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크리스마스 선물(1)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크리스마스 선물(1)

누구에게나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인생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나 상황 또는 사건 등이 있는데 그 인생의 중심이 되는 사건 또는 사람은 은 살면서 힘들어 지쳐가는 시간을 가질 때나 아니면 매일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비척거릴 때 우리를 또는 나를 다시금 정신 차리게 해주고 다시금 우뚝 서게 해주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내가 우리 프로그램에서 일한 지가 2004년부터니까 거의 20년이 가까이 온다. 

중간에 너무 힘들어서 한해를 일탈했었다.


사무실 일이, 아니 이들을 만나는 게 너무 힘이 들어 노인복지 쪽으로 일터를 바꾸어 보고자 할 때쯤에 린우드에 있는 저소득층 노인 아파트에서 그야말로 파격적인 제안을 해왔다.


레지나,

레지나가 일할 시간을 정하고 레지나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여기에 살고있는 노인들의 복지를 도와줘?

물론 내게 제시하는 월급도 그때 내가 받고 있는 셀러리에 비하면 훨씬 더 많이 주면서 그래서 지쳐있던 내가 간 곳이 이곳이었다.


크리스천 베이스의 저소득층 노인 아파트 이곳에 프로그램 매니저로 이직을 하게 되면서 이곳 시니어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분들에게 쿠킹교실을 하고 재미있는 운동시간도 만들고 아웃팅도 마련해주며 아주 즐겁게 일하고 있는데 내가 이곳으로 옮겨온 지  6개월쯤 지나면서 우리 전 회사 사무실에서 연락이 오기를 시작했었다.


레지나, 쉴 만큼 쉬었으면 다시 오기를 바라?

그리고 네가 있는 것 하고 네가 없는 것하고 일하는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가능하다면 다시 와주기를 부탁해? 


그때부터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이곳에 머무르면서 이분들과 매일 재미있고 즐겁게 지내는 것이 좋은가? 아니면 다시 옛 사무실로 복귀를 해야 하는지?

시간을 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곳으로 온 지 8개월이 되면서 내 마음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시 가야 하지 않을까?


여기는 내가 아니라도 누군가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이고 나의 옛 직장은 엑스퍼(전문가)가 필요하다. 

그쪽으로 오래 근무했던 이들의 경험과 네트워크 그리고 노하우가 그리고 덧붙이면 관심과 사랑의 마음이 필요한 곳이다. 라는 생각에 머물면서 거의 매일 꿈속에서 나의 옛 직장으로 다시 복귀하려는 꿈을 꾸었다.


그리고 정확히 일 년 뒤 나는 다시 나의 옛 직장으로 복귀했다.

내가 일하던 직급에서 두 단계를 뛰어넘는 조건이 붙어있어서 더욱 감사했다.


바라던 것은 아니지만 바래도 되는 것이었기에 미국 직장생활에서 자기의 가치를 대접받으려면 때로는 이직하면서 자기의 벨류를 올리는 것도 필요하다.

물론 나는 나의 밸류를 높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고 그곳에서의 일들이 나를 너무 지쳐버리게 해버려서 잠시 떠나온 것이었었다.


우리는 매일 매일 정신줄 놓고 다니며 약물에 취해 자기 몸들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그 사람들이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자료 그리고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이들을 세워 보려고 하지만 이 일들은 본인들의 의지가 반영되어야 그야말로 성공할 수가 있는 것인데 대부분 이들은 힘든 삶 속에서 잠깐 일어섰다가도 세상과의 타협에 다시 흔들려 좌초되며 마치 풍랑이 무섭고 거친 바다에서 겨우 키를 잡은 배가 거센 파도에 또다시 침몰당하는 삶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과 함께 매일 매일 같은 생활을 하다 보면 정신도 마음도 지쳐버릴 때가 많아서 어느 순간에는 어디론가 도망가 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러면 왜 직장을 옮기지? 라는 생각도 많이 해보았다. 


내가 갖고 있는 경력과 배경으로는 얼마든지 좀 더 편하고 쉬운 일이 기다리고 있기도 하다.

오랫동안 같은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 네트워크로 엮인 친구나 동료들이 많아서 이들이 옮겨간 직장이 훨씬 일하기가 편하니 이직 해오라며 프러포즈를 해오는 친구들도 많이 있다.


