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칼럼] 정리해야 하는 이유(2)

전문가 칼럼

[레지나칼럼] 정리해야 하는 이유(2)

<지난호에 이어>


우리 집 두 딸은 미니멀주의자다.

딸아이들 집안에는 생활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물건들 외에는 거의 집안에 없다.

그리고 딸아이들은 브랜네임이나 유명제품의 옷들과 가방들도 아예 없다. 

아이들이 이런 것들에 대한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실용적인 필요한 옷 몇 벌을 갖고 있을 뿐이다.

아이들 집안에 걸린 장식들이 거의 없다. 

아이들 집은 작은 데 집이 커 보인다. 


아이들 집에 물건이 많이 없으니 집이 커 보인다.

우리 딸 아이들은 갖고 싶은 것들이 별로 없단다.

나는 뭔가? 내가 소셜서비스 쪽으로 일을 하지 않았으면 나는 디자인 공부가 하고 싶었던 사람이라 옷들에 관심이 많다. 


그리고 대충 몇 가지 옷감을 대어서 스페셜한 작품도 제법 잘 만든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옷을 만들 수 있는 옷감도 많고 또한 나는 신발이 아주 많다. 

나는 신발에 미련이 많은 사람이었다.


(지금은 아니다) 내 위로 언니가 둘이었는데 둘째 언니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서 옷은 거의 언니 것을 물려 입고 신발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엄마는 신발도 내 신발은 거의 드물게 사주고 일단 언니를 사준 신발을 어느 정도 신발이 닳아지면 내게 물려주고 언니는 새 신발을 사주고는 했다. 


엄마가 언니의 신발을 내게 물려받게 한 이유는 내가 신발을 험하게 신고 다니니(나는 막내 오빠 따라 들판으로 산으로 뛰어다니니 신발이 쉽게 헌 신발이 되고는 했다.) 나에게 새 신을 사주어도 금세 버려지니까 엄마의 생각에 헌 신발을 주는 것이 더 경제적으로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셨던 것 같다.


그때는 그게 그리 서운한 것인지 몰랐는데 내가 커서 내 돈으로 신발을 살 수가 있을 때 나는 알았다. 내가 얼마나 새 신발을 신고 싶었었는지를!

그리고는 내가 일을 해서 번 돈으로 신발을 사게 되면서 나의 신발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스토어를 지나다가 예쁜 신발이 있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맴돌다 일단 가격을 알아보고 가격이 만만치 않으면 그 자리를 떠났다가 며칠 후 또 그 신발가게를 가본다. 

아직도 신발 가격이 안 내려가 있으면 좀 더 기다려본다.


몇 주 후에 신발 가격이 조금이라도 내려갔으면 신발을 사면서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오늘 돈 벌었네! 라고 돈을 썼으면서 스스로 돈을 벌었다고 생각하며 계획 없이 구입한 신발에 대한 미안함을 스스로 위로해준다. 


괜찮아! 네가 일해서 번 돈이잖아!

뭐가 어때서… 나의 신발 사랑은 끝이 없이 진행이 되었었고 그렇게 모인 신발들은 우리 집 거라지에서 신발장 안에 나란히 나란히 줄을 서서 내 선택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신발이 있었는지!


어릴 적 부족했던 부분들에 대한 보상을 스스로 신발을 지속적으로 사면서 충족시키고자 했던 이유였다. 물론 지금은 신발을 구입을 안 한 지가 오래 된다.

첫째, 나의 직업이 앉아만 있는 일이 아니라 정신줄 놓은 고객들의 베네핏을 위하여 이리저


리 바쁘게 다녀야 하다 보니 굽 높은 구두는 오래전에 내 시야에서 멀어져갔고 주로 낮은 굽의 구두나 운동화들인데 내가 패션 신발에 눈을 돌리니 왜 그렇게 예쁜 신발들이 많이 보이는 지  내 시선을 빼앗고 나를 잠 못 재우며 그 신발을 사고 싶은 생각에 두통까지 올 정도가 되면 나는 다시 신발을 구입하였다.


이 정도가 되면 중독증이다.

그렇다. 나는 신발을 구입해야 하는 중독증이 있었다. 

언젠가 거라지에 겹겹이 쌓여있는 신발들(사서는 신어보지도 않은 신발들도 꽤나 많이 있었다) 그런 신발들을 엔세나다 멕시코에서 선교사로 있는 친구에게로 다 보내 버렸다.


나의 신발 중독증에서 깨어나는 과정이었다. 

그 이후로 내 신발장이 허전해질 무렵 내 미국 친구(나하고 거의 사이즈가 같은 성공한 미국 친구가 자기 신발을 사면 내 것도 구입해서는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물론 운동화나 낮은 굽으로 ..


