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대보름달과 어머니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대보름달과 어머니

구정이 지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월대보름이 다가왔다. 음력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한인 마트에 가니 정월 대보름날 식품을 수북이 싸 놓고 팔고 있었다.


이맘때면 생각나는 아득한 먼 기억들이 생생하다. 대보름을 며칠 앞두고 동심에 젖은 또래 아이들은 쥐불을 놓느라 분주했다. 논둑에서 줄을 매달은 깡통에 구멍을 뚫어 공기가 잘 통하게 하고 그 안에 솔방울을 넣고 불을 지핀다. 빙빙 신나게 돌리면 빠른 템포로 원을 그리며 움직이는 빨간 불빛과 들녘에 뿌옇게 쏟아지는 은빛 달빛이 한데 어울려 환상의 쇼를 이루고 있다. 


한해 농사를 잘 짓기 위해 논두렁에 불을 놓는 것은 해충을 없애는 지혜이기도 하지만 천진난만한 코흘리개 아이들에게는 아주 신나는 시간이어서 그 재미에 흠뻑 빠지곤 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동리입구에 있는 언덕배기에 가서 색깔 예쁜 황토 흙을 파오라 하셨다. 매년 대보름 절기를 며칠 앞두고서 황토를 파오라고 했던 곳인데 가보니 동리사람들이 파가서 구덩이가 제법 깊게 패여 있었다. 나는 구덩이에서 제일 색감이 좋은 곳을 찾아 흙을 파 담았다.


 검정 흙 속에 저런 곱고 아름다운 자태를 한 황토 흙이 존재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황토 흙을 그릇에 담아 비탈 진 곳을 온 힘을 다해서 끌고 내려와 집에 당도하면 어느새 이마에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혔다." 예야! 고생 많이 했다." 


어머니는 대견스러워하시면서 환하게 웃으셨다. 이 웃음을 보노라면 늘 흔한 웃음과 같아 보이지만 늦은 나이에 철들어 안 일이다. 어머니의 웃음은 사랑의 열매로 가득 채우신 속이 아주 깊은 웃음이었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하는 마음은 아낌없이 마음을 다 주며 품어 안아 주어도 모자라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최고의 사랑에 나는 눈물이 났다. 어머니는 가까이 오셔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파다 놓은 황토는 정월대보름 전날 그러니까 정월 열나흗날 액운을 막는다고 특히 많이 다니는 길을 찾아 집안 곳곳에 고루고루 뿌리셨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붉은색은 액운을 막는다는 주술적 신앙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사람들은 황토 흙을 뿌리면 나쁜 잡귀가 도망가는 줄로 알고 있었다.  


"어머니! 왜 황토를 뿌리는 거유?" "응! 그래야 집안이 잘된단다." 그 당시는 교회가 아직 들어오지 않은 때였다. 벽촌 사람들은 황토 흙이 액운을 막아 준다는 토속신앙을 믿고 있었다. 어머니는 낮부터 부지런히 서둘러 시루에다 말린 밤과 쌀을 섞어 오곡 찰진 밥을 찌고 일 년 내내 갖가지 나물을 정성스럽게 곱게도 말려두셨다가 정월 보름날 맛깔스럽게 무쳐놓은 나물들로 종류도 여러 가지였다. 


어머니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으시고 대보름 전날 어스름한 어둠이 찾아드는 초저녁 무렵에 마당에 덕석을 펴고 돗자리를 깔게 하셨다. 그 위에 시루 채 가져다놓고, 오곡밥을 찐 시루에 곁에 양초를 꽂아 촛불을 켜놓았다. 그 밑에 정화수(냉수)를 한 사발 떠다 놓았다. 


무쳐놓은 갖은 나물도 푸짐하게 차려놓고 어머니는 두 손 마주 비비며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지신명님께 비나이다.” 구구절절이 우리 집의 형통한 복과 아들딸 건강해서 공부 잘하고, 올해 농사 풍년들게 해달라는 소원을 지극정성으로 빌고 또 빌었다. 그중에서 아들에 대한 소원을 비는 부분이 월등 많았다. 그 소원의 기도는 길게 계속되었다. 


대보름날 동구 밖 전망 좋은 언덕배기 논에다 불을 놓고 동네 사람들이 모여 마냥 즐겁게 떠들며 놀았다. 나도 어머니와 함께 갔다. 동쪽 하늘에서 1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이 미소 지으며 두둥실 떠오를 무렵 요란한 농악대의 풍악 소리가 멎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다 들 열심히 달에게 빌었다. 앞집의 영이는 시집가게 해 달라고 빌며 소원을 적은 종이쪽지를 불 속에 던지기도 했다. 또 뒷집 아줌마는 아저씨 병 낫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우리 어머니도 뒤질새라 어제 찰밥을 해 놓고 빌었던 그 대로 두 손을 비비며 소원을 기원하시는 모습을 곁에서 바라보면서 나의 소박한 염원도 어머니 마음을 닮아 있었다. 이 광경은 오늘날 교회에서 각자의 기도제목을 놓고 소리 지르며 통성기도 하는 모습과 꼭 같았다.     


휘황하게 타오르는 붉은 모닥불과 은가루를 뿌려 놓은 듯 하얀 은빛 달빛이 절묘한 조화를 이르며 탁 트인 들녘으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멋져 보이던 불은 서서히 타 버리고 밤이 깊어감에 따라 동네 사람들도 한사람 두 사람 자리를 떴다.


 어머니는 그 자리를 뜨면서 타다 남은 대나무 한 토막을 집으셨다. "어머니 그것 뭐 할 거유?"라고 물었다." 응, 이것을 주워 다가 집에 두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단다"라고 말했지만 다른 소원들 보다 오직 아들 잘되는 소원을 우선하신 것 같았다. 타다 남은 대나무 토막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기복신앙을 믿고 있는 어머니였지만 남 다른 아들사랑에 나는 지금도 마음이 찡하다.


 정월 대보름날이면 달에게 아들 잘되라고 그토록 열심히 소원을 빌던 어머니는 아들이 장성한 것을 보지 못한 채 마흔한 살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가셨다. 그때 내 나이 17세였다.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은 어머니 없이 혼자 지냈다.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지금도 대보름달을 바라보면 어머니가 그립고 그날의 기억이 새로워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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