물론 여기에는 내가 한국인이 갖고 있는 끈기와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나의 성격도 한몫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정적인 사람이라 감성적인 면이 스트롱하니 우리 직장의 상황에서 헤매고 있는 상처받은 고객들에게는 언니, 누나 같은 심정이 되기도 해서 내게 속해있는 그리고 내케이스로드가 아니더라도 나하고 관계가 있는 고객들은 나의 프로그램으로 오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는 나는 빅시스터가 되기도 한다.


물론 사무실에서는 내가 이들에게 절대로 빅 시스터라고 부르지 말라고 한다.

밖에서 지나가다 볼 때 이들이 나를 어떻게 부르던 그것은 자기들 마음이니까!

우리들의 고객들은 어떤 이유에서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다.


정신질환으로 인하여 어렵게 사는 가족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기도 하고 또는 깊은 상처로 시작된 약물중독에 의하여 스스로 세상으로 뛰쳐나와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니다 기억도 없어져 버리고 매일 매일 취해있는 상태로 살다가 점점 바보처럼, 좀비처럼 되어가고는 한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이들의 삶 속에 지팡이가 되어서 이들을 일으켜 세워 보려고 하는 정신과 소셜 워커들이다.


지친 이들이 넘어지고 쓰러질 때 이들이 조금이라도 자력으로 일어나게 해보려고 우리의 등을 빌려주고 기대게 하고 이들에게 견고한 지팡이를 내어주며 이들이 지팡이에 의지해서 다시 한번 일어나게 해주는 일이 우리의 목적이다.


11월에 한국을 방문하여 그리운 가족들도 만나 뵙고 또 볼일도 보고 미국으로 들어오는 12월 초에 오른쪽 다리가 마비가 오기를 시작했다. 

내일이면 시애틀로 돌아가는 날이라 그날 목욕탕에 가서 그곳에 일하시는 분에게 전체적인 마사지 치료를 받고 12월 초에 시애틀로 왔는데 집에 도착하는 날부터 허리도 아프고 오른쪽 다리는 굽혀지지도 또 걸을 수 없는 뻗정다리가 돼 있어서 적잖이 당황했다.


우선은 따뜻한 물에 다리를 담그다가 찬물에 담그다가 하면서 나름대로 치료를 해보고 피지컬 테라피를 공부하다가 그만두고 현재는 다른 일을 하는 아들에게 상담받아 일단 물리치료를 시작했는데 

허리와 다리 그리고 발목까지 송곳으로 찌르는듯한 통증에 그야말로 차라리 이대로 숨을 멈추는 게 더 나을 듯싶은 통증이 밀려왔다.

병원 예약을 하니 지금으로부터 2주를 기다려야 한다니..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다해보기로 하고 집에서 스트레칭과 가볍게 걷는 운동을 하는데 다리는 아예 움직여지지도 않으며 오른쪽 다리가 마치 내 몸에 통나무처럼 매달려 있어서 내 몸이 움직이는 대로 흔들려대지만, 그에 따른 통증에 숨을 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아직도 코비상황이라 사무실에는 집에서 근무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기에 나는 집에서 내 통증과 사투를 벌이다가 9일째 되는 날 더 기다릴 수가 없어서 결국은 Urgent Care 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는 내 다리를 진료해보더니 하는 말 그동안 아픈데 어떻게 참을 수가 있었느냐고 물어온다?


글쎄!

너무 아프니까 정신이 나갈 것 같은 때에는 나 스스로 최면을 걸었다.

이 통증은 지나갈 거야!

괜찮아질 거야!


그리고 그렇게 아픈데에도 통증약을 먹지를 않고 버티려니 그야말로 내 몸은 통증과의 사투에 땀으로 흥건히 젖어있었다.

어쩌면 미련하다시피 하게 약을 먹지 않으려 하는 이유는 약을 먹지 않고 버티는 이유 중의 하나는 그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몸이 건강치 못해 많은 약들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내 몸의 신장 부분이 약해져서 조심을 해야 하기에 거의 약은 외면하면서 지내다보니 그렇고 예전에는 응급실로 실려 가기를 너무 자주 한 경험들이 있었고 통증약은 묘한 매력이 있어서 통증약을 복용하고 나면 그 약 기분에 몸이 너무 편하고 좋아서 그 기분을 다시금 누리고자 하는 마음이 들어 약을 상습적으로 복용할 수도 있기에 그러다가 서서히 중독이 되어갈 수가 있기에…


어전 케어의 의사는 나에게 물리치료 그리고 수술을 권하며 좀 더 전문가를 만나보아야겠지만 허리와 통증이 이 정도인데 어떻게 생활했느냐고 물어왔었다. 

