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목회계칼럼] 626. 남북전쟁 중의 3대 지폐 -시애틀한인로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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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목회계칼럼] 626. 남북전쟁 중의 3대 지폐 -시애틀한인로컬칼럼

지난 주 칼럼(265 미국의 자유화폐시대)에서 본 바, 한때 미국에는 수많은 지방은행이 같은 달러의 이름으로 어음화폐를 찍어내고 있었고, 그 어음화폐의 가치는 발행은행이 신용에 따라 내려가기도 했다. 이번에는 그 발행자가 은행이 아니라 국가라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는 사실을 구경한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험했던 한 해를 꼽으라면, 그것은 아마 1861년이었을 것이다. 1936년부터 그때까지 25년 사이에 무려 10 개의 새로운 주가 생겨났다. 그 과정에서 노예주(奴隸州)의 수효가 자유주(自由州)의 수효보다 적어졌고, 노예제 지지자들은 바짝 긴장하게 되었다. 그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 따로 정리되어 있다.

https://blog.naver.com/samahncpa/memo/70071011645

캔저스 주 성립 이후 곧 남북전쟁이 시작되었고, 이어서 두 정부가 발행하는 3가지 지폐가 생겨났다. 전쟁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지방 은행들의 자유화폐는 존재했으나, 정부가 발행하는 3가지가 가장 중요한 지폐로 통용되었다. 그 과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본다. 

1861.1.29 Kansas 성립 (제 34의 주)

1861.3.9  남부연방 지폐(Greyback) 발행 

1861.3.11 남부연방(11개주) 헌법 (Confederate Constitution) 제정

1861.4.12 남 캐롤라이나 주 Sumter 요새 포격, 남북전쟁 발발

1861.7.17 북부연방 무이자 요구불 국채어음 발행 (칼럼 548호의 주제)

1862.2.25 북부연방 지폐(Greenback) 발행 (칼럼 549호의 주제)

위 둘째줄에 보이는 최초의 남부연방 지폐는 이자와 만기까지 붙은, 완전한 어음이었다. 지난 주 칼럼에서 본 자유화폐(지방 은행권)에도 이자가 붙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그레이백은 가장 어음 같은 어음화폐였다 할 수 있다. 반년 뒤에는 북부에서 요구불 국채어음을 발행했고, 그 다음 해에는 그린백이 발행되었다. 세 가지 지폐를 비교하면 다음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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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초기 남부군이 승리를 거두는 동안에는 그레이백의 가치가 액면 그대로 살아 있었으나, 패전을 거듭할수록 그 가치는 내려갔다. 전쟁이 끝나고 남부정부가 없어지자, 이 돈도 없어졌다. 만일 남부가 승리했더라면, 그들은 북부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금을 압수해서 그레이백을 태환지폐로 승격시킬 수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는 그린백의 역사를 보면 된다. 그린백은 처음에 불태환으로 발행되었으나, 전쟁에서 승리한 북부는 1900년에 가서 그린백을 태환지폐로 승격시킬 수 있었다. 그 이전에, 남부 정부의 금을 (당연히) 압수했다. 

이러한 과정과 추리에서 확실히 관찰되는 것은, “어음화폐의 가치는 발행자의 신용에 따라 달라진다” 하는 원리가 그 발행자가 국가일 경우에도 통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이름의 화폐를 두 국가가 경쟁적으로 발행했을 경우, 한 국가의 신용이 내려가면 상인들은 그 돈의 가치를 액면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 국가가 아무리 강요해도 돈 가치 하락은 막을 길이 없다. 돈가치가 하락하는 이유는 그 돈에 기록된 약속이 이행될 확률이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레이백의 가치가 인정되지 않으면 정부가 전략물자를 사려고 할 때 더 많은 그레이백이 필요하고, 따라서 더 많은 그레이백을 발행할 수밖에 없다. 많이 찍어내기 때문에 가치가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신용이 내려가서 가치가 내려갔기 때문이 더 많이 찍어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인과관계를 완전히 파악해야만 화페수량설의 허구를 명백히 관찰할 수 있다. 화폐수량설은 이 인과관계를 거꾸로 상상해서 나온 허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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