한 살 먹는다고 생각하니 저 자신을 다시금 성찰하게 됩니다. 어느새 평균수명을 아득히 넘어 보너스 인생을 살고 있는 현실에서 오늘의 이 100세 시대가 과연 축복이 될는지 불행이 될는지 이 세모에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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