이번의 통증이 또 심해진 이유 중의 하나는 12월에 내가 아주 좋아하던 한국의 유명한 쉐프님이시고 요리 강사님이시던 한국의 후드 앤 아카데미 김수진 원장님의 운명 소식에 충격을 받은 것도 한 부분이 되기도 하였다.


내가 아끼고 존경하던 분 좋은 분의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에 너무나 마음이 아파서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지게 된 것도 하나였다.

김수진 원장님이 워낙에 좋으신 분이시고 서로 멀리서 살아도 자주 연락을 드리며 가까이 지내시던 분이셨고 이번에 한국방문에도 서로의 바쁜 스케줄 동안에도 3번을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또 살아가는 얘기도 나누고 또 원장님이 나에게 미국에서 활동하다가 한국을 대변해야 할인 있으면 입으라며 멋진 한복 4벌을 선물로 주셨었다.


며칠 전 만나 뵙고 담소도 나누고 맛있는 음식도 함께 나누던 원장님이 별안간 돌아가신 것에 대한 충격에 내 몸도 영혼도 문을 닫아버렸는지 그냥 멍한 상태가 되어서 잠도 못 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를 못하고 그냥 인생이 너무나 허망해서 눈물이 나오기만 했었다.


이런 나의 건강 상황에서 집에서 일하는 도중에도 나의 오랜 홈리스 고객이었다가 지금은 자립하고 살고 있던 내 남자 고객 한 사람이 내 사무실 전화에 메시지를 해놓았다.

레지나, 나 지금 죽고만 싶어!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어!


나는 멍한 상태에 머물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우며 아픈 다리를 지팡이를 의지한 채 이 고객이 살고있는 저소득층 아파트로 찾아가 보아야 했다.

물론 내가 아프니 다른 사람에게 이 고객의 일을 일임해도 되지만 이 고객의 특정상 다른 이들에 부탁을 한다는 것은 이 고객을 어쩌면 더 절망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 일일 수도 있기에 이 사람을 찾아가 아파트 빌딩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니 안에서는 아무런 대답이 없기를 서너 시간째 추위에 오랜 시간 동안 노출되어있던 내 몸 그리고 통나무처럼 매달린 내 다리는 거의 무감각 상태로까지 가게 되고 이로 인하여 머리의 통증도 시작이 되어지는 상황이었다. 


이날 나는 몸 상태가 안 좋아 내 고객이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 사무실에 내 명함을 놓아두고 내가 다시 전화를 할 테니 내 전화를 받아달라는 메모를 적어서 놓고 나왔다.


내가 집에서 근무하니 내 개인 전화번호를 이들이 알게 하고 싶지 않아서 번호가 안 보이게 전화해도 받아달라는 메시지를 해놓고 집으로 돌아온 후 3시간 후에 다시 이 고객에게 전화를 하니 자기의 은행 통장에 마이너스인데 자기의 차페이먼트가 매달 750불이나 되니 현재 자기가 일하면서 벌고 있는 돈이 한 달에 100불 살고 있는 아파트 값이 1500불인데 저소득층 혜택으로 인해 월 800불을 내고 전화료를 한 달에 100불 내고 나면 개스값 쓸 돈 빼면 식품 살 돈이 없어서 푸드뱅크에 가야 하는데 자기의 일 시간과 푸드뱅크시간이 맞지 않아서 집에는 먹을 음식이 하나도 없고 매일 일해도 남는 것이 없으니 죽고 싶다는 얘기였다.

전화로 왜 한 달에 차 페이먼트를 750불씩 내느냐고 질문을 홰 보니 심한 불안증세의 내 고객은 벌벌 떨며 말도 못 한다.


자기는 은행에서 하는 일이니 잘 모른단다.

아니 자기 돈이 빠져나가는데 본인이 모른다고?…

그리고 내 고객은 너무나 흥분해서 설명도 제대로 못 한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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