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샬롬교회 컬럼] 빛의 통치와 어둠의 통치

전문가 칼럼

[하늘샬롬교회 컬럼] 빛의 통치와 어둠의 통치

part 1. 빛의 생각과 어둠의 생각


우리가 삶에서 말과 행동은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생각(의식)을 거쳐서 나오게 됩니다. 즉, 사람들은 항상 생각과 마음을 통해 무언가를 인식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 사람의 생각이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느냐가 바로 그 사람의 거한 세계관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에것을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면, 우리 생명의 본질은 땅에서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며 썩어질 자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하나님의 우편에 거하여 왕 노릇할 생명이기 때문이기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 하나님 안에 거한 그 존귀한 생명은 감추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감추인 생명의 실존을 성령님의 인도를 통해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을 주신 목적입니다.


위의 것을 생각하라고 하신 것은 너희의 정체성은 우리의 보이는 육신에 거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서 찾아야 함을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내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을지를 중심으로 신앙의 양육을 받지만, 진짜 본질의 양육은 성도들 안에 거한 그리스도의 생명의 실존을 발견하는 것에 있습니다.



골로새서 3:1~4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니라 우리안에 실존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의식(생각)은 빛입니다. 


이 그리스도의 의식속에 거한 말과 행동은 이 어둠의 세상의 빛이 됩니다. 

빛의 의식, 즉 우리가 위의 것을 찾고 있다면, 그리스도를 의식할 것이고 그리스도 안에서는  하나님 안에 거한 나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영광을 우선적으로 의식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위의 것(하늘), 즉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대로(땅의 것) 나를 의식한다면 우리의 육체는 첫 사람 아담에 속하여 하나님 밖에 거한 존재이기 떄문에 하나님 안에 거한 나가 아니라 하나님 밖에 거한 나로 인식하기 때문에 영광이 아닌 죄를 먼저 인식합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는 죄를 인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영광을 인식하던 자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안에 거한 “나”로 자신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죄와 수치, 두려움을 의식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안에 죄가 무슨 말이고, 하나님 안에 두려움이 무슨 말이며 하나님 안에 어떤 수치가 있겠습니까?


그분은 온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위대하신 주님이십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아담과 하와는 더 이상 하나님 안에 거한 나를 인식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을 하나님 밖에 거한 나로 인식하게 됩니다. 


이것이 자아입니다. 우리가 위의 것, 즉 그리스도를 의식하면서 살아갈 때, 이 빛의 의식은 무엇을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될까? 하면서 영광을 푯대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내 육체대로 신앙생활 할 때, 이 어둠의 의식은 무엇이 죄일까? 어떻게 하면 죄를 이기고 살아갈까? 하면서 삶에 대부분을 죄를 의식하면서 살아갑니다.


아주 오래전, 청년 때 경험했던 영적 사건입니다. 

저는 그 당시에 하나님을 잘 섬기고 세상에 오염되지 않기 위해서 말씀과 기도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금식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는 복음과 율법을 분별하지 못하고 있을 때입니다. 그냥 하나님의 말씀은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결한 육체로 서려고 노력하지만 뒤돌아서면 넘어져 있는 제 모습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스스로 정죄했습니다. 그 가책과 정죄를 하나님의 회초리로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들어오는 쉴 새 없는 의의 요구와 무거운 책임들로 힘들었습니다. 


한 날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채 제 눈앞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나를 정죄하느냐, 왜 나를 못 박느냐고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자 뒤로 넘어갈 뻔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말을 그 당시에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서 제가 아파하고 근심하고 하는 것을 당연히 당신이 원하신다고 생각했었어요. 그것이 아니었나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 자신을 겸비하고 나 자신을 경계했던 그 행위들이 결국 율법이 되어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정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시대의 많은 그리스도인은 어렸을 때부터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잘 믿을 수 있을지에 대한 교육을 받습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예수의 생명이 내 육신이 호흡하고 감정을 느끼고 살아있듯, 예수의 생명이 육체 안에 실존하고 있다는 것부터 먼저 발견하여야 합니다. 


즉, 내 안에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1~3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길을 지날 때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소경을 보자마자 그의 보지 못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냐고 묻습니다. 

제자들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했지만, 여전히 제자들의 생각은 율법의 인과법칙,  구약의 세계관에 갇혀 있어 죄를 먼저 인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세계관에 폭탄을 던지십니다. 제자들의 세계관을 멸하는 말을 던지십니다.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아마 제자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율법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말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때 당시 이스라엘에게 진리의 기준은 율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발언은 지금이라고 치면, 신학적 교리와 정통에 벗어나도 한참 벗어난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정통과 교리에서 한참 벗어난 그 말이 사람을 살리는 말이라는 것에 있습니다.


그리고 소경은 자신의 보지 못함을 보고 그 부모의 죄 때문인가? 혹은 본인 때문인가?라고 예수께 묻는 제자의 말에 어떠한 감정이 밀려왔을까요? 

아마 마음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죄 의식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절망하고 굉장한 수치심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예수께 한 질문에 예수께서 무엇이라고 하는지 귀 기울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경 역시 내가 소경된 것이 진짜 부모의 죄인지 자기의 죄 때문인지 알고 싶었을것입니다. 사람들은 원인을 모르는 문제를 제일 견디기 힘들어하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자들이 예수께 한 질문은 소경 역시 평생 자기 삶에서 스스로 물으면서 괴로워했을 질문입니다. 이제 부모의 죄 때문인지, 자신 때문인지 그 죄의 원인을 예수께서 밝히시리라 하고 귀 기울여 듣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입에서 감히 소경이 상상치도 못했던 말이 나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 때문이 아니다 그에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나타내고자 함이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소경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이스라엘에서 예수라는 자가 메시야로 왔다고 소문이 났고 이 소경도 들어 알고 있습니다. 

소경은,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말 그 자체가 메시야로 느껴지지 않았으까요? 

예수님의 입에서 나온 그 증언 자체가 구원이라고 느껴졌을 것입니다.


예수의 말에서 나를 짓눌렀던 한 세계가 파괴되고 내가 결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세계가 시작될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지 않았을까요?

이 예수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소경의 마음에 엄청난 빛이 임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보이는 감옥만 없을 뿐이지 소경은 평생을 자신의 눈이 먼 것을 보면서 자신을 죄 덩이로 생각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옥에 갇힌 삶 아니었겠습니까? 

율법의 인과법칙에 묶여 매일 죄를 인식하고 죄의 형벌만을 생각하는 그 삶이 바로 감옥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입에서 “하나님의 일을 그에게 나타내고자 하심이다”라고 선포되는 순간 소경은 그 감옥의 갇힘에서 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그에게 나타내고자 하심이다”

성경은 예수님을 이 세상에 오신 빛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빛이라 칭할 수 있는 것에는 바로 예수님의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증거하신 그 말에 있습니다. 빛의 본질은 예수님의 육체가 아니라 예수님이 증거하신 말씀에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평생 오직 죄와 형벌만 있는 율법의 인과법칙이 있었던 그 삶의 감옥을 두고 예수님이 소경에게 말씀하니 그 말씀이 빛과 생명이 되어 어두움에서 나오게 되더라는 거죠. 


그리고 곧 소경이 실제 눈을 뜨게 되는 육체의 표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소경이 실제 영의 어둠의 감옥(=죄의 정죄, 죄와 사망의 법)에 갇혀 있다가 빛으로 나오게 됨(=죄에서 자유, 생명의 성령의 법)을 상징합니다.


이사야 42:6~7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 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



로마서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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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스라엘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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