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수칼럼] 어느 교포의 가족 이야기

전문가 칼럼

[이성수칼럼] 어느 교포의 가족 이야기

이성수(수필가)


송석춘씨는 아들 둘과 딸 셋의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을 왔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2학년인 큰아들이 미국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해서 왕따를 당했습니다. 동양인은 그 애 단 한 명 뿐이고 영어도 못하고 키도 작아 미국아이들로부터 놀림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들은 지지 않고 대들어 싸워 문제를 일으켰고 이 때문에 아버지는 담임교사의 부름을 받아 상담을 하였습니다. 아들은 불만이 가득 쌓였습니다. 그 애는 어느 휴무일 이틀 동안 미국인 친구 애와 함께 학교에 들어가 이곳저곳 닥치는 대로 기물을 때려 부숴 쑥대밭으로 만들었습니다. 


동료 학생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쌓인 스트레스를 학교 기물을 파괴하는데 발산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돈으로 1500불 상당의 변상금이 나올 만큼 파손은 컸습니다.

이 사건은 지역 신문 1면 톱(top)기사로 보도되었고, 온 가족은 이제 우리는 망했다며 좁은 응접실 구석에 모여 통곡했습니다.


교장 선생님은 아버지에게 “학교기물을 파손한 사건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당신 아들은 카운티 내의 어느 학교에도 전학이 불가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더욱 원통한 일은 함께 똑같이 일을 저지른 미국 아이는 돈이 많아 유명 변호사를 선임하여 가족들이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명목으로 풀려 나왔고, 아들만 '주범'으로 몰려 감옥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아버지 송씨는 그때 처음으로 '돈 없는 사람의 미국'을 뼈저리게 체험했다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교민 사회에서도 "한국인의 얼굴에 먹칠했다"라는 비난이 비등했었고, 등하교 때 "그 집을 피해 가라"는 한인들도 있었으며, "같은 교육구 학교에 창피해서 내 아이를 보낼 수 없다"며 전학을 시키는 교포 부모까지 있었습니다.


같은 교포끼리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줄 교회성도들까지 싸늘한 눈빛으로 대하며 소외하는데 더 이상 그동안 나가던 교회출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더욱이 유년부 초등부에 나가던 주일학교 어린이까지 “너의 오빠가 죄를 짓고 감방에 갔다”며 수군대어 주일학교도 그만 두었습니다.   


아버지 송 씨는 “아들을 잘 못 가르친 내 죄가 크다고 생각하고 속죄(贖罪)를 하였습니다. 

“그동안 자동차 정비 일을 하느라 바빠서 아들교육에 등한하였다. 어린 아들이 미국 애들로부터 참지 못할 왕따와 수모를 당하는 줄도 처음엔 몰랐다. 시간을 할애하여 담임선생을 찾아보지도 못했다.” 송 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발걸음도 하기 싫은 학교를 통역인과 같이 찾아갔습니다. 아들을 석방이나 복교를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들이 지은 죄를 애비로서 속죄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교장선생님을 만나 먼저 아들이 학교기물을 파손한데 대해 아버지로서 사과를 하고 곧 변상하겠으며, 아들을 잘못 교육하여 교장선생님께 누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이 지은 죄를 아버지가 속죄하기 위해 매주 주말에 온 가족이 함께 학교에 와서 청소를 하겠으니 허락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교장선생님은 마지 못해 허락을 했습니다. 

아들의 속죄를 위해 부부가 유치원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과 함께 매 주말마다 학교 교실과 화장실 운동장 등을 열심히 청소했습니다. 다행히 어린 자녀들이 마다하지 않고 즐거이 동참해 주었습니다.


이 속죄의 청소 사건은 미담(美談)이 되어 플로리다 교민 사회는 물론 전 미국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AP 통신 기자가 감옥에 간 아들의 속죄를 위해 온 식구가 함께 매 주말마다 학교를 열심히 청소하고 있는 사진과 함께 "가족의 명예와 아들을 위해 부모는 모른 체하지 않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 기사에는 "내 아들이 지은 죄가 곧 내가 지은 죄이다. 내 아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변상은 물론 어떤 일이든 하겠다."라는 속죄의 말도 담겨있었습니다. 

미 전역의 신문들이 AP 통신 기사를 인용 보도하자마자 아들이 다니던 학교에 갑자기 수백 통의 편지가 날아들었으며, 심지어는 변호사 선임비용으로 써 달라고 5불, 10불짜리 현찰과 수표를 보냈습니다.


미국의 신문사들은 아버지의 말을 인용해

"아들의 죄가 바로 내 죄"라는 고백 등을 실으면서

"미국인 부모들도 본받아야 한다"라거나 

"미국 교육계도 유교적 가족관계에서 이뤄지는 한국의 독특한 교육 철학을 배워야 한다." 라는 기사를 내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에 반가운 소식이 가족에게 날아왔습니다. 미 법정에서 아들을 석방하고 가족의 명예를 회복한다는 판결소식이었습니다. 교육청에는 다니던 학교로 복교는 안 되고 조금 떨어진 다른 학교에는 전학할 수 있다는 서한까지 동봉해 왔습니다.

아들은 감옥에서 정상참작으로 방면되었습니다. 


아들이 집에 와 식구들의 품에 안길 때 온 가족은 기쁨의 눈물을 한 없이 흘리며 얼싸안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 후 말썽꾸러기 아들은 크게 감화되고 거듭나 인근 학교에 전학하여 공부를 열심히 하였습니다. 


그 결과 센트럴 플로리다 대학(UCF) 학사와 플로리다 인터내셔널 텍(FIT) 석사학위를 받은 후 미 우주항공국(NASA)산하 방산업체에 채용되어 고위 우주선 탑재 전문가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우주선을 쏘아 올릴 때 수십 명이 심도있게 점검을 하는데 그 가운데서도 최고선임원으로 일하고 있으며,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오는 'VVIP(Very Very Important Person)'들에게 직접 브리핑을 하는 유능한 한국계 선임원이 되었습니다.


한 아버지의 대속으로 사고뭉치의 아들이 감화되어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고, 자녀들까지 우뚝 일어서게 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타인을 위해 대속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대신 속죄합니다. 그 이유는 내 몸처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지은 죄를 대속하기 위해 어떠한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은 한 아버지의 아들 사랑이 결국 유종(有終)의 미(美)를 거둔 것입니다. 이 이야기가 이민 사회에 화제(話題)가 되었던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1974년 이민 왔던 송석춘씨의 가정사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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