친구의 말인즉, 레지나, 너는 많이 뛰어다니니 신발 좋아하는 너를 위해 내가 신발은 다 댈거야! 라며 그 이후로 나의 신발장은 다시 많은 신발로 쌓이기 시작했고 나의 신발 중독증은 다시 재발했었다.


마치 술중독자들이 금주하여 겨우 술을 끊고 난 후 어쩌다 술 한 모금 입에 대고 나서 다시 술중독이 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이 정도면 중증이다.


요즈음 부쩍 내가 가진 것이 너무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무엇을 나누고 무엇을 줄여가야 하는가? 생각이 많다. 아마도 몸이 불편해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제한이 오기 때문에 인생 여정에 대하여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무엇을 많이 가져서 행복한 것이 아니고 어떻게 인생을 살아왔느냐가 인생의 기쁜 의미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그동안 살아온 날보다는 적은 기간이라고 생각이 드니까 숙연해진다.


그리고 이 시간부터 더욱 선한 일에 힘쓰고 보람 있는 일을 만들어 가며 이 세상에 살다가 돌아갈 때에 그래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왔기에 기쁘다! 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가진 것들은 어차피 내 것이 아니었고 잠시 내게 주어진 것들인데 마치 내 손에서 빠져나갈 것 같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을 먹고 사니 삶이 피곤해진다.


욕심을 내면 삶이 피곤해진다. 더 가져야 하고 더 쌓아야 하니 그만큼의 시간이 불안하고 불편하다. 집을 둘러보니 이것저것 너무 많다. 그래서 조금씩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 많은 신발은 이미 먼 멕시코의 누군가에 발에 신겨서 행복해 할 것이고 내 옷장의 옷들도 필요한 이들이 입고서 추위를 이겨낼 것이고 내 많은 그릇이 나누어져서 누군가의 밥상에서 사람들의 얼굴에 미소를 짓게 할 것이다.


내가 한국에 11월에 방문하여 3주간을 지내면서 3번을 만난 분이 계셨다.

2017년도에 이곳 시애틀에 오셔서 시애틀 요리 전문가님들과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요리 강습을 해주셨던 후드 앤드 아카데미 원장님 김수진 원장님이셨다.


원장님하고의 인연은 2017년 요리 강습을 참여하면서 시작이 되어서 매년 내가 한국을 방문하게 되면 찾아뵙고 원장님과 함께 충무로의 유명한 약선한식(자연 재료를 사용하는 한식집)에 가서 약선 간장게장, 연잎밥, 보리굴비, 담백한 떡갈비 등 한가람 한식집에서 맛있는 요리를 시켜주셔서 함께 먹고 그동안 밀린 이야기도 나누는 정말로 행복한 관계였는데 이번에


는 내가 미국에서 한식 요리를, 시애틀 도서관에서 한식 요리 비디오를 촬영하게 되었다는 소식과 미국인들에게 한식 요리 강습을 한다는 얘기에 원장님이 바쁘신 시간을 다시내어 한식을 직접요리하셔서 상을 차려주시며 또다른 시범을 보여주시고 또 한식요리 할때 꼭 입고하라며 당신이 아끼시는 개량 한복 4벌을 주셨다.


김수진 원장님의 옷을 받아서 매우 행복한 마음으로 미국에 온지 20일 정도 후에 연락을 받았다. 원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원장님의 부고 소식을 듣고는 오랜 시간 동안 잠을 설쳤다. 

눈물이 흘러나와 감정 기복이 심해지기도 하였었다.


한 달 전 3번씩 만나면서 인생 이야기를 나누어주셨던 분이 말없이 그냥 떠나셨다.

원장님의 죽음이 너무나도 황망하게 느껴져 그냥 맥없이 주저앉아버렸었다.

마침 허리통증과 무릎 통증이 함께 와서 그야말로 마음도 몸도 죽을 만치 괴로웠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내온 거다. 아파도 내가 할 일은 하려고 노력했고, 그리고 너무 아픈데에도 감사했다. 아직 조금 더 하고 싶은 일들이 많은데 당장 죽을 병이 아니니 그것 또한 감사가 되었다. 그리고 꿈을 꾸었다.


모두가 돌아가는 길에는 아무것도 가져갈 수 없다는 확실한 사실을…

그리고 집을 돌아다보니 저것도 줄이고 이것도 줄이고 아주 몸 편하게 간단한 것만 갖고 살자고 다짐했다.


내가 살면서의 나눔은 누군가에게 감사의 선물이 된다, 내가 떠나고 나서 남에게 돌아가는 물건은 짐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얻은 수익금으로 장만한 모든 것들을 누릴 만큼 누렸으니 나만큼 이 물건들을 즐길 수 있는 그 누군가에게 돌아가게 하고 싶다.


그래서 오늘도 생각한다. 

오늘은 무엇을 정리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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